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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국가도서관 외국문헌 열람실에서 든 단상
  • 김택경 중국 북경대 역사학과 박사과정

현재 중국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흐름은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2004년 북경 서쪽 바이스챠오(白石橋)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국가도서관(전신은 1909년 창립된 경사도서관(京師圖書館)이며, 이전에는 북경도서관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기관이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현재 도서관 부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는 세계로 도약하는 중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거대하고 복잡하게 구축된 '지식의 궁전'에는 시공간을 압축시키려는 중국의 의지가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 궁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선언하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옛날의 내가 아니다. 나는 화려하게 부활하리라."

중국국가도서관은 총관과 분관(베이하이[北海] 공원 서쪽 원진지에[文津街]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는 고적과 각 지역 지방지를 소장하고 있다)으로 되어 있으며, 총관은 다시 남북 건물로 양분된다. 최근에 제작된 도서관 소개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가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량은 약 2천6백만 건으로 방대한 규모다. 중문 자료는 물론이고 외국문헌과 저널도 상당한 규모로 집적시켜 놓았다. 그리고 상당수의 문헌과 저널은 이미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인터넷을 통해서 서비스 하고 있다.

중국국가도서관총관의 전경중국국가도서관총관의 전경

현대화된 신관에서 나와 남쪽에 있는 구관에 이르면 아날로그 시대의 경험이 시작된다.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필자와 비슷한 학문을 하고 있거나 이웃하고 있는 학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관의 남쪽은 주로 외국문헌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4층에 있는 홍콩·대만자료 열람실이나 해외 중국연구자료 열람실을 제외하면 중국대륙 외부에서 출판된 문헌은 대부분 남쪽 열람실에 집중되어 있다.

한 층씩 오르면서 각 열람실의 서가를 훑어보고 6층 열람실에 다다랐을 때 열람실 벽면에 붙어 있는 표지판이 반갑게 다가온다. 열람실의 오른쪽은 일본자료가 연속되고 있었고, 왼쪽은 '일본, 한국, 러시아 저널'이 모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2천년의 교류 역사가 무색한 한 칸짜리 '한국' 코너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한국' 서가로 옮겨졌다. 그런데 뭐랄까, 팔자로서는 이해 되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왜냐하면 그 넓은 공간 중 단 한 칸만이 '한국'출판 저널 코너로 지정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일본과 러시아 저널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열람실을 나오면서 도서관 직원에게 한국문헌은 어떻게 열람할 수 있냐고 묻자, 한국문헌은 서고에 따로 보관되어 있으며 독자가 신청하면 열람이 가능하다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4층에 있는 해외 중국연구자료 열람실에서도 한국 중국사학계의 연구 성과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국인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2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양국관계를 고려해 보았을 때 한국문헌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제한적인 관심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대학도서관만 가도 중국책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에게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국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름을 새삼 확인하고 나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문제는 역시 근현대시기에 있다. 한국과 중국은 근대시기의 슬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틀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우리에게 역사적 시간은 회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의 축적된 시간이 현재의 우리를 설명하는 데에 아주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한국학 연구 담론이 꽃피기를 기대하며

가라타니 고진이 민주제도를 논하면서 역사의 무게에 대해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비교적 시간의 무게로부터 자유롭다. 반대로 중국은 현대화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조차 부단히 '전통-현대'의 문제를 고민했다. 중국은 자신의 고유한 것을 지키고 마땅히 가져야할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에 존재하는 어떤 정체도 결국 연속적이며 장기적인 중국 역사의 그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 우리가 이 이상 작아진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특정한 권역에 우리가 소속되는 것(예를 들면 중화문화권, 유교문화권)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며 그 안으로 규정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변국'으로서 중국과 일본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현대화를 실현하는 과정 중인 중국의 관심은 (서구)세계에 있다.

근현대시기 중국이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로부터 각각 영향을 받았을 때에도 시선은 서구문명을 향하고 있었다. 중국이 이른바 '세계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주변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지에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확실히 더 많은 관심을 주변국들에 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주변국들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도서관의 한국출판저널 코너가 상징하는 것과 같이 한·중 수교 이후 양국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교류가 진전되어 가시적인 성과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는 데서 자신의 경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여러 가지 불균등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겉으로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해석 틀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상호이해의 물적 기반이 잘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중국에서 보다 풍성한 한국학연구와 담론이 꽃피울 수 있도록 양국 정부와 사회의 협력 및 지원이 계속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