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역사학은 왜 그리 비분강개하는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지금 해야 할 일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망국의 한에 그토록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고, 강대국의 엄습에 그리 가위 눌릴 일도 없다”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자기가 살던 시대가 격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의 어느 순간인들 편안한 날이 있었을까만, 내 시대가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가까운 기억이 더 선명하기 때문인 탓이지 유난히 ‘오늘’이 더 격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가 더욱 격동으로 느껴지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망국,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함께 분출한 지나친 자유 의지, 복수심, 그리고 조속한 독립과 통일을 기대하는 군중심리, 그 뒤를 이은 한국전쟁과 4·19혁명, 군사정부, 민주화를 위한 아픔 등 한국의 현대사 100년은 지난날 몇세기에 걸친 경험보다 더 치열했다.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나타난 첫 번째 민족 정서는 분노였다. 역사에서 어느 민족인들 환난과 굴욕이 없겠냐만은, 우리 역사는 더욱 간고(艱苦)했다. 수많은 외침을 받은 역사가 할퀴고 간 뒤에 남은 것은 굴욕과 회한의 애상(哀傷, pathos)이 많았다. 더욱이 우리는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이 왜 왜(倭)에 멸망했는지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역사,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쳐야한국사가 비분강개의 역사로 흐른 이유는, 한일강제병합을 통한 망국의 한(恨) 때문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시 역사가들은 개국 이래 최악의 비극 앞에서 울분을 토하는 심정으로 역사를 기술했다. 예컨대 장지연의 “오늘,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한다(是日也放聲大哭)”, 박은식의 ‘한국의 비통한 역사(韓國痛史)’나 ‘한국 독립운동의 피어린 역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그리고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과 애국주의 전기 문학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비감한 심정으로 민족의 슬픔과 야망과 기백을 강조하였다.그 결과 한국의 일제시대사는 결과적으로 세 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첫째, 그들은 일본의 잔학상을 강조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신복룡 건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