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러시아의 보리스 이바노비치 트카첸코(Борис Ивано вич Ткаченко)가 2009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의 네벨스코이(Невельской)해양대학교에서 발간한 책 "Курильская проблема: история, право, политика и экономика" 을 완역하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쿠릴문제 - 역사, 법, 정책 그리고 경제》로 출판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동방민족 역사, 고고학, 민속학연구소에 재직 중인 트카첸코는 러·중, 러·일 국경문제에 관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이 책 역시 국경문제와 관련하여 그가 저술한 연구 업적 중 하나다. 독도 문제로 일본의 도전을 받고 있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트카첸코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쿠릴열도 점령이 전적으로 합법이며, 현 시점에서 쿠릴열도가 지닌 전략적 가치, 막대한 지하자원과 수자원 등을 고려할 때 쿠릴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토 주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기본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객관적 서술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진지하고 흥미로우면서도 대부분 객관적인 논리 전개로 러·일의 영토문제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고, 실제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독자를 설득하는 꼼꼼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분석
제1부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 크게 두 가지 논거에서 그들 스스로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쿠나시르(Кунашир), 이투루프(Итуруп), 시코탄(Шикотан), 하보마이(Хабомай) 등 4개 섬에 영유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이 북방영토를 최초로 발견하고 그 지역을 먼저 실효지배한 국가가 일본이다. 이런 일본의 권리는 1855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체결한 시모다(下田) 조약에 따라 국제법상으로도 확인되었으며,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러·일 양국 국경문제가 확정되었다. 둘째, 일본이 북방영토라 부르는 4개 섬은 애초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스탈린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종전 처리과정에서 북방영토를 쿠릴열도에 포함시켜 소련이 차지한 것은 '영토 불확장 원칙'과 모순이다.
트카첸코는 일본의 첫 번째 논거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쿠릴열도 탐사 역사를 자세하게 기술함으로써 처음으로 북방영토를 발견한 사람이 일본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또 일본이 주장하는 실효지배 문제에 관해서는 러시아가 일본보다 먼저 현지 주민들에게 현물세를 부과했다는 사실을 반대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영토문제에 관한 1855년과 1875년 조약에 관해서는 러일전쟁으로 국경선이 변했다는 점에서 일본에게 조약 파탄의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카이로선언, 얄타협정, 포츠담선언, 포츠담선언의 항복조건 수용에 관해 일본정부가 발표한 1945년 8월 14일자 성명과 기타 문서들을 기초로, 소련이 쿠릴열도를 양도받은 행위가 합법임을 설명하고 있다. 또 소련의 대일 개전에 관해서는 1941년 4월 13일 소·일 간 중립 조약을 체결한 후 소련을 상대로 일본이 행한 적대행위와 5년 기간으로 체결한 조약 폐기규정(3조) 등을 들어 소련의 대일선전포고가 위 조약을 위반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영토 불확장 원칙에 관해서는 '상황의 근본적 변경' 원칙에 관한 "국제조약에 관한 비엔나협약" 그리고 국제연합헌장과 기타 자료들을 인용하여 소련의 행위가 적법한 것이었음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방영토가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855년 조약 체결 후 1950년대까지 일본이 생산한 공식 사료,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미국 국무부 자료를 인용하여 4개 섬이 쿠릴열도에 속하며, 따라서 북방영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독도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남쿠릴을 포함한 쿠릴열도가 러시아의 고유 영토이며, 영토 주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트카첸코의 주장에 따르면, 소·일 강화조약 체결에 집착하여 하보마이와 시코탄 양도를 거론한 흐루시초프의 행동은 실수였다. 더구나 흐루시초프의 행위 자체가 소련 국내법 위반이며, 둘째, 일본이 1956년 선언 후 미국과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여 소련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두 도서의 양도에도 '강화조약 체결 이후'라는 단서가 있었음을 들어 소련의 정책을 합리화하고 있다. 또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 그들의 뒤를 잇는 옐친의 섣부른 영토정책은 민족의 이익을 배반한 것이라고 혹평한 후, 조약과 선언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쿠릴열도 수호를 옹호하고 있다.
마지막 2부는 쿠릴열도의 전략지정학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서술하고 있다. 남쿠릴은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일본에게 남쿠릴을 양보하면 러시아는 유일한 출구와 유일한 부동항을 동시에 상실하고, 태평양과 단절된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한편 남쿠릴은 풍부한 어족자원과 지하자원이 있어 경제가치가 막대하다. 그 가치를 일본에게서 받을 경제지원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책을 쓴 트카첸코는 경제학자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다보면 마치 국제연합헌장, 국제조약에 관한 비엔나협약 그리고 조약과 기타 자료들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는 내내 그를 국제법학자라고 생각한 것이 그리 큰 실수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치밀한 조약문 해석, 국제법적 설명, 꼼꼼한 자료 수집과 정리, 독자들을 위해 첨부한 자료 등은 그가 매우 뛰어난 학자임을 보여준다. 《쿠릴문제 - 역사, 법, 정책 그리고 경제》는 국경 문제, 영토 분쟁, 독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