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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Q&A
훙산문화와 중화문명
  • 김정열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Question

중국의 고고학계 일각에서는 훙산문화(紅山文化)로 대표되는 중국 동북 지역의 선사문화가 중화문명의 원류라고 주장한다. 그 내용과 배경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타당한 견해인가?

Answer

훙산문화(紅山文化)는 기원전 4,500년 경부터 기원전 3,000년 경까지 지금의 요령성 서부와 내몽고 동부 지역에서 번영한 신석기문화이다. 1935년 내몽고 적봉시(赤峰市) 훙산허우(紅山後) 유적에서 전형적인 문화 양상이 발견되었으므로 훙산문화라 명명되었다. 이 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유물은 빗살무늬가 장식된 원통형의 항아리와 동물 모양을 부조한 옥기(玉器) 등이다. 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둥산쭈이(東山嘴) 유적과 뉴허량(牛河梁) 유적이며, 특히 후자에서는 다수의 대형 돌무지무덤과 여신상(女神像)을 모신 반지하식 신전이 발견되었다.

거대한 노동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들 유적 때문에 중국의 고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훙산문화에서 중국 최초의 문명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훙산문화를 중국문명의 요람이라 주장하는 까닭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훙산문화가 중화문명권의 외곽에서 발전하였지만, 황하 중·하류 지역과 끊임없는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하여 비로소 성립될 수 있었으며, 이후 중국 전통문화의 주요한 하나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중화문명의 원류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훙산문화는 앙샤오문화(仰韶文化)와의 교류와 충돌을 기반으로 해서 문명의 단계에 도달하였다던가, 뉴허량 유적의 여신 신전은 중국의 종묘(宗廟)제도로 계승되었다던가, 훙산문화의 옥기 공예 전통은 중국 옥기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이 그 골자이다. 훙산문화는 중국의 시조인 황제 부족이 창조한 문명이라는 주장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다민족통일국가론'을 아득한 과거까지 소급하려는 시도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중국 정부가 국내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고, 다양한 민족의 통합을 유지하려는 목적 하에 고안한 '다민족통일국가론'을 아득한 과거까지 소급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아득히 먼 선사시대에도 지금처럼 중국 내의 모든 지역이 문화적인 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훙산문화에 보이는 일상 생활용구나 장식품, 제단이나 무덤의 구조 등은 전통 중국문화의 그것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훙산문화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발생지로 알려진 지역 가운데 하나이고, 훙산문화에 보이는 빗살무늬 토기나 돌무지무덤 등이 한반도에서도 널리 확인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훙산문화와 한국 선사문화의 연관 가능성을 상정하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