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과 자료로 진실에 다가선 일본군‘위안부’
1990년 6월 일본 국회. 노동성 시미즈 쓰다오(清水伝雄) 직업안정국장은 ‘위안부’는 군과 관계없는 민간업자가 데리고 다녔고, 그 실태조사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991년 8월 김학순 피해자의 증언이 있었지만 일본군‘위안부’와 군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문헌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였다. 그러나 김학순 피해자의 증언은 연구자와 시민단체들에게 관련 자료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당위성을 품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2년 1월, 주오대학의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가 방위청 도서관에서 일본군‘위안부’가 군과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는 자료를 찾아내 언론에 공개하자 일본 정부는 정부와 군이 일본군‘위안부’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자체 조사를 시행해 두 차례에 걸쳐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개하기에 이르렀지만, 자료는 여전히 진실에 접근하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이후 증언과 자료가 묻혀 있던 일본군‘위안부’의 진실을 들춰내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자와 시민단체의 연대, 역사를 여는 ‘마중물’이 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군‘위안부’ 자료 발굴을 주도한 것은 연구자와 시민단체였다. 2000년대 접어들어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 등 국가기관에 의한 본격적인 자료조사도 시작됐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에 두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하기에 연구자와 시민단체들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했다. 자료 공유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일본 시민단체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이하 WAM)’ 홈페이지다. 재단의 이번 작업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 도 여기에 힘입은 바 크다.
흩어진 진실을 엮어낸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 1권과 2권은 WAM 홈페이지에 게재된 목록을 기초로 작업을 진행했다. 모두 589건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 정부와 군이 생산한 문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 가능하다. 첫째, 일본군‘위안부’ 설치와 관련된 문서다. 일본군은 위안소 설치 계획을 수립했고 각 파견군에 설치를 지시했다. 둘째, 일본군‘위안부’ 동원 및 이송과 관련된 문서다. 일본 외무성, 내무성, 경찰 등이 군과 협력하면서 ‘위안부’를 모집해 해외로 이송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 군 위안소 이용규정 등 위안소 실태와 관련된 문서다. 이용규정을 통해 현지 부대에서 위안소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위안부’들이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그들의 점령 하에서 많은 여성들이 강간 피해를 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 3권은 연합군 자료 202건을 정리한 것이다. 연합군 자료는 WAM에 수록되어 있는 미국 국립공문서관의 자료와 2018년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에서 발간한 『일본군‘위안부’ 관계 미국 자료』 I, II, III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017년에 발간한 『남서태평양지역 총사령부 연합군번역통역부(ATIS)문서』 1, 2, 3권 이하 국편 자료집을 토대로 정리했다. 연합군 자료는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한데 첩보기관이 생성한 자료와 영상 자료다. 3권에 수록된 문서 중 130건의 자료가 ATIS(연합군번역통역부), OSS(전략첩보국), OWI(전시정보국), SEATIC(동남아시아번역심문센터), CSDIC(합동심문센터)등 첩보기관이 생산한 문서다. 이는 해당 기관들이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심문하면서 얻은 정보이며, 영상 자료는 주로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에서 발굴한 자료들이다. 이 자료 속에는 일본군‘위안부’ 학살의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 4권은 중국, 타이완, 타이에서 얻은 자료 248건이다. 중국 자료는 기본적으로 당안관(檔案館)1)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은 일본의 점령지였고 위안소가 대량으로 설치되었던 곳으로 2012년부터 재단에서는 당안관에서 관련 문서를 수집해왔다. 이번 목록집에는 중국의 8개 당안관이 소장한 자료를 게재했다. 일본군이 일본군‘위안부’ 징집과 위안소 설치에 직접 관여했고, 관리 규정도 그들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헤이룽장성 당안관 자료에는 일본군이 위안소 장소를 물색했으며 일본군 전용 위안소를 개설하는 것을 주둔부대가 감독했다는 구체적 사실도 드러나 있다.
타이완 자료는 주로 타이완 총독부와 타이완 척식 주식회사가 관여했던 중국 광둥 지역 위안소 설치 및 ‘위안부’ 동원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주더란朱德蘭 타이완 중앙연구원 인문사회과학 연구센터 연구원이 1999년 『台湾慰安婦調査と研究資料集(타이완 위안부 조사와 연구자료집)』을 출간했는데, 재단은 이 자료집을 기초로 목록을 작성했다. 타이 자료는 60건으로 2011년 8월 방콕의 타이국립공문서관(National Archives of Thailand)에서 수집한 자료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타이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를 반증하듯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자료가 타이 최고사령부 문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1940년 12월 21일 체결한 타이-일본 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15만 명 이상의 일본군이 타이로 파병되었다. 타이가 일본군을 위해 유흥 구역을 제공했음을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타이의 아유타야 수용소에는 한국인과 타이완인이 수용되었는데 이들의 상당수가 간호부로 위장된 ‘위안부’였을 거라고 추측된다.
일본군'위안부' 연구와 자료수집의 나침반
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집은 원문이 없음에도 그 분량이 방대하다. 원문은 첨부하지 않았지만 각 문서철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기 때문에 조금 지루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다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와 피해 실태의 전체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자료집을 토대로 문서를 확인해 보면 된다. 이 목록집을 통해 현재까지 발굴된 문서가 어디까지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문서를 수집할 때 이 목록을 참고하면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거나, 비어있는 문서군이 어디인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목록집이 일본군‘위안부’의 연구와 자료수집의 나침반이나 지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앞으로도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 분석해 핵심자료집도 발간 예정이다.
<각주>
1. 한국의 국가기록원에 해당한다. 행정단위로 구분되어 있으며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성(省)급 당안관은 20여 개가 넘으며 시와 구에 해당하는 당안관이 있다. 소장자료는 당안관마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