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뉴욕 맨해튼 116번가에 있는 콜롬비아대학을 찾았다. 찰스 암스트롱 교수, 그는 이미 한국을 비롯해서 아시아 연구에 있어 이름이 알려진 전문가로, 나와는 2005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한 콜롬비아 대학 국제심포지엄을 주선한 인연이 있었다. 학교는 이미 방학한 후라 한산한 콜롬비아 대학 한국학 연구소 그의 연구실에서 만난 암스트롱 교수는 만나자마자 가을학기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한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다면서 먼저 운을 떼었다. 역사학자인 그는 최근 동북공정을 비롯한 위안부문제, 교과서문제, 독도문제 등 동북아 역사갈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애정 어린 입장에서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Q.양: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동북아 역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선생님의 의견이 어떠신지요?
A.암스트롱: 나는 역사화해가 가능하리라고 믿고 싶어요. 몇 년 전에 주 북한 동독대사로 일했던 한스 모츠카이(Hans Moretsky)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당신은 화해를 말하는 남북한 사람 모두를 알고 있지만, 때때로 상반된 체제를 가지고 있는 두 나라는 화해할 수 없지요. 그들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라고요.
우리는 화해에 이르는 길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화해를 위한 수많은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지 알아야하지요. 특히 동북아지역은 역사적으로 갈등이 축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과 북, 중국과 타이완 등 분단된 나라가 있는 매우 독특한 지역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각 국가의 역사에 대한 공동의 이해조차도 어렵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역은 민족주의가 매우 강력할 뿐 아니라,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좀 남다르지요. 남북을 둘러싼 분단 전후의 많은 문제들, 특히 한국전쟁을 둘러싼 한국인과 비한국인(non-Korean), 남과 북의 논쟁이 그렇죠. 또한 한국과 중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일본 식민주의의 잔재, 친일협력 문제 등 동북아를 둘러싼 환경이 역사적 화해로 나가는데 문제가 많은게 사실이죠. 세계적으로는 민족주의가 사그라지고 있는데 반해, 동북아 지역은 반대로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과 북, 중국과 대만 그들 모두 일본의 식민지경험과 일본의 전쟁에 대해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는 매우 감정적이고 논쟁이 따르게 되지요.
각 국가들은 열린 대화와 자유로운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 정말 어떤 역사가 사실에 기반한 역사인지를 고민해야 하는거지요. 각국의 사회들은 열린 대화가 가능하도록 정부에게 요구해야합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선거라든지,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부터, 엔지오를 통해 혹은 학계라든지 공동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토론할 수 있는 외부의 다른 조직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렇게 한다면 역사에 대한 진정한 차이가 무엇인지, 역사의 사실에 대한 진정한 논쟁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오늘날 이루어지는 논쟁의 대부분은 사실 역사문제라기 보다는 현재 역사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입니다. 어떤 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각 국가 안에서 개별적으로 해결되기도 합니다만, 정보의 홍수 속에 있는 오늘날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불가피하게 국내적인 논쟁들이 국제적으로 번지게 되는거죠.
개방적이고 정직한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적 부채를 토론해야
Q.양: 동북아 역사갈등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 향후 중요할텐데요, 선생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암스트롱: 동북아 역사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은 참 흥미로운 물음인데요. 예를 들면 2007년에 미하원을 통과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관한 결의안 121호와 2차 세계대전 중의 중국인 강제노동에 관한 법적 행동 등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나는 실제 그것이 그리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두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이 문제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의 개입을 통해 영향력을 주는게 한계가 있다는 점이죠.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은 중립적 위치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거죠. 어떤 단계에서는 20세기에 있었던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문제에 대한 토론은 미국을 포함해야만 합니다. 미국도 이 부분에 있어서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미국 자체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복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사와 미국의 관계가 너무 드러나지 않기도 했죠.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을 끝내는 방식 등에 관해서 일본 안에서 특별히 억압된 분노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미국정부나 미국의 연구자, 미국의 개개인들은 이 부분을 대화의 한 영역으로 삼아야 할 뿐 아니라, 개방적이고 정직한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적 부채, 즉 20세기 동아시아에 대한 역사적 부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합니다.
Q.양: 동북아 역사갈등이 향후 동북아 평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암스트롱: 이런 국제적 갈등들이 군사적 갈등으로 비화할 것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특별히 중국과 일본 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이 있으나, 이것 역시 중국과 대만, 남과 북에도 역시 있거든요. 만약 이러한 긴장관계가 역사적인 갈등 국면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동시에 안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진행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역간의 경제적인 협력과 통합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이것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는 경제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요. 많은 경제적인 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협력이 자동적으로 갈등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깊어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갈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생활과 역사의 분리라고나 할까요?
Q.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요?
A.암스트롱: 동북아 역사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간단합니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역사에 대한 정직한 토론을 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갈등은 역사적 사실을 간단하게 지적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역사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국가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부간 영역을 포함한 각 영역간의 진지하고 정직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1990년대에 동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서 역사화해에 대한 진전이 있었죠. 남아프리카의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대표적인 것인데, 때론 진실이 화해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진실과 화해는 반드시 함께 오지 않아요. 때로 진실은 갈등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가정을 다시 생각해야만 합니다.
ASEAN 모델을 고려해봐야
Q.양: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어떤 모델이 동아시아 역사갈등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시는지요?
A.암스트롱: 내가 볼 때 동아시아에서 유럽의 사례를 너무 많이 비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럽의 역사는 분명히 동아시아 역사와 다릅니다. 동아시아는 그들 방식으로 역사적인 갈등을 풀어가야 한다고 봐요. 따라서 유럽모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만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게 필요합니다. 나는 동남아시아 ASEAN 모델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랜 기간 태국과 베트남, 버마와 태국 사이에 깊은 역사적 갈등이 있었지요. 이 갈등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인종적, 종교적 문제로 혼합되어 있으나 그들은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유럽처럼 공동의 정체성을 찾지는 못했어도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점을 매우 높이 삽니다. 때로는 과거를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가 현재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거지요. 물론 동북아의 경우는 좀 다르긴 합니다. 중국과 일본은 세계적인 강대국이고 그들은 아시아의 맹주가 되고자 서로 경쟁하고 있지요. 여기에 한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다 큰 지역통합과 다각적인 협력을 위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역할을 해야만 하지요.
(찰스암스트롱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배워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미국인 역사연구자인 로버트 파 박사와 함께 진행하였으며 인터뷰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번역상의 오류는 전적으로 필자에게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