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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페드라 브랑카 사건의 함의"를 논하다
  • 김용환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동북아역사재단은 아시아국제법발전재단(Th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Law in Asia 이하, DILA)과 함께 제2회 재단-DILA 국제학술회의를 지난 4월 20일 싱가포르 현지에서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대한국제법학회(KSIL)와 싱가포르 국제법학회(SILS), 국립 싱가포르 대학의 국제법센터(CIL)가 주관하고 경상북도와 한국해양연구원(KORDI)이 후원으로 참여한 행사이다. 작년 연세대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대회에 이어 올해는 국립 싱가포르 대학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역 협력 : 회고와 전망"이라는 대주제로 5개 패널 10명의 발표로 진행되었는데, 한국 측에서는 최태현 회장 등 대한국제법학회 회원 20여 명과 동북아역사재단 김용환 연구위원(발표)과 유하영 연구위원(토론)이 참여하였다. 로버트 벡크만(Robert Beckman), 월터 운(Water Woon) 국립 싱가포르대 법대 교수(전 싱가포르 검찰총장)의 기조연설도 있었다. 이번 학술행사에는 오준 주싱가포르 대사의 축사가 더해져 학술회의의 위상을 높였다.

학술회의 주요발제 내용으로는 "기름유출사고처리 : NOWPAP 사례"(정서용 교수, 고려대), "지역협력과 선박기인오염 대처에 관한 지역협력"(세가, 싱가포르 해운항만청), "남중국해 대륙붕 주장과 대륙붕한계위원회 문서제출"(로버트 벡크 만, 국립 싱가포르대), "국가관할권 이원의 새로운 형태의 심해저 자원과 해양법"(신창훈, 한국해양연구원), "아세안 투자협정의 목표와 향후 방향"(노라 갤러거, 국립 싱가포르대), "싱가포르 이슈 : 과거, 현재, 미래"(마이클 융 차우, 국립 싱가포르대) 등이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주제로는 5년 여에 걸친 말레이시아와의 국제소송에서 승리한 싱가포르 측 검찰청 국제관계국 과장인 옹칭 홍의 "페드라 브랑카 사건의 함의"라는 발표였다. 필자 역시 "페드라 브랑카, 미들락스, 사우스 레지 영유권에 관한 ICJ 판결분석"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이 사건에 대한 제3국(한국)의 시각을 소개하였다.

싱가포르는 식수공급 문제, 화교의 대우문제 등 이웃국가인 말레이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 현안이 산적해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의 도서 분쟁에서 2002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이하 ICJ) 로부터 승소 판결을 얻어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수십 년 간 협상 끝에 마침내 ICJ 제소에 합의하게 된 시점도 이 판결이 나온 후인 2003년 2월이었다. 실질적으로 싱가포르가 관할하고 있었던 페드라 브랑카 섬은 싱가포르 해협의 선박 통항로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국제적 관심이 매우 높았다.

'시효 취득'과 '묵인'의 논리를 결합한 ICJ 판결

옹칭 홍 과장의 발표내용은 말레이시아가 페드라 브랑카 섬에 대해 고유영토론을 주장한 반면, 싱가포르는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한국측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독도와 관련해 한·일 간의 논쟁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서영유권 분쟁에 관한 가장 최근의 ICJ 견해를 알 수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또한 국제재판 경험이 없는 국가가 소송준비를 어떤 식으로 준비해 결국 승소하였는지도 관전 포인트였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페드라 브랑카(Pedra Branca, 말레이시아는 풀라우 바투 푸테(Pulau Batu Puteh)라 부름)라는 섬을 두고 오랫동안 다투어왔다. 축구장 크기의 무인도인 이 섬에는 '호스버러'라는 등대와 기타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페드라 브랑카 섬의 영해 내에는 미들락스라는 바위와 사우스 레지라는 간출지가 있다. ICJ는 페드라 브랑카 섬은 싱가포르의 영토로, 미들락스는 말레이시아의 영토로, 사우스 레지는 양국의 해양경계획정 결과에 따라 귀속여부를 결정짓도록 판결했다.

옹칭 홍 과장은 이 판결 결과를 승복하지만 ICJ 논거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싱가포르 측에서는 이 판결로 페드라 브랑카와 미들락스, 사우스 레지 전체를 다 얻든지 아니면 다 잃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ICJ를 결코 정치적 기관으로 간주하지 않고 순수 국제법적 기관으로 믿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말레이시아와 적어도 페드라 브랑카 섬과 관련해 다투지 않게 되어 양국 간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 등을 밝혔다.

'상호 존중과 예양'의 정신에 입각한 해결 필요

같은 주제에 대해 제3국 즉 한국의 시각을 발표한 필자는 페드라 브랑카 사건에서 나타난 ICJ의 애매한 논거는 '시효 취득'과 '묵인'의 논리를 결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ICJ 의 개별의견을 소개했다. 특히 ICJ가 페드라 브랑카 섬을 일단 말레이시아의 고유영토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로 하여금 '주권자의 자격'으로 페드라 브랑카 섬을 오랫동안 평화적으로 실효 지배토록 '묵인'한 말레이시아의 일련의 행위(싱가포르 측의 해양사고 조사, 도서방문통제, 해군통신시설 설치, 간척계획 등을 묵인)가 결국 섬을 빼앗기게 된 결정적 이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이 주제는 이웃 국가 간 도서영유권 분쟁을 국제재판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자칫 우리와 일본에게 독도와 관련해 국제재판으로 해결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3국의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학술회의였다. 따라서 필자는 이 판결 이후에도 싱가포르는 판결의 이행문제와 해양경계획정 문제로 또 다시 말레이시아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 남아있음을 지적했다. 즉 한번의 국제재판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한 분쟁 해결방식이 있으며, 국제재판보다는 '상호 존중과 예양'의 정신에 입각한 협의에 의한 해결이 더 유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이번 학술회의는 국제법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와 학자, 실무자 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향후 양국 간 국내외 석학과의 지속적 교류를 통해 우호세력화를 도모하고 활발한 학술교류 기반 구축을 통해 우리나라 정책의 대내외 지지기반 확대 도모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