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호주로 공부를 하러 온 사촌 동생 내외가 조카와 함께 호주에서 살 집을 구하기 전까지 약 2개월 정도를 우리 집에서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7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조카가 하루는 저녁을 먹다가 뜬금없이 "고모, 호주에서는 일본 사람들 힘이 센가봐요"한다. 이유를 물으니 그날 학교의 지리학 수업 시간에 나온 학습자료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조카는 아직 영어를 잘 못해서 항의하지 못했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해서 얼른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조카녀석의 매서운 항의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여전히 호주사회에서 내가 만나는 동해에 대한 현실이어서 씁쓸하기도 했었다.
지난 1월 31일 '아름다운 한국 동해의 섬' 사진 전시회장에 서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남편(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 회장 고동석)의 모습을 보는 순간의 가슴저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 동해에 관한 사진 전시회를 호주에서 열자는 제안을 했을 때부터 예상되었던 어려움들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전시회를 개최하기까지의 노력을 알기에 감동보다는 먼저 가슴이 저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전시회는 호주 NSW국회 전시장의 Parliament of New South Wales Fountain Court에서 열렸다. 쉽게 빌릴 수 있는 다른 전시회장 대신 NSW국회 전시장을 어렵게 섭외하였던 까닭은 국회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는 호주 역사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사진 전시회에 대한 기록과 함께 '한국'과 '동해'를 호주의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 이런 우리의 신념은 관람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사진 전시회에는 60여 점의 아름다운 울릉도와 독도의 사진이 전시되었는데, 2월 25일까지 한 달 동안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고 동해와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성과를 거두었다.
호주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사진 전시회
1987년에 호주로 이민을 온 후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이민 생활 속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일이라면 늘 앞장을 서니 사실 아내로서 그런 남편이 늘상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2008년 8월의 일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2008년 8월 남편은 15개의 교민신문과 잡지에 마틴플레이스에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집회를 진행하고 항의서를 일본 총영사관에 전달하는 행사를 하겠다는 광고를 싣고 호주 교민들에게 참석해 줄 것을 호소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지, 또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변화가 일어날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행사 당일 교민 약 150여 명이 참석했고, 참석이 어려우신 분들은 김밥과 음료수를 후원하며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남편과 함께 일본 총영사관을 방문하여 항의서를 전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사실, 후원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열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주에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고 있지만 이곳 호주에서는 호주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 1.5세대 2세대조차도 '동해'나 '독도'가 생소하다. 반면 일본의 계속적인 홍보로 동해를 일본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앞서 말한 현실처럼 고등학교의 교육내용에도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해나 독도 등 한국을 알리는 행사는 한국 내에서 보다는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외국에서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외침 큰 울림, "독도는 한국땅"
비록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조국에 대해 특히 독도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모여 2010년 드디어 '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를 발족하였다. 이번 사진 전시회도 '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에서 주관한 행사였다. '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는 올해 5월에는 독도연구 권위자인 일본 역사학자를 초청하여 강연회,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이렇게 축적된 독도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독도 알리기 홍보물을 제작하여 이를 호주 내 고등학교에 배포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그들이 공부하는 자료에 동해와 독도로 표기가 바뀌는 날을 꿈꾸며 열정과 헌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호주 사람들은 오세아니아 대륙을 표현할 때 '고립된' 대륙이라는 표현을 가끔 쓴다. 이민생활의 특징일 수도 있으나 호주에서 살다보면 '고립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처음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호주 한국교민들이 독도관련 행사를 공식적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외침은 너무 작았고, 외침을 들어줄 이가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한 이곳 호주는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어우러지고 섞여져서 새로운 문화와 체계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이처럼 조화가 중요한 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제한된 독도 문제를 부각시키고 알리는 일이라 더더욱 조심스럽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진 전시회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과 동해와 독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게 되었다. 실제로 사진 전시회 1주일 후인 3·1절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정재정 이사장이 방문하여 특별강연을 했는데 남편은 이를 통해 호주에서 활동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연대를 느꼈다고 했다. 이곳에서의 작은 외침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라며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화와 정체성을 모두 지켜야 하는 조금은 힘겨운 활동이지만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기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고립되거나 지치지 않고 이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