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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페루-칠레 해양경계선 분쟁, ICJ 판결의 시사점
  • 김동욱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페루와 칠레가 주장하는 해양경계선

1879년 페루-볼리비아 동맹국과 칠레는 고부가가치 자원인 초석(saltpeter)과 구아노(guano)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벌여 칠레가 승리하였다. 칠레의 승리로 페루는 남부지역 일부를 칠레에 넘기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약 38,000㎢의 해양을 칠레에 넘겨주게 되어 페루와 칠레 간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2008년 1월 페루는 '1948년 평화적 분쟁해결에 관한 미주조약(일명 'Bogota Pact')'을 근거로 ① 페루-칠레 간 해양경계획정 ② 일정 해역에 대한 칠레의 과도한 관할권 주장에 대해 판단을 구하는 소송을 국제사법재판소(이하 ICJ)에 제기하였다. 6년이 지난 2014년 1월 27일 ICJ는 페루-칠레 간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관련국의 주장과 ICJ의 판단

페루-칠레 간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페루의 입장이었다. 1947년 선언과 1952년 산티아고 선언은 단순한 배타적 해양관할에 관한 것이며, 1954년 칠레-페루 간 '특별 해양경계 구역에 관한 협정'은 어업 활동과 관련된 협정에 불과하므로, 페루-칠레의 해양경계선은 양국 국경선이 태평양과 접하는 지점을 기준으로 양국 해안선으로부터 등거리선으로 획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반면, 칠레는 1952년 산티아고 선언으로 국제적인 해양경계선이 이미 암묵적으로 합의되었고, 1954년 칠레-페루 간 '특별 해양경계 구역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 간 해양경계가 확인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ICJ는 페루-칠레의 해양경계획정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① 육지 경계선(Marker No.1)으로부터 80해리까지 위도와 평행하게(A점) 연결하는 선 ② A점에서 페루-칠레 등거리 선을 칠레 EEZ 경계선까지 연결하여 만나는 점(B점)을 연결하는 선 ③ B점에서 페루 EEZ 경계선까지 연결하여 만나는 점(C점)을 연결하는 선으로 한다. 다만, ICJ는 해양경계선 획정에 있어서 구체적인 좌표는 본 판결을 바탕으로 페루-칠레 양국이 상호 협조하여 정하도록 결정하였다.

최종 해양경계획정

ICJ는 페루-칠레 간에 해양경계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가들의 관행과 1947년 배타적 관할수역 선언, 1952년 산티아고 선언, 1954년 칠레-페루 간 '특별 해양경계 구역에 관한 협정' 등 일련의 후속 협정들을 검토하였다. ICJ는 1947년과 1952년 선언의 일정 요소에 비추어 양국은 해양경계에 관한 양해를 공유하였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1947년 선언 및 1952년과 1954년 일련의 후속 협정에서 경계선 'Marker No.1'과 평행하는 단일해양경계가 암묵적으로 합의되었으며(tacit agreement), 그러한 합의는 1954년 협약으로 공고화(cemented)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1954년 협약은 연안에서 12해리를 초과하는 해양경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는 있지만 해양경계에 대한 성격이나 범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제시하는 바가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하였다.

이어서 ICJ는 1950년대 당시 페루와 칠레 경계선(Marker No.1) 인근 항구인 Ilbo와 Arica에서 출발하는 조업선의 조업활동의 범위와 국가들의 관련 관행, 해양법에 관한 국제법 위원회의 연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해양경계는 육지 경계선으로부터 80해리 지점(A점)까지 이어진다고 보았다. 'Marker No.1'에서 80해리를 초과하는 A지점부터 칠레 해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 만나는 점(B점)에 관해서는 오늘날 해양경계획정의 일반원칙으로 자리매김한 3단계 방법인 ① 잠정적 등거리선 ② 관련사정 존재여부 ③ 비례성 충족여부의 검토방식을 따랐다. 마지막으로 C점까지는 페루의 경계선까지 남쪽으로 획정하였다.

'3단계 분석' 대비 '관련 사정' 충분한 검토를

1945년 미국의 트루먼 선언으로 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200해리 관할권 주장이 득세하였다. 당시에는 국가 간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아직 발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페루와 칠레 간 200해리 관할권 주장을 할 당시에는 육지로부터 연장되어 뻗어나가는 위도의 평행선이 해양경계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는 칠레의 소송 대리인이었던 제임스 크로포드(James Crawford)의 의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해양경계획정에서 '추정'에 의한 해양경계의 획정은 법리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 페루와 칠레 어선의 조업 활동, 관련국들의 국가관행, 국제법위원회의 의견 등을 검토한 재판부의 접근방법은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 또, 오늘날 해양경계획정의 일반 원칙으로 자리매김한 3단계 검토방법인 ①잠정적 등거리선(provisional equidistance line) ②관련사정 존재여부(relevant circumstances) ③비례성 충족여부의 검토(proportionality analysis)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3단계 검토방법이 이미 해양경계획정에 있어서 잘 확립(well established)된 방식임을 보여준다.

페루-칠레 판결의 시사점

이와 관련 페루-칠레 해양경계획정 판결이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가 간 쌍무적 행위나 조약 체결시 어떤 특정사안에 대한 암묵적 합의(tacit agreement)의 존재와 추후 조약에서 확인은 해당 법률행위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향후 제반 조약 체결시 의사표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본 판결에서 채택하고 있는 3단계 분석방법은 해양경계획정에서 일반적인 원칙으로 자리매김(well-established)하였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한국-중국, 한국-일본 해양경계획정에 대비하여 해안선의 길이 등 '관련사정(relevant circumstances)'에 관한 충분한 검토를 통해 이러한 국제법정의 분석 방식을 고려하여 해양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ICJ는 페루-칠레 해양경계가 해저, 하층토, 상부 수역을 포함하는 단일해양경계(single maritime boundary)라고 보았다. 따라서 EEZ와 대륙붕을 함께 규율하는 단일해양경계 내지 EEZ와 대륙붕을 별도로 규율하는 이중해양경계(double maritime boundary) 중 어느 방안을 채택할 것인지 전략적인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