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교과부가 고등학교 사회과 선택과목이었던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는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은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정책의 변화가 반갑기는 하지만 과연 2005년 이전처럼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환원하지 않고서,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수능 응시자의 한국사 선택 비율이 계속 하락해 금년 초에는 2004년 대비 10%에도 미치지 못한 사실을 보면 그것은 기우가 아닌 듯하다.
세계시민으로 교육하기 위한 실효적 방안 마련해야
그런데 '역사교육 강화방안'의 중장기적 효과와 관련하여 또 다른 우려의 시각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실했던 세계사 교육의 여건이 이 조치로 인해 더 악화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사는 수능 사회과 선택과목 가운데 수험생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과목이었다. 학습내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선입견과 제대로 가르칠 전문교사가 태부족인 학교 현장의 사정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였다. 필자처럼 대학에서 세계사 관련 과목을 가르쳐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여파를 실감한다. 기초지식이 없는 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거니와, 이제는 사학과에서조차 전공과목의 강의수준을 하향조정해야 할 정도이다. 이처럼 고등교육과정에서 세계사가 홀대받는 실정은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글로벌 스탠다드'를 최우선의 가치로 떠받들어온 최근 한국의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부조화 현상이다. 여기저기서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구호 아래 우리의 청소년을 국수주의적 시민이 아닌 세계시민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제기되지만 그것을 위한 실효적 방안은 없다.
몇몇 국회의원이 교육과정과 수능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한국사가 아닌 역사(즉 한국사와 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교육계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거의 반향이 없었다. 아마 그 제안이 부당해서가 아니라 현실화하기 위해 극복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리고 나온 것이 '역사교육 강화방안'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 교육보다 갖추는 것보다 주변 강대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할 수 있는 강한 국민의식으로 무장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인 듯하다. 일본과 중국처럼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세계사를 필수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때 이른 사치인가?
한편 우리 세계사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원인을 필수냐 선택이냐, 전문교사의 부족 같은 객관적 여건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필자는 세계사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내용을 개선하기 위한 학계와 현장 교사들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개선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사가 다른 사회과 선택과목에 비해 학습부담이 크다는 선입견을 바꾸는 것이다. 방법은 동어반복처럼 자명하다. 부담이 크지 않은 세계사 교과서를 개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근본적인 과제로 '한국인이 바라보는 세계사'를 고안하는 것이다. 서양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른 한국의 세계사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문제는 교육 현안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에서 세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사실, 두 번째 문제는 이미 2007~2009년도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에 즈음해 세계사 과목의 개정을 담당했던 연구진이 진지하게 제기한 바 있다. 그 때 개정된 집필지침에 의거해 제작된 교과서들이 검정단계에 있어서 아직 그 변화의 여파를 널리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7차 개정 교육과정의 세계사 교과서 집필지침 총설과 내용요소를 2007~2009년도 개정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후자의 '혁신 정신'을 간파할 수 있다.
혁신의 기본 취지는 서구 혹은 중국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여러 '지역(region)'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사를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그 동안 세계사 서술의 기본 틀이던 고대-중세-근대의 3시대 구분법 대신 '지역'을 대단원의 키워드로 채택했으며 그에 따라 전에는 '역사 없는' 곳으로 취급되던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같은 지역의 역사에 적당한 지면이 할애되었다. 유럽 및 서양사의 주변화(provincialization)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아울러 여러 지역문화를 대등하게 다루려는 의도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 간 '교류와 교역'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우리 식의 세계사를 모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여러 모로 1990년대 이래 미국에서 유행하는 소위 '새로운 세계사'의 방법과 특징을 닮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된다.
'우리 식의 세계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
2007~2009년도의 개정 집필지침에 의해 쓰인 세계사 교과서가 아직 교육 현장에 닿지 않은 가운데 너무 때 이른 평가일지 모르지만, 분명 '학습 부담의 경감'과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 여러 지역을 대등하게 다루고 지역 간 교류와 교역을 강조함으로써 학습할 정보량이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다문화주의적 접근방식 때문에 역사의 흐름보다는 다양성에 더 역점을 두는 서술방식을 취하여 세계사를 역사책으로 읽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과연 '중심을 해체하는' 세계사란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지난 4월에 발표된 '역사교육 강화방안'에 따라 교과부는 필수가 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의 개정과 함께 세계사의 개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2007~2009년도 개정에 따른 교과서가 아직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다시 교육과정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2007~2009년도의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세계사 교과서가 본래의 좋은 취지와 달리, 오히려 세계사 과목을 기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재개정이 시급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2011년의 개정에도 큰 기대를 걸기 힘들다. '우리 식의 세계사'를 제대로 만들어내려면 관련 학계와 현장 교사들의 보다 장기적인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