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냉각기, 떠오르는 과거사 문제
최근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냉랭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관련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리자,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한국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배상 판결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동원으로 인한 한국인의 피해에 대해 일본 측에서 배상을 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문제 삼아, 일본이 한국에 대해 보복성 규제를 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경직되었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냉각 속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 문제가 부각되자, 지난 8월 9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계기교육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재단은 일선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관련 학습 자료 개발을 시작했다.
강제 동원 문제를 주제로 한 학습 자료 제작
개발된 학습 자료는 학교 급별 수준을 고려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총 3종으로 나누었고, 각각 4종의 자료교수-학습지도안, 학습지, 교육용 파워포인트, 교사용 수업 참고 자료로 구성했다. 자료는 재단의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자료 개발을 총괄적으로 담당했던 박중현 서울 영등포 여고 교사는 “현장에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초등학교 역사 교사 이난영·석병배, 중학교 역사 교사 이경훈·이준하, 고등학교 역사 교사 박범희·권오청이 주도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며 “각 학교급별 자료의 완결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를 위해 모든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6차례의 집중 토론을 거쳤는데, 집중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체크하면서 완성도를 높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초·중·고의 학습 자료가 초등학교면 초등학교 자료, 중학교면 중학교 자료로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학습 자료로 짜임새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가령 중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학습지로 1차시 수업을 하고, 중학교 학습지로 2차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학습 수준이 높은 중학교라면 3차시 수업으로 고등학교 학습지를 활용할 수도 있게 말이다. 단계별 역량을 고려해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과 관련한 여러 형태의 주제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이번 자료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학교급별로 나눈 것은 어쩌면 단순한 구분에 불과하다.
강제 동원의 유형과 사례를 통해 강제 동원에 대해 생각하다
초등학교용 자료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물 학습에 주안점을 두었다. ‘용자’, ‘순례’, ‘대현’, ‘춘식’으로 호명되는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는 정혜경 선생이 연구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제 사례다. 일본의 방직공장에서 근로정신대로 일한 ‘용자’,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아버지의 생사를 궁금해하는 ‘순례’, 학도병 지원을 피해 독립운동을 하러 가던 중 평안남도의 시멘트 공장에 강제 동원된 ‘대현’, 그리고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 동원되었던 ‘춘식’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된 ‘춘식’은 한국 대법원의 최종 승소 판결로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이춘식 씨의 실제 이야기다. 4명의 일대기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첨부되었다. 이들의 일대기를 통해 강제 동원의 여려 유형뿐 아니라 강제 동원 되었던 다양한 지역들을 살펴볼 수 있다.
중학교용 자료는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강제 동원의 실태와 피해를 이해하고 그 삶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학습 활동을 배치했다. 중등과정은 초등에 비해 강제 동원을 보다 개념적으로 접근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 수준을 높였다. 또한 이러한 수업이 극단적인 반일 감정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일본인들이 세운 강제 동원 추도비의 내용과 한일 청소년들 간의 교류 사업도 소개하고 있다.
고등학생 자료는 징용, 징병, 여자 근로 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의 강제 동원 사례를 기초적으로 학습한 뒤, 강제 동원 피해에 관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승소 판결문을 분석하도록 했다. 판결문을 통해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 내용이 구성되었다. 이는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에, 90여 쪽에 이르는 교사용 참고 자료에 필요한 자료를 첨부해 두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해 논쟁적으로 학습을 전개할 수도 있다. 한편 하야시 에이다이나 후쿠도메 노리아키와 같은 강제 동원 피해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노력한 일본인들에 관한 자료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연대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