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라는 전 세계적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맞이한 75주년 광복절이 110년 전 일본에 의한 한국강제병합의 역사와 접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카(E. H. Carr)가 설파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서의 역사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자, 토인비(A. J. Toynbee)가 주창한 ‘도전과 응전’의 역사적 성찰을 통한 응답으로 역사 정의의 차원에서 조명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전진하여 작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내재된 정의의 기제가 작동하지 못할 때 인류는 참혹한 희생을 반복했다. 현재도 여전히 20세기의 유산인 암울한 과거에서 기인한 역사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일본역사학연구회가 비판한 바와 같이 2015년의 ‘전후 70년 아베 담화’가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한 것이 아니라, 독선적인 역사 인식의 표출에 더하여 가해를 재생산하는 횡포로 거듭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과 ‘역사수정주의’를 정책 기조로 삼은 일본 정부가 전가의 보도마냥 주장하는 역사 왜곡 프레임인 ‘1910년 식민 지배 합법론’과 ‘1965년 한일협정 완결론’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적 정의 구현을 통해 진정한 평화 공동체를 모색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에 뜻을 함께한 한일 양국 학자들은 ‘2010 한일강제병합 100년사’와 ‘2015 한일협정 50년사’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와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이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식민주의의 역사적 종식’을 담은 2001년 ‘더반(Durban) 선언’의 동아시아 버전으로, 올바른 역사의 정립을 통한 기반 위에서 역사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헌법재판소는 2011년 전향적 판결을 내렸고, 한국 대법원은 2012년 파기 환송에 이어 2018년 역사적 진실에 대한 법규범적 정의에 입각한 판결로 화답하였다.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의 배경
재단의 전신인 청와대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한 2005년은 을사늑약 100년이 되는 해이자 광복 60주년이었으며,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하여 ‘한일 우정의 원년’으로 설정된 해이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로 한일 양국의 선린우호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고, 일본 정부가 종전 50주년인 1995년에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를 넘어선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의 출발을 위한 배상 등에 기대 섞인 전망이 모아졌다.
그러나 일본은 시마네현을 통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함으로써 100년 전 한국의 독도 주권에 대한 침탈의 역사를 기념하고 이를 계승하겠다는 역사 인식을 극명하게 표출했다. 을사늑약 100년의 시점에서 일본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양국 간 역사 화해의 전기(轉機)가 향후 표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였다.
2010년은 한일 간 역사 갈등의 본질적 원인 규명과 그에 대한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일을 역사적 과제로 인식하는 계기이자 정의의 소명으로 자리매김하는 전기가 되었다. 그것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올바른 역사 정립을 통한 기반 위에서 진정한 역사 화해와 동북아 평화 공동체 건설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환기하고자 하는 것은, 2009년 2월과 7월 일제강제동원 피해 배상 항소심에서 한국 고등법원이 일본 내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확정한 2007년의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기판력(旣判力) 존중’이라는 법리에 따라 한국 고등법원이 수용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저변에 일본 정부의 식민 지배 합법론과 한일협정 완결론을 전제로 한 것으로, 대법원이 원심 그대로를 확정하면 한일강제병합 100년 만에 한국 사법부의 판결로 인해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합법으로 승인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10년 일본의 한국강제병합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과 국제법적 정의 구현에 뜻을 둔 한일 양국의 학자들은 2009년 6월 22일 ‘한일강제병합의 국제법적 무효·불법성’을 규명하였다. 이는 2010년 5월 10일 214명으로 시작하여, 65주년 광복절을 앞둔 7월 28일에는 1,139명의 한일 양국 지식인이 역사적 정의에 입각하여 ‘1910년 한일병합조약은 원천 무효’임을 천명한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공동성명이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미친 영향
‘공동성명’은 한일병합조약의 전문(前文) 뿐만 아니라 본문도 거짓이며, 조약 체결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국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한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 양국이 맺은 한일기본관계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원천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일본 침략주의의 소산이었던 불의 부당한 병합조약이 당초부터 불법·무효라고 해석한 한국 측의 해석을 공통된 견해로 받아들여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국제법 학계에서 ‘반(反)인도적 범죄’와 ‘식민지 범죄’에 관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바, 이에 대한 논의를 수용하고 정의의 바람을 받아들여 침략과 병합, 식민 지배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함도 제창하였다. 이 ‘공동성명’은 2006년에 시작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2011년 부작위 위헌 결정, 2000년에 시작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2012년 파기 환송과 2018년 강제동원피해 배상 판결의 기점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국가의 작위 의무는 헌법상의 의무”라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2012년 대법원은 “일본의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비롯하여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일제의 식민지 책임을 전면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을 보장하여 적극적 평화와 역사 정의를 추구한 판결이다. 이에 2018년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불법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최종 판결하였다.
