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일 제5회 독도상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독도사랑상은 독도박물관의 초대관장을 지낸 고 이종학 박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동북아역사재단뉴스』에서는 고 이종학 박사의 외동딸 이선영 씨가 쓴 추모글을 싣는다. _편집자주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역사 문제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마쓰에시(松江市)에서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일본 고위 당국자들도 참석하여, 마치 일본 정부가 주관한 행사처럼 보였다는 뉴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런 일본의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짜증스러우며,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처럼 무신경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고요할 뿐 치열한 역사전쟁을 치루고 있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 한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내 아버지는 '역사를 김매기 한다'라는 뜻의 '사운(史云)'이라는 아호를 참으로 아끼셨던 분이다. 그 이유는 역사가 대대로 우리 자손들이 누려야 할 정신의 옥토라면 틀린 것은 제대로 바로잡고 올바른 것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잘 키워야 한다는 소신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호에 부끄럽지 않게 올바른 역사 알리기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역사 자료 수집에 평생을 보내셨다. 그런데도 후손인 나는 역사에 대해 아버지께 송구할 만큼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또 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셨던 많은 업적과 노력이 너무도 커서 감히 후손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평생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신 아버지의 열정을 떠올리며 힘든 현실에 처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자 적어본다.
서지학자, 이종학
내가 초등학교 시절 참으로 난감했던 일 중 하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서지학자라고 써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나는 우리 집 서재에 책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남에게 보여 줄 수도 없는 많은 책때문에 서지학자가 된 아버지의 직업이 맘에 들지 않았고, 친구들의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들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칭찬해주셨지만 아버지가 하신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정갈한 양복에 낡은 구두를 신고 고서가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신 모습이 가장 많다. 그렇게 자신에게 인색하셨던 아버지는 자료발굴과 연구 발표에는 아낌없이 투자하셨고, 어렵게 모은 자료들은 꼭 있어야 할 곳에 보내는 것이 자료를 빛나게 하는 일이라며 기증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자료는 독립기념관에 있는 대동여지도다. 당시 고서점 주인이 아버지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으로 보내기로 한 지도를 보여주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소수만 볼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독립기념관에 꼭 필요한 지도라며 고서점 주인을 설득하여 결국 지도를 들고 오셨다. 그때 환하게 웃으시며 내게 자랑하듯 말씀하시던 그 지도는 지금도 독립기념관에서 많은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잘 전시되고 있다.
이종학의 독도사랑
아버지의 자료 중에는 특히 독도에 대한 자료들이 많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과 일본 정부에서 발행한 고지도들이 대부분인데 물론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표시한 것들이다. 그 고지도들은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아버지는 이 자료들이 그 어떤 말보다 우리의 주장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있음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라고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독도는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 영해에 관한 국제해양법 관련 세미나에서 '조선해표기 지도의 정당성', 즉 '일본해 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하셨고, 2002년『잊혀진 '조선해'와 '조선해협'』을 발간하여 동해의 고유 명칭이 '조선해'라는 것도 국내외에 확실히 주장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도 간과하지 않으셨다. '시마네현 고시'에 대해 국내 최초로 일본 의회와 시마네현 의회 속기록을 조사하여 『일본의 독도정책 자료집』을 발간하여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주도면밀한가를 보여주셨다. 더 나아가 한일강제병합 이전 이미 일본의 조선 침략이 불법이고 부당한 만행이었으며 그것은 치밀한 계략 속에 자행된 일임을 『조선총독부 보고 한국병합시말』이라는 한국 강점 극비문서를 통해 알리셨다.
이렇게 아버지는 본인의 소신대로 숨 가쁘게 사셨지만 그 삶이 항상 많은 인정과 격려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들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셨지만, 그래서 그 강직하고 완고한 모습 이면에는 누구보다 더 외롭고 힘들어 하던 모습이 있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넘치는 영토사랑으로 2001년 평양에서 개최된 "일제의 조선강점 비법성에 대한 남북 공동 자료전시회"를 위해 북한 사회과학원에 2,000여점의 자료를 기증하였다. 그것은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일에 남한과 북한이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무지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많이 아는 사람은 열정이 가득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역사의 악순환을 벗어나 열정으로 마음을 다해 노력한다면 고요하지만 치열한 역사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지혜롭게 승리할 것을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로 아는 것이 먼저이고, 다음은 작은 일에도 함께 참여하는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도발할 것이고 그에 맞서는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모두 열정을 모아야 한다. 전쟁터에서는 작은 것 하나를 내주면 곧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우리가 잃을 것은 우리 영토와 영해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의 독도에 대한 열정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작은 불씨로 되살아나 온 국민이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힘쓰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