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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적 성장에 매몰된 근대주의로는 미래가 없다
  • 대담 서현주 재단 교육홍보실 실장 / 정리 윤현주 작가 /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대담 서현주 재단 교육홍보실 실장

정리 윤현주 작가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사학과 문학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 주전공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제사로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 한반도철도의 정치경제학, 일제시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20세기 한국경제사외 다수가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무역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재단에서 교양총서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를 펴낸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를 만나, 일각에서 제기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해방 후 독립국가 출범의 의미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며, 이러한 논리에 동조하는 한국의 일부 보수’층의 허구성과 취약성에 대해 질타했다.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




 

Q

최근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를 출간하셨습니다. 굉장히 시의적절한 출간이었다고 보는데요. 출간을 결심한 이유와 집필하시면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일본 정부가 경제전쟁을 벌이고 아베 정권을 에워싸고 있는 일본의 우익세력은 한국이 식민 지배를 통해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이뤘는데도 그 은혜를 모른다면서 군국주의 역사인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일부 보수층이 노골적으로 동조하는 상황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란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면서 리더십을 강조하는데 식민지배가 좋았다니 정말 밑천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거죠. 사실 임계점을 넘어선지 꽤 지났지요.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아픈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국가 주권을 상실한 채 전개된 식민지자본주의를 자본주의와 같은 것으로 이해해온 근대주의의 착시현상과 그 여파를 곱씹어 볼 때인 거죠.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때마침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판 제의를 해주신 겁니다. 근대주의가 식민주의,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발전주의,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로 시기에 따라 얼굴을 달리해 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Q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을 두고 불편한 허구다’, ‘불편한 진실이다하는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식민지에서의 근대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민지에서의 근대화란 무엇이며, 이는 어떻게 식민지민의 삶을 변화시켜 왔나요?


A

근대화라는 단어처럼 원칙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단어가 있을까요? ‘근대화의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크게 세 가지 개인의 인권’,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 ‘자본주의 체제 성립이 기본적인 지표이겠죠. 그런데 이 중 어느 하나 식민지 상황에 적용되는 게 있나요? 물론 없어요. 그러나 오로지 양적 성장이 근대화라고 추종해온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특히 구미와 일본의 산업화가 제국주의로 확산되면서 시장경제에 의한 양적 성장 지표를 더욱 중시하게 됐죠


이렇게 시장논리에만 매몰되다 보니 자본주의 세 주체 가운데 개인과 기업만 보고 정작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국가의 필수적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이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국가가 시장을 만들거나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자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거든요.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수립하는 것 또한 국가이지 않습니까? 19세기 중엽까지의 영국, 2차 세계대전 이전 그리고 최근의 미국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미국이 계속 영국의 식민지였다면 오늘의 미국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는 물론 정이 가지 않는 패권자들간의 얘기지만 하여간 역사적 현실은 그렇습니다


일본이 조선에 없는 시장을 맨 땅에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시장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재편한 겁니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일본 정부와 그 대리인인 조선총독부가 장악한 겁니다. 이러한 근대화 과정을 편의상 식민지적 근대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침략자들은 왜 근대화를 추진했을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에게 식민지의 근대화가 정책적으로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요

 

식민지에서 근대화는 식민지민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식민지민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정치적 독립 의욕까지 포기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근대주의, 근대화론의 망령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의 식민주의 정신이 식민지민에게 식민지의 근대화 외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게 하고, 침략자를 향한 감정이입까지 일으키면서 그들의 마음까지 점령한 것이죠. 식민지민은 스스로의 힘이 약해 정당한힘의 대결에서 졌기 때문에 얻어터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무력감을 깊이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등감은 민족성 자체가 열등하다는 위계질서를 식민지민 스스로가 받아들이게 하면서 자신들을 침략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인식을 사라지게 만들었죠.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Q

현실뿐 아니라 정신까지 점령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화제를 돌려 책 내용에 대해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조선 지배가 한국 자본주의 기반이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교수님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계시는데요. GDP 수치를 중심으로 한 양적 성장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A

사실 GDP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보편화된 통계 추출 방식입니다. 그 이전에도 통계를 내는 방식이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 추정치입니다. 20세기 전반기까지 GDP를 운운하는 건 전부 추정치라고 봐도 무방하죠. 저 역시 GDP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GDP라는 게 총량만 이야기할 뿐이어서 다양한 분석 방법과 시각이 빠지면 본말을 호도할 우려가 크다는 거죠. 더구나 주권이 없는 식민지자본주의 속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고려치 않고 GDP 수치만 가지고 성장을 이야기하는 건 무모한 일이지요


국가끼리 쌀을 거래하는 건 시장에서 거래 즉, 무역이죠. 하지만 당시 한일 간에는 기본적으로 무관세였습니다. 주권 국가라면 관세 수입을 가지고 자국의 공업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조선은 오로지 일본 경제를 위한 저렴한 쌀 생산지로 규정되었을 뿐이니까요. 국가를 상실한 식민지 조선에서는 국내시장을 보호하거나 자국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어떤 지원정책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일본의 자본주의와 침략전쟁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죠. 양적 성장을 발전의 척도라 생각하고, GDP 수치가 증가하면 구성원 삶의 질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 것, 이 모두가 식민지 하에서는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적 성장에 초점을 두면 배가 산으로 가겠지요. 그러니 엉뚱한 얘기를 한다고 보는 겁니다.

