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15회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 도중 확인된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결정이 관심을 끌었다.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한다는 지침을 세우고 권고안을 낸 것이다. 국제적으로 지명 논의를 선도하는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결정 뒤에는 그동안 동해 표기 문제를 위해 애써온 수많은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요즘 동해 표기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주성재 교수를 만나보았다.
개인적으로 동해표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동해연구회 회장인 이기석 교수의 권유로 2004년 파리에서 열린 동해세미나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해연구회에 참여했고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은 하고 있는 업무 중에 50% 이상이 동해 표기 문제 관련 업무다. 연구하고, 국제회의를 주관하고 참석하며 각국의 전문가들과 네트워킹 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제15회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서 확인된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권고한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결정이 갖는 의미는?
한 나라의 국가지명위원회에서 "동해를 일본해와 같이 쓰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한 것은 최초라고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학계 전문가를 설득하고 지도를 만드는 민간업체를 설득해 지도 제작에 동해 표기를 반영하도록 해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지명위원회가 움직였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갖는다.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지명위원회에는 민간 전문가들, 정부 측 인사들, 지도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각종 지도와 학교에서 쓰는 지도책에는 동해/일본해라고 병기 하는 것이 적당 하겠다는 권고 사항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되는 지도책에는 모두 적용될 것이라고 본다.
동해연구회는 매년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성과는?
세미나 초기에는 '동해 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라고 칭했었는데, 최근에는 좀 더 폭넓게 바다 이름을 논의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자는 뜻에서 이름을 바꿔 세미나를 준비하고 개최해왔다. 그 결과,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기를 꺼리던 전문가들도 점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다 이름을 논의하는 중에 동해문제를 사례로 삼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영향력 있는 지명 전문가들이 논의하는 테이블에 동해문제가 본격적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진전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전문가들도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가 합당하다는 데 동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 또한 큰 성과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먼저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것이다. 개최할 때는 참가자와 참가 장소가 중요한데 지명 논의를 이끄는 전문가들과 그들이 활동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점점 확대시킬 예정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다소 신경 쓰지 못했던 중앙아프리카와 남미 쪽으로 영역을 넓힐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지명회의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엔지명전문가회의에 적극 참여해 그곳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네트워킹 하는 것이다. 2011년에 있을 제26차 회의에서는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결정을 비롯한 이번 세미나의 결과를 알릴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관계자들은 국제적인 세미나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이 중요한 참가자가 됐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도하고 있는 각국 지명위원회와 지도 제작업체 등의 설득작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함께 할 수 있는 젊은 전문가들이 많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이다.
그래도 동해 표기 문제를 거론할 때 나타나던 국제사회의 피로 현상은 아직 극복하진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동해 표기 관련 주제가 나오면 아무래도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또, 일본과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국제사회에서는 아예 개입을 꺼려했다. 이런 상황에 동해 표기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피로현상을 극복하고 전문가들을 동해문제에 대해 적극 개입하게 하려면 "부드럽고 간접적인 방법"이 주효할 것이다. 동해 표기에 국한하지 않고 바다 전체 이름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국제사회에서 열리는 지명회의에 기여하면서 우리의 역할을 점점 확대하는 것이다. 1967년부터 5년마다 총회를 여는 유엔지명표준화회의가 내놓은 결의안은 총 195개가 있다. 얼마 전 동해연구회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원을 받아 195개의 결의안을 순차별, 주제별, 키워드별로 검색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웹에 올렸다. 이런 식으로 국제 사회에 기여하면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현재 동해표기 문제와 관련해 진행 중인 연구 주제가 있는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주제중 하나인 외래지명(exonym)에 대해 관심이 많다. 외래지명은 토속지명의 반대 개념으로 유엔지명전문가회의에서는 외래지명을 가급적 쓰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일본의 수도를 우리식 한자음인 "동경"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쓰는 "도쿄"라고 부르는 게 보다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중·일은 한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글자를 쓰고도 모두 다르게 읽는다. 그러니 동양어권에서 외래지명을 다루는 것은 좀더 복잡한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흥미를 느껴 몇 년 동안 관찰을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동양어권의 외래지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주성재
1962년 생.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펄로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고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사)동해연구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제9차 유엔지명표준화화의 총회, 제17차 국제수로기구 총회 등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등 동해표기 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바다 이름의 국제적 표준화 사례와 동해 표기 정당화에의 시사점' '최근 동해표기 복원의 추진현황과 향후 연구 동향과제'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