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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발간도서] 『동북아역사재단뉴스』2008년 7월호

한족 중심 역사 인식은 공통 발해사 서술서는 약간의 차이도

『중국과 타이완ㆍ홍콩 역사교과서 비교』

임상선 | 연구위원(제2연구실)

중국과 타이완ㆍ홍콩 역사교과서 비교

지금까지 중국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일부 분석이 있었지만, 타이완이나 홍콩의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비교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이완 교과서에서 현대 한국에 관해서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편이었다. 홍콩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00여 년 이상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통치체제 아래 놓여 있던 곳이며, 중국 국가의 역사교육이 체제를 달리하던 지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가도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

본서는 이상과 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중국의 역사교과서와 타이완, 홍콩의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한국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상호 비교, 분석한 것이다.

먼저 이성제의 『중화권 역사교과서의 고대 한국사 서술과 그 경향』에서는 고대 한국의 지리적 범위와 관련 중국 역사교과서는 고대 한국 관련 내용의 첫 머리에서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조선반도에 거주하여 왔다"고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의 근저에는 지금의 동북3성 지역은 중국의 역사적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역사교과서가 한국사 관련 내용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과 달리, 홍콩 교과서에서는 고구려를 변강민족으로 규정하고 있고, 타이완 역사교과서는 한반도에서의 역사 시작을 기자 혹은 위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강선은 『중화권 역사교과서의 북방민족과 일본관련 서술 분석』에서,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중화권의 역사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한족(漢族) 문화의 우수성과 한족의 우월성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의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이 타이완이나 홍콩에 비해 가장 한족 중심의 역사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선은 『중국과 타이완ㆍ홍콩 역사교과서의 발해사 내용 분석』에서 발해의 건국과 그 주민에 대해서 중국의 역사교과서나 대학교재에서는 일률적으로 속말말갈 대조영이 말갈족을 기반으로 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의외로 타이완이나 홍콩의 역사교과서에서는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홍콩의 역사교과서에서 발해국은 명백히 당의 국경 밖에 존재하는 독립국이고, 타이완의 경우에도 발해는 당과 별개의 독립국가로 표시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은자는 『중국과 타이완 역사교과서의 중국 근대사 서술 내용 비교 분석』에서 중국역사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청일전쟁(淸日戰爭)을 일본과 중국의 침략 대 반침략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중ㆍ일 양국 관계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조선 문제는 종속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조선을 둘러싼 중ㆍ일 양국의 주도권 전쟁이라는 성격을 배제한 체, 청군의 조선 출병을 조선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끝으로 중국과 타이완, 홍콩의 교과서에 표시되어 있는 지명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중국ㆍ타이완ㆍ홍콩 대부분의 교과서는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간에 논란이 되고 있음에도, 이와 관련된 아무런 설명 없이 '백두산'을 '장백산', '동해'를 '일본해'로 일방적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타이완의 일부 사회 교과서에서 '일본해(동해)' 혹은 '독도(獨島)'로 표기한 경우도 있지만, 향후 우리 측 표기의 정당성을 알리고 이에 근거한 시정 요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과서는 자라나는 젊은 세대와 그 나라 국민의 역사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아울러 주변국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특히 그 나라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이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자국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상호 이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재단에서는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본서가 학계만 아니라 교육현장에서도 유용할 역할을 하고,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불평등 소유의 악순환이 식민지 경제의 "본질"

