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북방사라면 주로 만몽강역의 역사를 의미한다. 그간 이 지역에 대한 연구는 어떠하였는가? 만몽 지역은 우리 고대사의 근원지라 하여 한국사의 범주에서 다루었고 동양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지역이다. 그간 동양사 연구의 추이를 보면 중국사가 곧 동양사이고, 또한 중원 한족 왕조사가 중국사였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표준은 항상 중원 농경문화였다. 그러자니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국가의 역사와 문화는 항상 '미개'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역사적인 안목을 바꿀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북방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연구는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1930년대부터 일본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간 이 방면 연구에 참여하였던 마츠이 도(松井等),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등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소위 만선사관(滿鮮史觀) 확립에 심혈을 기울이게 하였다. 이에 맞서 중국학자들도 동삼성 연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결국 양국 학자들의 연구는 학문보다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서 역사를 이용한 것이라 하겠다.
그간 우리에게는 연구는 물론이요 사료마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일본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우리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 또 체계를 세워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으므로 모든 분야의 역사학자들이 한국사 연구로 관심을 돌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변국사나 우리와 밀접한 북방민족사에까지 관심을 쏟을 형편이 못되었다.
'동북공정'으로 '북방사'연구의 중요성 자각
그러나 2002년 소위 동북공정이 알려지면서 중국이나 우리나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북방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의 연구방향은 랑케(Ranke)의 《라틴·게르만 민족사》 서설처럼 "우리는 역사학이 과거를 재판하고 장래 유익하도록 인류를 선도한다는 따위의 기능을 기대하여 왔다. 이 글은 그런 허황한 기능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원래 어떻게 있었는가를 보이려 할 뿐이다. 아무리 제약이 많고 아름답지 못한 사실이라도 그것을 정확히 제시한다는 일이 최상의 원리임을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라는 정신에 의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북방사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
한국사는 무조건 한국사학자, 동양사는 동양사연구학자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같은 동양사라도 고대냐 중세냐 근세냐에 따라서 전공을 구분 짓는 생각들을 이제는 변화시켜야 한다. 역사가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기왕의 방법은 시대의 조류에 뒤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사료를 새로 발견했다고 하면 그 사료의 진위나 연대측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해독해야 할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사료를 분석할 것이며 기왕의 학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사람이 모두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역사학은 물론 지리학, 언어학, 민속학을 하는 학자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좀 더 과학적이고 좀 더 논리적인 연구를 하려면 우선 시대와 영역을 뛰어넘고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능력에 따른 학제간의 공동연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학문의 칸막이를 뛰어 넘는 학제간 공동연구 절실
고대어, 사어(死語)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 단어로 말미암아 전체가 바뀌어 질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거란, 실위, 몽골, 여진 등 고대 국가 어언의 잔재라도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10년 전에 고구려 연구회에서 흑룡강성에서 온 어느 학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시켰는데 이 사람이 강연 중에 중요한 부분을 옥저(沃沮) 언어로 풀어 나가기에 어떻게 옥저어인줄 아냐고 반문하였더니 옥저인이 집단 이주한 사실을 예로들면서, 지금도 일부 지역인들 언어 중에는 옥저어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기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우리 역사라면서도 지지 한권 만든 적이 없고 지도 한 장 우리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 우리가 조속히 지지도 저술하고 그것을 기초로 역사지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한 곳이 잘못 비정되면 전체에 문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978년 소만국경에 러시아와 중국군 간에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신문지상에 모두 흑룡강과 송화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눈강과 흑룡강 합류저점이었던 것이다. 그때 강의하시던 교수님이 연구실에 걸린 만주지도를 가리키며 "몇 만리나 차이가 난다네" 하시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고구려·발해 역사지도 하나 제대로 고증되어 제작된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각 분야에 전략적으로 인재를 양성하여 상당한 업적을 남기면 국가적으로 인증해서 우대하는 인재 인증제도 필요하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모든 분야에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닝샤(寧夏)를 방문하였다가 그곳의 저명하고도 유력한 학자(국가공훈학자)가 말하기를 "서하어(11세기 중국 닝샤 지방에 있던 서하국의 언어)를 공부하겠다는 학생이 있으면 추천해 주시오. 내가 공부시켜 이곳 교수로 채용할 수도 있소"라고 제안하였다. 귀국 후 여러 학생들이게 지원자를 찾았으나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보장이 된다면 가겠다는 사람은 있었다. 역사건 어문이건 특수 분야에 어느 정도의 학자들을 양성하는 뜻에서 국가에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