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양국 간 수교와 외교관계 정상화가 이뤄진 후 20년 동안 한ㆍ중 관계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교역, 투자, 관광, 유학, 고위급 교류 빈도 등에 대한 통계 수치만으로 양자 관계를 평가하기에는 이미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뤄가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밀접해지면 마찰과 갈등이 발생할 개연성도 커지듯이 미래의 한ㆍ중 관계를 무조건 낙관하고 있을 수만도 없어 보인다. 10년 전인 2002년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할 때만 해도,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양국 사이에 심각한'역사 분쟁'이 불거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의 변화, 중국의 부상,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 현재 한ㆍ중 관계를"경제는 뜨겁지만, 외교는 미지근한 정도이고, 안보는 냉랭(經濟熱外交溫安保冷)"하다고 보는 평가 등으로 미뤄볼 때, 향후 한ㆍ중 관계에 대해 다양한 도전들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 관계에 대한'연성(soft)'도전들
향후 한-중 간'불편한 관계'가 유발될 소지가 큰 영역으로 일곱 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중 세 가지는'연성분쟁(soft conflicts)'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첫째, 2004년 수면 위로 떠오른 후 대체로 봉합(縫合)의 수준에 머물러 온 역사 분쟁이 있다. 학술적 접근만으로는 근원적'해결'이 쉽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나라가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어려우며, 양국의 민감한 민족주의 정서를 감안할 때 언제라도 한-중 관계의 발목을 다시 잡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난 20여 년간 양국 관계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경제/통상 구조의 향후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대 중국 적자를 겪게 된다면 한-중 관계를 바라보는 한국의 인식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인가? 한국의 대 중국 경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근래의 우려와 관련해 한-중 FTA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셋째, 국가 간 관계는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한 평가로만 이뤄지지 않으며 다양한 규범과 가치관의 공유가 함께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소프트파워(軟實力)'를 강조해온 중국이 향후 '중국적 특색을 가진'규범과 가치관 전파에 나설 경우, 한국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사이에서 어느 쪽에 가까운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인권, 민주주의, 경제발전, 환경, 군축,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한ㆍ중 간의 일치도는 어느 정도일 것인가?
한·중 관계에 대한'경성(hard)'도전
향후 한-중 간'불편한 관계'를 유발할 소지가 큰 영역에는 '경성분쟁(hard conflicts)'의 가능성을 지닌 네 가지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첫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폭사건에서 보았듯이 한-중 관계에 꽂혀 있는 가장 굵고 거친 가시는 바로 북한이다. 언젠가 중국의 안보에도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는 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폭넓은 관용' 다시 말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속내가 "얼굴을 붉힐 수는 있어도 등을 돌릴 수는 없는 " 것인 한 한ㆍ중 협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둘째, 중국은 최근 들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예전과 달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중 수교 교섭 과정에서 중국이 한-미 동맹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드러난 한-미 간 불협화음을 상당 부분 중국이 서둘러 예단하고 일반화했던 점이 없지 않으며, 2008년 이후 대폭 강화된 한ㆍ미 관계에 대해 중국이 느낀 좌절감과도 적지 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국의 진지한 대비와 함께 중국의 전략적 인내가 요구되는 영역이라 하겠다.
셋째, 공식적으로는 부재(不在)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한ㆍ중 간 영유권/경계획정 분규를 들 수 있다. 중국은 영토주권 및 그 완정성(完整性)과 관련해무력 분쟁에 휩싸인 경우가 가장 많았기 때문에 한ㆍ중 관계도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양국의 조기경보 및 위기관리 기제의 설립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통일의 영역을 들 수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통일 방식은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이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양한 다른 방식의 통일 가능성은 한반도 안정의 저해를 이유로 중국은 반대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한ㆍ중(그리고 미국) 사이에 긴장이 파생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한 양국 간 보다 긴밀한 소통과 교류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낙관론 지양해야
이런저런 것들이 다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며 한ㆍ중 관계에 대해 그리 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과연 그런 평가가 한-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기초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현재의 한ㆍ중 관계를 놓고 비교할 때 그러한 관점이 설 땅이 그리 넓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 준비를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사진을 갖고 집을 지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안정된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되는 한ㆍ중 관계가 보다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대화가 필요하다. 유달리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두 나라 사이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려면 '쟁우(諍友)'-상호 신뢰에 기초해 진심을 담아 할 말은 할 수 있는- 관계의 틀을 염두에 둬야한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결코 한ㆍ중 관계의 건전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