『植民地朝鮮の開発と民衆(식민지조선의 개발과 민중)』

허수열 | 충남대 교수

식민지조선의 개발과 민중

오랫동안 한국사학계의 주류적 인식은 일제시대를 수탈의 시대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제시대 조선경제에서 개발의 측면을 강조하는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수탈의 측면도 인정하면서 개발의 측면을 조심스럽게 강조하는 이른바 '수탈과 개발론'으로 시작되었지만, 심지어 수탈의 측면을 부정하고 개발의 측면만 부각시키는 주장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를 비롯한 일제시대의 대부분의 통계는 이런 새로운 시각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제시대 조선경제에서 개발의 측면을 부정하는 연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않는 매우 이데올르기적인 연구라는 주장마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植民地朝鮮の開発と民衆』(허수열 저, 원제 : 개발 없는 개발)은 일제시대 조선경제가 개발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농림 수산업 등 제1차 산업부문의 생산도 비약적으로 증대되었지만, 그 보다 특히 광공업부문의 발달이 매우 눈부신 것이었다는 점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수탈과 개발론'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개발이 조선이라는 지역에서 나타난 현상이었고, 조선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개발이었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즉 이 책에서는 소득창출의 주요 원천인 생산수단(토지와 자본 등)이 민족별로 얼마나 불평등하게 소유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불평등도가 시간이 경과 할수록 더욱 확대되어 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민족별로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소유관계는 소득의 불평등을 낳고, 그것이 다시 소유관계의 불평등도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그런 경제구조가 바로 식민지경제였고, 따라서 식민지경제구조가 척결되지 않는 한 비록 조선이 개발된다고 해도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는 현재도 또 미래에도 아무런 희망이 있을 수 없는 경제 바로 그것이 식민지경제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일제시대의 개발의 결과는 태평양전쟁과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상당부분이 소실되어 버림으로써, 20세기 후반의 한국의 고도성장에서 일제시대 개발의 결과로 남겨진 물적 유산이 한 역할도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전 상인이 세우고 관료들이 일본 자본을 투자한 섬유공장
1899년 우편과 전기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 교육 기관
1899년 설립된 민족계의 근대적인 대한천일은행

 

『중국학계의 북방민족ㆍ국가 연구』
임상선 | 연구위원(제2연구실)

중국내 고구려, 발해, 요, 금 연구 현황 국내 최초 분석

중국학계의 북방민족ㆍ국가 연구

고구려, 발해, 요(遼), 금(金). 네 나라는 한반도의 '북방지역'인 동시에,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활약한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앞의 두 국가는 한국사에서도 그 일원으로 다루고 있지만, 뒤의 두 국가는 중국사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근래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라고 하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이 지금의 중국 영토에 속하기 때문에 이 일대에서 출현한 민족과 국가는 모조리 중국사에 속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중국의 역사해석의 기본논리이다.

그러나 앞의 네 국가가 있었을 당시 '중국'은 만리장성 혹은 요하(遼河)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네 국가 중 당시 중국의 일부라고 자처하거나 인정한 국가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중국의 역사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요와 금은 '중국'의 영역 일부를 차지하고, '중국'의 왕조(宋)로부터 조공을 받은 국가였다.

최근 간행한 『중국학계의 북방민족ㆍ국가 연구』는 고구려, 발해, 그리고 요(거란), 금에 대한 중국학계의 연구 및 관련 유물ㆍ유적들의 현황을 분석한 국내 최초의 연구성과이다.

본 연구는 한국 학자 5명과 중국학자 2명이 공동으로 수행하였는데, 한국 학자는 주로 중국 학계의 관련 연구 현황을 분석하고, 중국 학자는 관련 유물ㆍ유적 현황을 소개하였다. 중국 학계의 발해 건국에 앞서 말갈, 고구려 유민, 발해 유민, 거란, 금 연구 현황을 비롯하여, 발해 유민과 요ㆍ거란ㆍ금ㆍ여진 관련 유적 및 유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하였다.

중국학계의 연구 중에서는 우리 학계에서 간단히 지나칠 수 없는 점도 상당하다. 가령, 중국의 거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1980년 전후부터인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된 논문 숫자만 해도 1,500편을 넘고, 매년 거란관련 분야에서 3~4명의 박사와 5~6명의 석사를 배출하고, 그 주된 내용은 거란의 유목 문명적 특징을 논하면서도 중원 한족문화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거란연구를 분석한 윤영인 교수는 거란제국의 역사를 단순히 '중국사' 또는 '중화민족'의 역사로 볼 수는 없으며, 북방의 하찮은 '오랑캐'의 역사는 더더욱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거란-여진-몽골-만주로 이어지는 천년의 동아시아 북방제국사의 서막을 연 거란의 역사는 동아시아 역사와 전통을 중국(한족)의 입장에서만 접근하려는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김위현 교수는 중국의 금사 연구는 자국의 사료에만 의존해 지나친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 학자들의 영향으로 한국 학자들도 무의식중에 당(唐) 이후의 시기를 송ㆍ요ㆍ금ㆍ원으로 부르지만, 건국한 시간 순서에 따라 요ㆍ송ㆍ금ㆍ원으로 바꾸어 불러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한편 고구려 유민, 거란, 금, 여진 관련 유적과 유물에 대한 금석문이나 사진 자료는 국내의 연구자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바이건싱(拜根興) 교수는 고구려 유민이 분산해 간 지역을 여섯으로 나누어 상세히 고찰하고, 관련 유적의 실태를 사진자료를 첨가하여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서안(西安)의 '고려곡(高麗曲)', 고구려 마지막 왕인 고장(高藏) 묘지(墓地), 1993년 서안시 파교구(灞橋區) 무장향(務莊鄕)에서 발견된 사선의일(似先義逸) 묘지(墓地) 등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 또 유물 자료로서 고구려 유민인 왕경요(王景曜)ㆍ고망원(高望遠)ㆍ고덕(高德)ㆍ이인덕(李仁德)ㆍ이회(李懷)ㆍ두선부(豆善副) 등의 묘지명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한다.

