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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1
역사의 망각은 역사 갈등보다 무섭다!
  • 박선미 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소장

  

연변조선족자치구에 있는 백초구유적 표지석이다.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나와 옥저유적으로 보고 있다. 

2006년 답사 당시에는 한글 표지석이 같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중국 국가박물관이 한중 수교 30주년 등을 기념해 개최한 특별 전시회장에 게시한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하고, 우리 측이 제시한 고조선의 건국 연도 기원전 2333‘?’로 바꿔 전시한 일이 벌어졌다. 이후 많은 언론매체와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국정감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 측 박물관이 대여해 준 유물 가운데 고구려와 발해 관련 유물이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국을 의식해 현지에서 논쟁이 될 만한 유물을 넣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연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과와 함께 수정또는 전체 삭제를 요청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것이 중국 국가박물관에게 연표를 모두 삭제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필자도 방송 인터뷰와 언론 기고를 통해 이 사건이 얼마나 엄중한 것이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루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우리 고대사의 국제화를 통해 국제학술계와 국제사회에 고조선, 부여, 옥저, 고구려, 발해 등 우리 고대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임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리고 재단에서 매월 두 차례 발행하는 동북아역사리포트중국에서 사라지는 우리 고대사라는 글(동북아역사리포트 26, 20221014일 자)을 통해 남만주를 활동무대로 삼은 우리 고대사가 중국의 역사교재나 지역 박물관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염려했다.

이번에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의 이른바 조선족’, 즉 중국동포의 역사 망각에 대한 우려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번 일은 중국의 우리 역사 왜곡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거니와 중국에서 우리 고대사가 겪을 운명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 동북공정에서 추진된 연구의 기조는 중국사로서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의 문명이 중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거나 우리 고대국가의 대외관계를 한중관계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사의 일부로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사로 연구해야 한다는 방침이었다. 이와 같은 중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수행된 연구결과물은 최근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있고 박물관과 유적 전시관에 홍보되고 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우리 역사 왜곡에 대해서 우리는 사료적 근거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남만주를 역사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고대국가의 역사가 중국에서 간행되는 역사책이나 지역 박물관 전시에서 삭제되고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우리와 조선족의 고대사가 중국에서 망각되는 것을 경계해야

 

역사에서 삭제는 곧 역사의 망각을 의미한다.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우리 고대국가의 역사를 지역 박물관이나 교재에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선족의 고대사가 사라지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선족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즈음까지 한반도에서 이주한 한()민족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이다. 중국 동북지역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에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남한에도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에 따라 민족자치권을 인정받아 19529월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성립됐고 195512월 자치구보다 한 단계 낮은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되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북 3성이나 연변을 방문하게 되면 한글로 된 역사서적을 쉽게 구해 볼 수 있었고 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치주 내에서는 해당 민족 고유의 언어, 역사, 문화가 존중되고 우선시됐다.

그런데 몇 해 전 같은 지역을 방문했을 때 마주한 연변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한글 간판 대신 중국어 간판이 다수였고 서점에서는 한글로 된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전공하는 조선족노교수들이 점차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러 도회지로 떠난 경우가 많았다. 중국어와 중국사를 알지 못하면 취업이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게다가 2020년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거주 지역의 수업을 중국 표준어로 통일함에 따라 올 7월 연변조선족자치주도 중국어를 우선으로 삼는 문자표기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거리의 간판도 중국어를 앞에, 한글을 뒤에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학생들의 교과서도 국정화로 교체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마주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풍경은 더욱 낯설어질 것이다.

    

중국 역사가 구제강 민족의 통일은 거짓을 기초로 삼을 수 없다

    

1900년대 초 중국에서는 왕조사대신 국사(國史)로서의 중국사정립을 위해 중화(中華)’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중화민족의 범주에 다수의 소수민족을 융합시키는 과정이 시작됐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문화인류학적 측면에서 중화민족다원일체(中華民族多元一體論)을 만들어 중국사를 정립하고자 했다. 비슷한 시기에 고고학계에서는 문화구계유형론(文化區系類型論)이라는 이론을 정립해 여러 민족의 고고학 문화가 서로 관계하고 결합해 가면서 현재의 통일적 다민족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러한 이론적 틀 아래 중국문화를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 간주하고 여러 소수민족을 한족(漢族) 중심으로 융합시켜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들어 냈다. ‘중화민족의 개념은 여전히 탈태를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는데 시진핑의 중화민족공동체론은 어쩌면 그 완성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형국이 지속된다면 중국 내 소수민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색은 약해지고 시간을 거듭할수록 중화로 융합되어 결국은 역사에서 지워져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중국의 역사교재에서 고구려·발해사 서술의 대폭 축소, 세계사 교재에서 한국고대사 서술 삭제, 중국사 연표에 우리 고대국가를 예속시키는 방식, 예를 들면 부여 유물을 (부여)[(夫餘)]’로 표기하여 전시하는 것, 고구려 유물이 중심인 지린성 통화시 만발발자유적을 여진족이나 만주족 중심의 유적공원으로 조성하는 것, 소수민족자치주에서의 중국어 우선 정책 등은 단순히 사실(史實)의 왜곡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국에서 한국 고대사가 사라지는 것, 우리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조선족들에게서 우리 고대사가 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필요한 학술적, 외교적 작업일 것이다. 중국의 역사가 구제강(顧頡剛)민족의 통일은 거짓을 기초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남긴 말이 우리의 과제에 앞서 중국 정부에 울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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