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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소개합니다
  •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시민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증대하기 위해

동북아 역사독도 관련 시민단체들의 소개와 소식을 전합니다

 

     

     

올해 411일 제101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식은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에 주는 감회가 특별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기공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창립 이후 가장 중요한 목적 사업이 성취되고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정부 주도로 지어지며 2021년 말 준공 예정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교두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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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서울시 서대문독립공원 어울쉼터에서 열린

제101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우리가 아직 모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2004915일 창립했다. 창립선언문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주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킴으로써 민족 정기와 독립 사상을 고취하고 평화통일을 앞당기고자 한다고 적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역사적 실체를 기념하고 선양하는 일을 본연의 임무로 삼은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라고 명시하여 대한민국의 건국 기반이 임시정부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안겨준 임시정부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임시정부를 상하이 임시정부라고 잘못 부르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초기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324월 윤봉길 의거 이후에는 상하이를 떠났다. 이후 19409월 충칭에 안착하기까지 8년여 간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에 이르는 고난의 대장정을 결행한다. 또 충칭에서 5년 넘게 체류한다. ‘상하이 임시정부'라는 호칭이 잘못된 이유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임시정부에 참여한 인사는 무려 3천 명이 넘지만 김구, 이봉창, 윤봉길 정도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관련 선열들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9년 상하이에서 1945년 충칭까지, 임시정부는 남의 땅 중국에서 27년의 세월을 견디어냈다. 우리는 임시정부의 시작도, 업적도, 대한민국의 탄생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바친 땀과 피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임시정부에 대한 역사적 홀대>


광복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임시정부의 의미는 평가절하되었다.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는 역사가 무시되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는 사실도 묻혔다. 광복 후 국내 귀환 때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 인사들은 미군정의 요구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다. 안타깝고 분한 일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군사조직 조선의용대를 만들고 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하여 군무부장을 맡았던 약산 김원봉이 일제경찰 노덕술에 의해 모욕당한 사건이다. 의열단을 조직하여 의열투쟁이라는 말까지 만든 독립운동의 빛나는 별이었던 그가 노덕술에게 멱살을 잡히고 모욕을 당했다. 일제 경찰이 무시하는 독립운동 영웅 김원봉의 모습, 그것이 한국 현대사 속 임시정부의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활동>


임시정부 수립은 우리 역사가 임금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바뀌는 혁명적 전환점이었다. 우리 역사에 민주공화정을 뿌리내리게 하고, 조국 광복을 견인한 것도 임시정부의 빛나는 업적이다.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 1940년 광복군 창립, 한국 독립을 견인한 1943년 카이로선언, 1945년 국내진공작전 수립까지 광복을 향한 임시정부의 도정은 거침이 없었다.


또한, 임시정부는 각 정파를 망라한 거대한 통합의 용광로였다. 조국 광복의 대의 아래 좌우 이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깃발에 모든 정파가 모였고, 독립의 한 길로 나아갔다.


본 사업회가 2004년 창립 이래 학술회의, 출판, 전시, 공연, 답사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조명한 것이 임시정부의 이러한 면모들이었다. 해마다 항일투쟁의 현장을 찾는 <독립정신답사>를 진행했고, 2006년 재북 애국지사 성묘단 방북, 2009<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전시와 학술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열었다. 이 모든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20151123일 본 사업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회장: 이종찬)를 출범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의 필요성과 당위성>, <대한민국은 언제 세워졌는가> 등의 학술회의를 연달아 개최했다. 학술적 논의를 통해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진전 <제국에서 민국으로>, 스토리 펀딩 <한국사를 지켜라> 등을 통해 국민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호소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망라한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진집을 발간해 전국 시도교육청에 보급한 것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2018<콘서트&오페라 백년의 약속><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를 잇달아 주최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20181, 마침내 우리 정부는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종찬)를 구성하여 기념관 건립에 나섰고, 2020411일 기공식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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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조감도 ⓒ국가보훈처



<이제 새로운 100년으로>


임시정부가 한민족 역사에 최초로 등장시킨 민주공화제. 그 민주공화정은 분단과 전쟁의 질곡 속에서 빛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3·1혁명의 물줄기는 4·19혁명과 5월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6월 항쟁을 거쳐 오늘날까지 거세게 흐르고 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이다. 임시정부 100년은 대한민국의 100년이다. 새로 건립되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는 근거지가 되어야 한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구상하는 창의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고 조언하며 발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