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올해는 임진전쟁(1592)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새김질할 것인가?
Answer
역사 속의 전쟁을 연구하고 오늘의 관점에서 되새기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평화의 조건과 철학을 탐구하기 위한 것이다. 임진전쟁(임진왜란)도 예외가 아니며, 전쟁 발발 420년이 되는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평화에 대한 의지와 비전을 다시 한번 챙겨보아야 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나가 버린, 그들 간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역사와 의식 속에 내재된 이 참절한 전쟁의 기억을 들추어내고 동아시아 평화의 기획자라는 입장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진전쟁은 '동서양 문명충돌' 이라는 역사적 흐름과 맞닿은 국제전이었으며, 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원형을 그어댄 동아시아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어두웠던 지배층의 무능과 조선의 문약이 초래한 재앙이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50여만의 병력이 참전했던 이 전쟁에서는 20만 이상의 전사자가 나고, 거의 200만에 이르는 조선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중일 학계의 임진전쟁 연구는 전쟁이 갖는 이와 같은 세계사적 의미나 평화를 위한 반면교사로서보다는 일국사적인 관점에 크게 압도되어 온 것이 현실이었다. 국가주의적 해석이 이 전쟁을 보는 지배적인 흐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삼국을 전란의 고통으로 밀어넣고, 조선 백성들에게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좌절과 희생을 강요했던 전쟁을 단순히 적개심의 역사로 혹은 이순신, 토요토미 히데요시, 리루송과 같은 영웅의 역사로 치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특히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임진전쟁이 동아시아 질서변동을 가져온 국제전이었다는 인식이 공유,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올해부터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도입된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임진왜란' 대신 '임진전쟁'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임진전쟁이 국제전이었다는 인식을 넘어 전쟁의 기억이 평화를 위한 성찰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임진전쟁 때나 지금이나 한반도 안녕이 동아시아 평화의 관건적 전제라는 점에서 임진전쟁 420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분단과 갈등의 경계가 가로지르고 있는 한반도를 어떻게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견고한 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공동체와 주변국의 역사왜곡 이 착종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절과 충돌의 공간을 어떻게 공생과 협력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지식의 지배는 권력의 지배에 선행한다고 한다. 한반도는 국가간 권력정치의 단순한 객체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지켜내는 견고한 기지이어야 되지만 동시에 공생과 협력이라는 동아시아 미래비전을 생산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운동성을 비축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정치적 권력의 논리에 맞서는 물리적 실력 뿐 아니라 역사를 성찰하며 평화를 선취(先取)해 나가는 지혜와 방법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하는 지식의 기지가 되어야 한다. 권력의 지배를 방관하는 지식의 결핍은 다시 한번 우리 역사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적어도 오도할 위험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임진전쟁 420년이 안기는 역사의 무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