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일본 정부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사회과 교과서 18종(역사 8, 지리 4, 공민 6)이 검정을 통과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이 확산되었다. 광개토대왕비 비문에 관한 해석 등 고대부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왜곡하거나 오해를 가져올 소지가 있는 기술 문제도 재연되었다. 그리고 역사 왜곡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쿠호샤(育鵬社) 역사교과서가 오사카(大阪)시, 요코하마(横浜)시에서 채택되는 등 채택률이 2011년 3.75%에서 6.3%로 증가했다.
재단은 지난 8월 30일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도에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들어 있는 한국사 관련 기술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학술회의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교과서를 벗어나 확산되고 있는 역사 왜곡
주요 발표 내용을 보면, 먼저 다카시마 노부요시(高嶋伸欣) 류큐(琉球)대학 명예교수는 아베 정권의 교육 정책과 관련하여 "아베 정권이 추진한 도덕과목을 정규 교과로 만드는 정책이 늦어지는 등 관료들의 저항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를 기술한 마나비샤 교과서는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사립학교에서 채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근우(부경대 교수)는 지유샤(自由社)와 이쿠호샤를 사례로 들어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을 받지만, 교사용 지도서는 출판사가 자율 발간하기 때문에 교과서보다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앞으로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사용 지도서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점에 참석자들이 공감했다.
구체적인 교과서 기술 내용에 관해 서보경(고려대 교수)은 "일본 교과서는 중국을 중심에 두고 책봉체제라는 구조 속에서 왜국이 가야를 중심으로 백제와 신라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고대사상(像)을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논리 체계를 대체할 만한 논리가 재구축되기 전에는 일본 교과서에 기술된 한반도 여러 나라에 관한 기술이 온전하게 바뀔 것을 바라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왕현종(연세대 교수)은 "19세기 후반 일본 근대사 서술 기조에서 메이지유신과 메이지 국가가 발전하면서 그들의 대외침략 실태를 더욱 정확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쿠호샤 교과서는 러일전쟁에 관해 "같은 유색민족이 세계 최대 육군을 보유하고 있던 러시아를 물리쳤다는 사실은 열강의 압박과 식민지 지배에서 고통 받으며 괴로워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에게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습니다"라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지난 8월 14일 발표한 아베 담화도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가 메이지 시대를 왜곡하여 인식한 것이 교과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인식으로 부상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 교과서가 담고 있는 역사인식 문제는 교과서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연구자와 인식 공유
이번 학술회의의 특징은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관계자가 참석했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쿠호샤와 지유샤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 달리 러일전쟁은 물론, 일본의 동남아 침략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고 아시아해방전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연구자와 활동가를 초청해 일본 교과서의 이러한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자 했다.
인도네시아대학의 아이케투 수라자야(I Ketut Surajaya) 교수는 "일본 교과서가 일본이 저지른 한국 식민지 지배에 관한 역사 사실을 충분히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교과서 내용 대부분은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세력 사이 국제 갈등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비하면 일본 역사문제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으며,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문제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러일전쟁을 인도네시아에서는 백인종 대 황인종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연구서와 일본 교과서의 역사 인식을 비교했는데, 한국 측 자료로 사용한 것은 이기백의 연구서였다. 새로운 연구 성과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말라야 제2차 세계대전 역사연구회' 사무국 차장인 루페이춘(Lupeichun)은 말레이시아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로 일본 점령기에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말레이계는 일본군에게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해가 적었고 피해의식이 크지 않은데, 이는 국정교과서 기술에도 영향을 끼쳐 일본의 전쟁 책임을 그다지 추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베 총리 담화에 관해서도 위험한 우경화 현상과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인 칼럼을 작성하여 〈남양상보(南洋商報)〉에 4회에 걸쳐 게재하는 등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비판해 왔다.
이번 학술회의는 일본 교과서 한국사 관련 기술을 심층 분석하고 문제점을 폭넓게 공유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다. 학술회의 결과물은 보완하여 왜곡 기술 시정을 요구하는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한 것은 미래 세대가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상대방을 오해하고 불신하거나 불필요한 우월감을 드러낼 경우 바람직한 한일관계, 동북아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어렵다는 데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관점에서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