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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천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 신형식 | 재단자문위원(이화여대 명예교수)
재단자문위원-이화여대 신형식 명예교수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중국에서는 長白山)의 멋은 최고봉인 병사봉(중국에서는 白頭峰, 북한에서는 장군봉)을 비롯한 험준한 여러 봉우리의 위용보다는 신비스런 산정의 유리알같은 호수인 천지(원래 이름은 大池ㆍ大澤)의 존재에 있다. 20여개의 웅장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천지는 한 많은 천고의 비밀을 간직한 채 해맑은 물속에 신기한 동ㆍ식물의 서식처가 되어 높다란 하늘(天)과 깊은 호수(池)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1702년에 화산이 폭발한 이래 이러한 하늘과 땅의 조화는 300여 년간 백두산을 지켜주었으며 항일 독립투사의 은거지였던 종덕사(宗德寺)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오늘에는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승지가 되고 있다.

중국은 백두산이 금나라 이후 여진족의 발상지로 우리와의 인연을 끊어 버리려는'장백산 문화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 비극의 천지는 1962년 중국(周恩來)과 북한(金日成)간에 서쪽의 제5 신국경비로부터 동쪽의 제6 신국경비를 직선으로 연결하여 45.5대 54.5(북한측)의 비율로 분할되고 말았다. 천지는 억울한 간도의 역사도, 분단의 슬픔도 모르는 체 거울같은 맑은 물속에서 세줄로 떨어지는 요란한 비룡폭포의 물줄기를 내려 보내면서 송화강을 잉태하는 아픔을 절규하여 보는 이들에게 감탄과 경탄을 주고 있다.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두 가지 오류

여기서 우리는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두 가지 오류를 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선 백두산의 명칭이다. 중국측에는 불함(不咸ㆍ蓋馬ㆍ徒太ㆍ太白ㆍ長白) 등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와 연결한 백두산과의 고리를 끓고 있다. 더욱이 중국문화와 연결시킨 숙신ㆍ읍루는 불함산과는 실제 지리적으로 관련이 적었으며, 태백산은 옥저ㆍ말갈과 그리고 발해와 연결시키면서 다만 당(唐)대까지 사용한 태백산이 고구려와 인접해 있을 뿐 우리와 직접 관련성은 반대한다. 따라서 장백산은 숙신계통의 한족(漢族)문화에 속하여 중국의 동북지역은 중국정부의 행정 체계속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중국변방문화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견해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상징인 백두산을 우리 민족과 단절시켜 그들의 '동북공정'이나'장백산 문화론'의 틀속에 함몰시키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사실 백두산에 대한 최초 기록은「고려사」(世系)에 왕건의 5대조인 호경(虎景)이 백두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삼국유사」(권4, 臺山五萬眞身)에서'오대산이 백두산의 근간'이라고 하여 불교적 표현은 되었으나 통일신라 때 이미 백두산은 고구려인들의 자주의식을 계승하였으며, 고려가 이를 이어 받은 것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에는 백두산이 왕조의 출발지역으로서, 또는 국가의 경계지점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으로 윤관(尹瓘)의 9성(公嶮鎭)의 위치비정에도 그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천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천지에서 흐르는 강은 비룡폭포로 이어지는 이도백하(송화강)뿐이다. 그리고「요동지」의 설명에"토문강은 송화강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어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니고 송화강 줄기(오도백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41년도 발행인「일본지리부도」(守屋美智雄저)에도 오도백하가 토문강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압록강과 두만강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천지4km 남쪽의 지역(현재 양강도 삼지연군) 구릉에 북한에서 세운 백비가 세워져있는데 그곳이 없어져 버린 정계비터이다. 그 남쪽에 있는 대연지봉의 서쪽에서 압록강이 시작되었다. 다만 두만강의 지류는 북쪽에 홍토수(현재 중국과 북한의 경계), 그 남쪽에 석을수, 그리고 그 남쪽에 홍단수가 있다. 따라서 대체로 석을수와 홍단수로 두만강의 시원을 찾는데 이 두 강은 대연지봉 동록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압록강과 두만강은 천지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라, 그 남쪽인 대연지봉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다. 모든 지리부도에서 이런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토문강으로 확인된 오도백하도 이 천지에서 북으로 흘러가지만 하절기를 빼면 건천(乾川)이어서 경계표시를 위해 석퇴(石堆)와 목책(木柵)을 쌓았는데 계속 북으로 흘러 국경선 부근에 이르러 물이 불어 큰 강을 이룬다.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경계 지역에는 현재 양국의 군부대(초소)가 있는데 여름이 아닌 시기에는 물이 말라 강바닥에 자갈만 늘어져 있어 건천임을 알 수가 있다. 이 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남도향(북촌ㆍ남촌)이라는 마을에는 남원(南原)에서 이주한 100여호의 동포가 살고 있으며, 그 부근의 서남차란 마을에도 제천(堤川)에서 1939년에 일제의'기획이민'으로 옮겨진 교포들(후손)이 살고 있다. 이들은 돌아가신 부모님들로부터 전해들은 희미한 조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북쪽으로 흐른 오도백하는 삼도와 송강을 지나 사도백하와 삼도백하, 그리고 천지에서 발원한 이도백하를 만나 송화강이 된다.

1962년에 맺은 중국과 북한간의'중조변계의정서'에 따라 천지의 서쪽에 제5 신국경비(압록강 유역에 1~5)를 세우고 천지를 동서로 나눈 후에, 그 동쪽에 제6 신국경비(6~21호)를 세운 후 직선으로 동쪽으로 국경선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홍토수가 국경선이 됨으로서 간도는 영영 우리영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로서 천지는 슬픈 역사를 머금고 말없이 맑은 물만 토해내고 있다.

신국경비
오도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