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출판된 러시아외교관 포지오의 《한국개관(Очерк Кореи)》은 러시아에서 한국에 관한 최초의 저작으로 1895년 독일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포지오의 저작에 첨부된 지도에는 독도의 서도와 동도를 각각 올리부차(Оливуца), 메넬라이(Менелай)로 표기하여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정확하게 포함시켰다. 특히 포지오는 한국의 동쪽 바다의 이름을 동해와 일본해(Японском и Восточном морях)라고 표기했다. 포지오는 19세기 후반 한국 쪽 바다를 동해, 일본 쪽 바다를 일본해라고 생각하여 이미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했다.
포지오의 저서는 19세기 후반 한국의 지리적 형태, 국가체제, 민속과 종교 등을 개괄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의 항구와 섬 등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이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안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포지오의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울릉도(О-Лон-То)'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울릉도의 위치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세기 후반 서양에서 이미 울릉도를 정확히 인식했다는 뜻이고, 그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혼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포지오(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оджио)는 1850년에 태어났다. 군사법률학교에서 수학했고, 1873년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국에 들어갔다. 1875년 9월 베이징 주재 러시아공사관 시보로 부임한 포지오는 1881년 태평양함대 사령관 레솝스키(Лесовский С. С.) 중장이 지휘한 파견대에서 중국과 일본의 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레솝스키 중장은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맺을 가능성에 관한 모든 문제를 포지오에게 위임했고 한다.
1882년 러시아에 돌아온 포지오는 자신이 수집한 극동관련 문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지오는 저서를 완성하기 위하여 19세기 후반 외국 서적들 중 확보 가능한 모든 선집, 논문, 통신문 뿐만 아니라, 5년 동안 극동의 청국, 일본, 블라디보스톡에 체재하면서 집필한 저자의 개인적 관찰기와 소논문을 활용했다.
포지오의 책을 주목하는 이유
포지오는 1880년대 이미 한국이 "멀지않은 장래에 아시아대륙의 동쪽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나라"라고 판단하고 한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러시아와 한국이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거하여 두만강 하구 약 23 베르스타에 걸쳐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둘째 1884년 한·러조약 체결로 러시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포지오는 한국과 러시아의 지리적 접근 및 교역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서 한국에 대해 따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포지오는 "한국과 한국인을 러시아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내 과업을 누군가 완수해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의 희망은 1900년 러시아 재무성에서 발행한 《한국지(Описание Кореи)》, 1912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개관(Очерк Кореи)》 등을 통해 나름대로 지속됐다.
포지오 그의 눈에는 다가올 20세기 역동적인 한국이 가득 찼고, 그의 '한국개관'은 러시아에 한국의 중요성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