 


Q

식민지자본주의와 자본주의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A

식민지자본주의는 자본주의와 비슷한 겉모습을 지니지만 사실 질적 차이가 있지요. 식민지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 축적, 재생산 구조, 발전 전망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일본에 의해 조선에 근대적 제도가 이식되면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고, 1930년대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총량도 늘어났지만 농민, 자본가, 사회주의자 등 좌우를 떠나 당대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이 식민지 경제를 잘 산다고 인식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친일적 기업인들조차 자신들의 기업환경이 나쁘고 차별적이라면서 사실은 불만이 많았어요

    




대담






Q

일본은 한국에 투자를 했을 뿐 수탈을 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1930년대 일제의 조선 공업화 정책이 1970년대 이후 한국 고도성장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중요한 건, 조선의 공업화가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을 위한 것일 뿐 조선 내의 산업과 연관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1980년 후반, 일부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발전의 기원을 1930년대 일제의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조선공업화 과정에서 후발성 이익을 흡수한 경험이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 전에는 이런 주장이 없었어요.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근대주의의 새 버전인 신자유주의가 횡횅하게 된 영향이 큰데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1987년 체제에 대한 반동적 현상이죠. 그러나 조선공업화의 배경과 성격, 그리고 그것이 조선 경제에 미친 영향을 함께 봐야합니다


농업경제 하에서 조선 농촌의 위기는 곧 식민통치의 위기가 됩니다. 그래서 대공황을 계기로 조선총독부는 지주 중심의 농업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조선공업화 정책을 혼용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자본을 조선으로 끌어들이죠. 조선에서 원료와 식량을 공급받고 조선에 소비재 상품을 판매하던 것을, 원재료와 중간재를 조선에서 공급받고 기계 등 자본재를 조선에 판매하는 방향으로 식민지 경영 방식을 전환한 겁니다


일본을 둘러싼 국내외적 환경이 변하니까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식민정책을 재설정한 것입니다. 당연히 조선 내에서 산업연관성이 있을 리 없지요. 일본이 대공황을 타개하고 중국침략을 확대하는 과정의 부산물이었죠. 이 때문에 식민지 산업구조가 일제의 패전과 더불어 바로 무너진 겁니다. 조선공업화의 주체는 일본 자본과 정부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고도성장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국가권력과 국민 사이의 피드백(민주화)을 거치면서 경제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물론 그의 부정적 여파도 적지 않은데 이 지점에서 일단 마무리하시죠.

 

 

Q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선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주장은 교육과 의료분야에서도 나타납니다. 실제 학교와 병원의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교수님은 이 또한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조선총독부가 학교와 병원을 왜 만들었고, 어떻게 운영이 됐는지를 봐야죠. 일본은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롭게 보통교육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보통학교이름이 특이하죠? 조선인들에게는 단지 부리기 편하게 말하고 읽고 쓰는 보통교육 정도면 족하다는 전제가 붙은 겁니다. 일본이 지배하기 쉬운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인 것이죠. 가령 철도의 경우 고용구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은 일본인이 독점하는 등 차별의 장벽이 강고 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근대 의료기관을 세워 조선인들의 민심을 회유하면서, 식민 통치의 문명적 우수성을 강조했지만 속사정은 이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본이 의료기관을 세운 건 재조선 일본인의 전염병 감염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인의 조선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죠. 각 지역의 자혜의원 이용자 중 일본인이 조선인의 14~20배에 달했다는 사실을 보세요.



Q

책에서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요. 식민지 노동정책이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A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식민통치하의 경제상황을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쌀 공급지가 되면서 쌀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농민들의 삶의 기반은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도시 주변에서 빈민이나 실업자로 살아가게 되지요. 이후 공출이라는 무자비한 약탈 방식은 농민들의 일상마저 무너뜨리죠. 이런 식민지 상황은 전 인구의 10% 이상이 국외로 이주하는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굶주림과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조선인들은 결국 식민 지배의 최종 도착지인 강제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했죠. 저승사자를 만난 겁니다. 강제 동원은 일본 국가가 일본 기업의 노동력 동원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뤄진 일본과 일본 기업의 공범적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외 동포 역사에서 이주의 가장 큰 동인이 일제의 식민 지배였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Q

일본의 지배가 없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없었다는 주장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에 맞서 교수님 또한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A

그게 가정의 정치학이거든요. 가짜뉴스가 반복 주입되면 사실로 착각하는 현상과 비슷하죠. 근대주의의 식민주의가 남긴 노예근성이 그만큼 질기게 배어 있는 겁니다. 국민들이 국가의 민주화 내실을 채워야하는 과제가 늘 남아있습니다만, 제국주의-식민지 관계 속에서 진행된 근대화나 자본주의의 내용을 얘기할 때 일차적으로 국가의 존재 여부가 핵심적 고려 대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제가 식민지적 근대식민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고요. 몇 년 남지 않은 정년 전에 세계사 속에서 본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책을 쓰려고 구상 중입니다. 우리가 세계사를 이끌어갈 수준은 못되라도 우리가 사는 동북아에 그 영향력을 충분히 미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