공동성명의 대척점, 일본의 수출 규제
‘공동성명’의 핵심은 한일병합조약의 원천 무효다. 식민 지배 불법론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국제인권법의 핵심이자 2005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권리기본원칙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과 범위에 대한 최종적인 유권해석으로, 일본 기업의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아베 정권은 전략물자이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발 수출을 규제하고, 비(非)전략물자라도 대량파괴무기 등으로 전용 가능성이 높은 물품을 수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캐치올 제도가 한국 법령상 통제의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호국에 수출 통관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선적인 역사 인식으로 가해의 횡포를 확대 재생산하여 국제통상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수출 규제로 도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핵심 첨단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사유로 내세울 수 없는 일본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제시한 것은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이하 ‘GATT’) 제21조 안보상의 예외 사유인 ‘전략물자무역관리제도’다. 그런데 한국은 캐치올 제도를 일본보다 엄격하게 운용하는 국가다.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세계 200개 국가의 전략물자무역관리제도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순위는 전체 국가 중 17위, 일본은 36위다. 한국이 일본보다 19단계나 앞선다. 그런데 안보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 우호 조치를 없애고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에 문제를 제기하며 경제 보복으로 한국을 위협한 일본이, 다른 한편으로는 최상위 안보 공유 체계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 연장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크게 3가지 조항의 WTO 규범을 위반했다. 먼저 GATT 제11조 1항이다. 이 조항은 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일본이 한국으로 핵심 첨단 소재 3종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 조치는 전형적인 수량 제한 금지 원칙에 대한 위반이다. 다음은 GATT 제1조 1항 위반이다. 세계 무역 질서에서 최혜국 대우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타국으로 수출하는 자국 상품과 수입하는 동종의 상품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고 있다. 핵심 첨단 소재 수출과 관련하여 한국을 차별하는 것은 전형적인 최혜국 대우 원칙 위반이다. 더하여 일본은 GATT 제10조 3항을 위반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각 체약국들에 대해 일률적이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통관 및 행정 절차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부터 예상되는 WTO 제소를 회피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국의 전략물자관리제도부실 등을 거론하면서 자의적인 수출 규제 강행 조치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전형적인 규범 위반에 해당한다. 우리는 ‘국제법을 앞세운 일본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다자 간 국제법 규범에 입각하여 대응하여야 한다.
식민주의의 청산과 역사 정의의 과제
아베 정권의 정책 기조는 현재의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국으로의 복귀(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와 과거사에 대한 반성 대신 역사 자체를 수정하겠다는 것(역사수정주의)이다. 그러나 2005년의 피해자권리기본원칙상 피해자 중심주의, 2010년의 ‘공동성명’에 입각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일본의 역사 왜곡 프레임인 식민지배 합법론과 한일협정 완결론을 일거에 봉쇄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억지 주장 자체가 국제인권법상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양국 국장급 원포인트 회의에서 GATT 제20조 B항에 명시된 조치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고려하여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 한국에 철폐를 요구하고, 기어이 이 문제를 WTO에 제소했다가 2019년 최종 패소한 선례가 있다. 일본은 이 연장선 상에서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전격 단행하여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을 붕괴시키는 동시에, 일제 식민 피해자의 인권 구제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다시 한번 국제통상법 위반을 강행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양국 언론은 “일본 공격에 일본이 당했다. 일본이 잠자고 있던 한국을 깨웠다”고 보도한다. 이는 일본에 또 하나 추가된 역사적 과오의 반복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이 추구한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서의 식민제국주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일제 식민 지배의 토대이자 제국주의 침략 노선의 근간이었던 ‘국가주의’ 철학으로부터 국제인권법적 법리를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일본과 독일의 침략과 잔학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극단적 경시와 침해였다’는 반성에서 형성된 오늘날 국제인권법을 간과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가해자는 가해자의 논리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공동성명’의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인권, 정의, 평화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국제인권법과 UN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른 법리로 문제를 제기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일제 식민주의의 피해국이자 동북아 평화 공동체의 중심축으로서 우리의 문제를 국제인권법적 정의에 입각하여 해결해야 한다. 서구 제국이 자행한 ‘식민주의’의 역사적 종식을 선언한 2001년 ‘더반 선언’, 그리고 동아시아 식민주의의 청산을 평화와 협력의 출발점으로 삼은 201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의 의미와 역사적 진실의 조명은 75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역사가 되묻는 질문이자, 우리가 역사적 성찰로 응답해야 할 역사 정의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