또한 왕위량(王禹浪) 교수도 동북지역의 요ㆍ금ㆍ거란족ㆍ여진족 시기의 고성(故城) 유적지, 관인(官印), 고탑(古塔), 사묘(寺廟), 비각(碑刻), 동경(銅鏡), 묘지(墓誌), 그리고 정교한 벽화 등을 소개하고 있어, 국내 학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본 책자의 발간을 계기로 고구려, 발해, 요, 금이 '중국'과 어떻게 다른 역사와 문화를 형성, 발전시켰는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북방지역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韓国原爆被害者 - 苦痛の歴史(한국원폭피해자-고통의역사)』
정근식 | 서울대 교수

한국인 피폭자들 몸에 새겨진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

한국원폭피해자-고통의역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미국의 원자폭탄 때문에 한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전쟁종료의 수단으로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고, 오히려 침략자 일본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압제자에 대한 증오는 범인류적 문제까지도 민족중심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의해 약 7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이중 약 23만명이 그 해에 사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에 약 10%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실을 알고도 원폭투하를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1945년의 원자폭탄은 한국인에게는 일종의 신화로 남았고, 한국인 피폭자의 문제는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피폭 60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 한국의 피폭자들은 일본정부로부터 변화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60년의 세월은 수많은 원폭피해자들의 생명을 앗아갔고, 이들의 고통의 목소리와 함께 기억도 앗아갔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피폭자들의 기억을 되살려 역사적 증언으로 만드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식민지적 경험의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강제연행의 역사, 식민주의가 초래하는 희생과 평화에 대한 염원, 과학과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 나아가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에 대한 희망 등이 이들의 증언 속에 녹아들어 있다. 구술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언과 이를 경험한 주체의 자기 성찰,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그 사건에 투사한 서사의 결합물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들의 구술사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이나 애환으로 점철된 삶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 결과이다. 한국의 피폭자들의 구술사는 여기에 속한다.

『韓国原爆被害者 - 苦痛の歴史』(정근식 저, 원제 : 고통의 역사)는 한국에 생존하고 있는 피폭자들 21명의 구술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의 피폭자들은 서울과 대구, 특히 합천에 많이 살고 있는데, 이 책은 편의상 호남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증언을 모았다. 이 책은 2005년 한국어로 서울에서 출판되었고, 이제 이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에서 출판하게 되었다. 일본어로의 번역은 그동안 한국의 피폭자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치바 준코 선생이 담당하였다.

사실 이 책은 한국의 피폭자들의 최초의 생생한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으려면 많은 감수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피폭자들은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았던 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현재의 생존자들은 상당수가 어렸을 때 피폭을 경험했다. 피폭 경험은 대표적인 섬광기억으로 남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피폭경험을 구성하고 있는 주변의 보조기억들은 툭툭 끊어지거나 이리저리 파편화되어 기억의 세계를 부유하고 다닌다. 따라서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되살리고 파편화된 기억을 붙들어 매려면, 여러 가지 배경지식과 보조장치들이 필요하다.

한국의 피폭자들의 몸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고통의 기억을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되살리는 작업이 동아시아의 역사와 기억의 민주화의 첫걸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이 책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