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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럽의 역사회해가 주는 교훈
유럽의 역사화해가 주는교훈
신연성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2004년 6월 6일. 평소와는 달리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하얀 구름 조각만이 점점으로 흩어져 하늘 멀리 머무는 노르망디 해변에 아름다운 아침이 밝아왔다. 참으로 고즈넉한 해변 마을 풍경이었다. 헌데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노르망디 해변을 배경으로 이른 아침부터 형형색색의 군복 차림을 한 백발의 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망울은 하나같이 파도소리마저도 멈추어버린 먼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의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필자가 목격한 2004년 6월 6일 아침 노르망디 바닷가의 모습이다. 그날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은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해변에 모여든 노인들은 당시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퇴역 노병들이었다.

지난 과반세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소위 '평화의 시대'로 그려진다. 일부 지역적인 전쟁이 없지 않았지만 이는 불가피하게 치러야 했던 냉전의 산물로 치부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벌어진 일부 국지적인 전쟁은 테러와 같은 비인도적 도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응징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처럼 오늘날 인류 사회가 전쟁이나 갈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지난 과반세기를 '평화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크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2004년 6월6일 노르망디 해변에서 마주한 "감동"

다만 이러한 평화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국제사회 질서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비교해 보면 유럽의 경우 역사적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의 질서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아시아의 경우 갈등의 해소와 화합이 아직은 극히 미숙한 단계에 놓여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대륙은 오랜 기간에 걸쳐 때로는 신중한 자세로, 또 때로는 감동적인 모멘텀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대단히 긍정적인 좌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로서 보다 오히려 한편의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2004년 6월 6일 아침 노르망디 해변은 단순히 상륙작전에 참여한 노병들의 기억을 보듬는 장소가 아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주최국인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물론 미국의 부시 대통령,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20여개 전승국가 원수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전쟁 도발국가이면서 패전국인 독일의 슈뢰더 수상이었다. 그는 행사에 참석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지난날의 죄과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피해국가의 정상과 국민들도 슈뢰더 수상의 사과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진심어린 사죄와 용서, 그리고 갈등의 봉합과 화해를 위한 긴 세월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노르망디에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두 달 후인 8월 1일에는 바르샤바 봉기 60주년 행사를 계기로 슈뢰더 수상은 폴란드로 달려가 지난날 독일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유럽대륙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노력이 이와 같은 잔치마당을 통해 어느 한순간에 결실을 거둔 것은 물론 아니다.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지도자, 국제정치적 상황을 투시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명운을 개척한 외교관, 국민 개개인의 의식을 깨우친 철학자, 화해와 평화로운 공존을 염원하는 시민,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어린 학생들. '수준 높은 지식과 양심에 따라 미래를 내다보려' 노력한 역사학자, 이들 모두의 결집된 노력이 유럽대륙에서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지평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마침내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역사를 썼다. 2006년 7월에 발간된 고등학생을 위한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가 그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역사의 기술을 통해 역사의 화해'를 구함으로써 지난 세월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일 정치지도자들의 진정성을 기대하며

서로에 대해 어두운 역사적 기억을 가진 두 국가가 역사에 대한 기록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 모두 그것이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차적인 이해 없이는 진정한 화해도 불가능하다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마침내 공동의 역사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도 미래의 세대들이 학교에서 배울 교과서의 형태로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공동교과서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책의 중심 내용이 "뒤얽힌 역사, 공유하거나 다툰 기억,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인식, 양국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한 이해, 양국 관계사에 대한 파악, 유럽 및 국제적 맥락에서 바라본 양국의 역사"라고 밝혔다. 오늘날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역사 갈등에 비추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역사적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으며, 이러한 총리의 정치적 의지 표명에 이어 오카다 가쓰야 외상은 한·중·일 3국 공동 역사교과서의 집필이 이상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추구하는 이념적 좌표이다. 또한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의 집필은 재단 출범 이후 꾸준하게 추구해온 정책대안이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공동 역사교과서 문제가 한·중·일 사이에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로부터도 배움을 얻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의지가 진정성 면에서 재단의 이념과 맞닿아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