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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대지진과 역사왜곡
  • 양미강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양미강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2011년 4월을 맞이하기가 심난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일본 동북지역을 휩쓸고 간 잔인한 쓰나미와 지진, 방사능 여파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일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때문이다. 지진과 쓰나미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라면, 일본 교과서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전후 문제가 가져다 준 인간재해이다.

예년과 달리 올해 일본 교과서문제는 독도문제가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이 높기에 그동안 착실하게 쌓아왔던 한·일 시민교류도 영향을 받을까 걱정된다. 독도문제가 교과서문제와 본격적으로 결합한 것은 2005년 우익교과서인 후쇼샤 공민교과서였다. 독도를 역사적·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라고 기록하면서 가시화된 것이다. 그후 2010년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문제를 기술하였고, 올해는 2008년에 만들어진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따라 일제히 기술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제는 제도적으로 일본 교과서에 독도문제를 기술하게 된 것이다.

독도문제와 역사인식의 균형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은 주로 일제 식민지 침략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일명 3차 교과서공격이라는 말하는 2000년대의 역사왜곡은 일본의 우익 연구자, 기업가, 정치인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주도하였다. 새역모는 일본의 자기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역사인식을 강조하는 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해방전쟁이었다고 강변해왔다.

올해 일본 교과서 문제를 보면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독도문제가 전면에 나설 경우 상대적으로 일본 역사왜곡의 핵심인 일제 식민지 피해에 관한 역사인식 전반이 우리 관심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후쇼샤 교과서에서 서술되지 않아 큰 주목을 받았던 일본군'위안부'문제가 그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것이다. 한·일 시민단체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교과서에 기술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세인들은 무관심하다. 따라서 2011년 일본 교과서문제는 독도문제와 역사인식의 문제를 함께 고려하면서 쏠림을 방지하는 동시에 균형감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

또하나, 거의 사문화된 근린제국조항이다. 근린제국조항은 1982년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한·일 간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때 일본정부 스스로 만든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으로, 이웃나라를 배려한다는 교과서 집필지침과도 같다. 이미 산케이신문은 근린제국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를 계속해왔으며, 새역모가 만든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근린제국조항의 실체는 사라진 셈이다. 한국 또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교과서 문제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본정부 스스로 만든 국제적 약속인 근린제국조항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해야만 한다. 또한 거의 사문화된 근린제국조항이 일본 교과서 기술에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도 필요하다. 근린제국조항의 교과서 반영은 일본의 침략사실 기술 방식과 침략의 주체에 대한 규정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일 시민들의 연대가 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익교과서가 일본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일본 교과서 검정과 채택과정을 보면, 4월 검정발표 이후 8월까지 각 지역 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학교에서 사용하게 될 교과서를 채택하게 된다. 2005년 이후 새역모는 그동안 참패의 책임을 물어 내부 분열하였고 새역모는 지유샤출판사에서, 일본교육재생기구는 이쿠호샤출판사에서 각각 출판하고 이 둘 모두 올해 교과서 검정에 한판 승부를 걸고 있다.

이러한 쌍둥이 교과서의 출현은 우익교과서의 채택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2009년 일본 요코하마시는 쌍둥이 교과서의 하나인 지유샤교과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일본시민단체에 의하면, 올해 요코하마시는 고칠 것이 너무 많아 엉터리교과서로 낙인찍힌 지유샤 대신 이쿠호샤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새역모교과서의 학교채택율은 2001년 0.039%, 2005년 0.39%, 2009년 1.7%로 조금씩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올해 그들은 최소 5% 채택율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쌍둥이판 다른 교과서까지 합친다면 우익교과서는 채택율 10%를 목표로 삼고 있는 셈이다.

결국 남은 일은 문제가 되는 교과서를 학교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한·일 시민단체들이 협력해서 이루어온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 전 지역의 풀뿌리 운동들이 각각 그들의 지역에서 힘차게 불채택운동을 이어가는 일이 남아있다. 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느낀 일본 시민단체들의 위기감은 대단했다. 올해야말로 우익교과서와의 싸움을 끝장내자던 그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그동안 독도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토문제로 인식되어,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쉽게 결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아주 천천히 일고 있다. 작년 강제병합100년 한·일시민 공동선언에서 독도를 포함해서 역사인식 전반에 관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또한 일본 교과서에 독도문제가 기술되자, 일본의 일부 시민단체들이 독도문제 학습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독도문제가 1905년 러·일전쟁 시기 일본에 의해 편입된 역사인식의 문제라는 점을 공감하고 한·일 우호를 위한 한·일시민 공동성명을 3월 21일 발표하였다.

어려운 일일수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갈등을 조장하고 대립을 부추기는 세력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우익들과의 대립각은 분명히 하되,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일본에 불어닥친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위협 등 자연재해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시민들을 위한 한·일 공동모금은 한·일 시민사회의 자매애를 확인하며 가까운 이웃으로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과서라는 인간재해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의 틀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도록 한·일 간의 연대를 더욱 튼튼히 세워 일본의 역사왜곡을 막아내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