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야마무로 신이치의 저서《憲法9条の思想水脈》(朝日新聞出版, 2007)을 번역한 것이다. 《憲法9条の思想水脈》은 2008년에 제11회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했다. '헌법9조'는 패전 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시대와 국경을 넘어 면면히 이어져 온 평화운동과 반전사상의 도달점이라는 것을 당파성을 배제한 냉철한 자료 비판으로 검증했다는 것이 수상 이유다.
저자인 야마무로 신이치는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근대일본정치사를 전공한 정치학자다. 그는 '헌법9조'의 옹호자이며 평화헌법의 사상수맥을 구미의 사상적 전통 속에서 뿐 아니라 일본의 평화사상의 흐름 속에서도 발견해 내고 있다. 그는 '헌법9조'가 상징하는 평화헌법의 바탕이 이미 일본에도 형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헌법9조'는 미국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며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다.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자생력을 평가하는 견해는 여러 모로 찾아볼 수 있다. 아메미야 쇼이치와 같은 학자는 미국의 점령개혁 정책에 대하여, 일본인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전승국이라는 지위로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40년대 초에 이미 전후 일본의 개혁 결과를 담보할 맹아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천황제 문제에 관해서도 일본인의 손으로 개혁을 추진했다면 천황제를 폐지했을 것이나 미국이 전후 처리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천황제를 이용하고 상징천황제를 존속시켰다는 것이다.
평화헌법을 통한 항구평화 달성이 목표
1945년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일본은 과거 전쟁의 비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새 헌법을 만들어 공포했다. 이 헌법은 평화헌법으로 불리며 인류평화를 구현할 이상적인 헌법으로 여겨졌다. 일본국 헌법이 평화주의 헌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헌법 제2장에서 유래한다. 제2장은 제9조로만 이루어져 있고 제목은 '전쟁의 포기'이다. 전쟁, 무력 위협,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육·해·공군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내용이며, 공격 뿐 아니라 방어를 위한 전쟁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즉 적이 쳐들어와도 반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포된 이후 '헌법9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면서 논란이 되어 왔다. 자위대의 창설이나 자위대의 해외 파병 등 전쟁 포기와 자위의 범위에 대한 위헌 논의가 당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신헌법이 어떤 취지를 가지고 있는가는 헌법 공포 직후인 1947년 문부성이 발행한 《새로운 헌법 이야기》에서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9조 6항의 '전쟁의 포기' 부분에서, "이번 헌법에서는 일본이 결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도록 두 가지를 결정했습니다. 하나는 군대도 군함도 비행기도,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은 절대로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코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는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것을 '전쟁의 포기'라고 합니다."라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헌법 공포 직후에 나온 정부의 공식 견해로 어떤 학자들이나 매스컴의 해석보다도 공신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해석이다. 즉 '헌법9조'는 침략을 위한 전쟁도 방어를 위한 전쟁도 하지 않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어떤 형태의 군대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조문에 충실하게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런 유사한 해석은 문부성 뿐 아니라 당시 헌법 제정에 참가했던 정부당국자도 빈번하게 해왔다.
'전쟁포기' 조항이 일본 헌법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928년 파리에서 조인된 부전조약에는 일본도 비준했는데 "체결국은 국제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전쟁에 호소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상호관계에 있는 국가의 정책 수단으로서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1790년 국민회의에 의한 프랑스헌법, 1891년과 1934년의 브라질헌법, 1947년의 이탈리아공화국 헌법에서도 전쟁포기를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헌법9조'는 전쟁포기와 군비철폐,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평화주의의 기축을 구성하며 역대 어떤 헌법보다도 강하게 전쟁을 부정하고 있다. '헌법9조'는 타국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타국이 공격을 가하더라도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이는 모든 국가가 전쟁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가가 평화헌법을 가지게 되면 항구평화가 달성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헌법9조'는 동양의 사상수맥을 드러낸 것
야마무로는 '헌법9조'의 사상수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목과 전쟁의 비참상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평화사상은 서구 뿐 아니라 동양과 동양 속의 일본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고 면면히 내려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헌법9조'로 상징되는 일본의 평화헌법은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사상수맥을 드러낸 것이며 동양의 사상수맥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은 '헌법9조'를 버릴 것이 아니라 이것을 더욱 공고히 하고 다른 나라에도 평화헌법을 전파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한 아시아 국가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평화에도 일본은 큰 위협이 되었다. 그 때문에 연합군에 의한 점령과 지배를 거치면서 강제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물 중의 하나인 '헌법9조'는 인류의 위대한 자산이 될 가치가 충분하다. 이 가치는 '헌법9조'의 정신이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일본이 '헌법9조'를 어떻게 다루는지 관심과 압력을 지속해 가야 한다.
야마무로는 서문에서, 2차대전이 끝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서 전쟁을 잊어버리는 세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충격을 이야기한다. 역사는 끊임없이 상기하고 해석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반복하기 위해서 배운다. 일본의 '헌법9조'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부터 배워서, 과거 수천년에 걸쳐 인류가 저질러 온 전쟁이라는 범죄 행위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국가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보통국가 논리나 우파들의 권력욕 때문에 포기되어서는 안 될 가치이다. 매년 8월이 되면 반복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요구를 결코 구태의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