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17세기 초의 조선통신사를 기록한 사료 두 편을 수록했다. 1607년의 통신사 기록 『경장십이년종조선지칙사어자야숙지사(慶長十二年従朝鮮之勅使於紫野宿之事)』와, 1624년의 사행 기록 『관영원갑자년조선신사내빙강호왕래일장(寛永元甲子年朝鮮信使来聘江戸往来日帳)』이다. 두 편 모두 ‘쓰시마(對馬) 종가기록(宗家記錄)’으로, 원본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일 관계를 기록한 조선 후기 등록류 중에서 통신사와 관련된 대표적 문헌 중 하나인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은 사행의 전 과정을 다루면서도 가장 다수의 사행을 수록하고 있다. 『통신사등록』은 예조에 소속되어 외교 관계 실무를 담당하던 전객사(典客司)에서 편집한 것으로, 총 14책의 필사본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각각의 통신사행에 대한 준비와 파견, 귀환에 이르는 과정, 경상감사·동래부사, 예조·비변사·승정원, 통신사의 정사와 부사 등에 의해 작성된 공식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 각지에도 통신사와 관련된 사료나 서화(書畫) 등이 현존하는데, 기록물의 형태로 가장 풍부한 사료를 남긴 주체는 쓰시마번이었다. 막부의 허가를 얻어 통신사를 초빙하는 단계부터 에도성(江戶城)에서 조선 국왕의 국서(國書)를 쇼군에게 전달하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 통신사 일행을 호행(護行)하는 역할을 했던 쓰시마로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조선과 통교하는 과정에서 외교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고사선례(故事先例)’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쓰시마는 모든 통교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두어 후일에 판단의 근거로 삼고자 했다. 통신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쓰시마 종가기록’으로 통칭되는 고문서군 중에 통신사 기록은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도서관, 도쿄국립박물관, 한국국사편찬위원회에 분산·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세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통신사 기록을 살펴보면, 쓰시마가 기록을 본격화한 것은 1636년 사행부터이다. 그 이전 1607년, 1617년, 1624년 사행의 경우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1607년 사행과 1624년 사행을 기록한 사료가 있으나, 1617년 사행을 기록한 단독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조선이 편찬한 『통신사등록』도 1643년 사행부터 기록하고 있어서, 임진왜란 종료 후 가장 초기의 통신사를 기술한 단독 기록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두 편의 사료가 유일할 것이다.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 통신사가 바닷길로 다닌 일본 30곳의 경승지 ⓒ국립중앙박물관
첫 번째 사료 『慶長十二年従朝鮮之勅使於紫野宿之事』는 1607년 통신사 일정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다. 1607년 통신사의 구성에서 삼사(三使)는 정사(正使) 여우길(呂祐吉), 부사(副使) 경섬(慶暹), 종사관(從事官) 정호관(丁好寬), 수행한 역관은 김효순(金孝舜), 박대근(朴大根), 한덕남(韓德男)이다. 조선통신사의 방일 명목은 ‘국교 회복’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양국 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처음으로 파견된 통신사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는 매우 크지만, 임진왜란 직후 기록 체계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내용이 소략하며 작성자도 불분명하다.
사료는 통신사 일행이 4월 12일 교토(京都)에 도착하여 교토의 기타구(北區) 무라사키노(紫野) 다이토쿠지(大德寺)에 숙박한 시점부터, 5월 에도(江戶)에 도착하여 국왕 선조(宣祖)의 국서를 쇼군 히데타다(秀忠)에게 전달하고, 귀국길에 오른 일행이 6월 11일 배편으로 오사카를 출항하는 시점까지를 기록하였다.
조선통신사가 교토에 머무는 동안 막부의 고위직 인사나 당시 외교승 등과 나눈 교류, 에도에 머무는 동안 에도성에서 쇼군 히데타다를 비롯하여 통신사가 치른 외교적인 의례, 마지막으로 오고쇼(大御所) 이에야스(家康)의 거성 슨푸성(駿府城)에서 거행한 의례가 주된 내용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일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1607년 통신사는 국왕 선조와 쇼군의 국서가 교환되면서 사실상 국교를 다시 맺는 역사적인 외교 이벤트였다. 그 과정을 쓰시마의 사료를 통해 살펴보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두 번째 사료 『관영원갑자년조선신사내빙강호왕래일장』은 1624년 통신사의 일정 일부를 기록한 것이다. 1624년 통신사의 구성은 정사 정립(鄭笠), 부사 강홍중(姜弘重) 종사 신계영(辛啓榮), 수행한 역관은 박대근(朴大根)·이언서(李彥瑞)·박언황(朴彥璜)·강우성(康遇聖)·홍희남(洪喜男) 등이었다. 강홍중의 사행록으로는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조선통신사의 방일 명목은 ‘이에미쓰(家光)의 3대 쇼군 취임 축하’였다. 사료는 통신사가 조선을 출발하기 직전인 9월 14일부터 시작되어, 쓰시마를 거쳐서 12월 중순에 통신사가 가져온 선물이 쇼군과 막부의 각료들에게 전달되는 장면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통신사 일행이 부산에서 에도에 이르는 동안, 가는 곳곳에서 어떤 접대를 받고 어디에서 숙박했는지가 적혀 있다. 곳곳에서 접대를 담당했던 다이묘(大名)와 성주(城主), 접대 형태, 증답품 왕래 등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어 통신사 일행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접대를 담당한 지역의 권력과 쓰시마가 서로 연계하여 일을 진행시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두 편의 사료를 1607년 사행 및 1624년 사행을 기록한 조선의 문헌과 대비하여 활용한다면, 17세기 전반 조일(朝日) 관계 및 조선통신사 연구에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재단은 지난 2015년 이래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Ⅰ·Ⅱ』를 발간한 바 있다. 그것에 연속하여 ‘조선통신사 기록’을 소재로 발간된 세 번째 사료집이 조선통신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써 적극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