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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2
파편화되고 간소화된 타이완 교과서 속 한국 역사
  • 린츠수(林慈淑) 타이완 둥우대학(東吳大學) 교수


한국어문화과가 설치되어있는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National Chenchi University, 國立政治大學) 도서관


한국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타이완 학생들


 타이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낯설지 않다. 삼성 휴대폰, 불고기, 패션의류 그리고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한국드라마는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하면 그 대답은 자명할 것이다. 타이완 교과서에서 한국사에 대한 서술은 오랫동안 매우 소략했다. 아마도 중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 수당제국의 고구려 정벌을 잠깐 언급한 정도일 것이다. 그나마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는 한국전쟁의 경우에도 한 페이지가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이다.

 2019년 새로운 교육과정요강이 발표되었는데, 원래대로라면 한국사 서술에 변화가 있어야 했다. 한국사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중 중국과 동아시아단원에 포함시켜 서술했다. 이번 교과서 개정은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고등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정식으로 한국사를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한국사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한국사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결과를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한국사에 대한 단편적인 역사지식을 익힐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험을 보기 위해 기계적으로 외우기 때문에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교사는 학생들이 한국사를 사소하게 여겨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였는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주제별 편성으로 인한 한국사의 단순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교육과정요강의 지침에 따라 주제별로 집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국과 동아시아단원은 국가와 사회’, ‘인류의 이동과 교류’, ‘현대화 과정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사는 이들 세 종류의 주제 안에 포함되어 서술되고 있다.  

 가장 흔한 형태의 주제별 교육은 특정 주제를 선정해 그 주제가 장시간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탐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교과과정을 발전사라고 부른다. 발전사 중심의 역사교육은 학생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장기간의 변화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주제 중심의 역사교육은 문제가 적지 않다.

 첫째, 왜 이런 주제를 선정했는가? 이런 주제는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가? 주제들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국가와 사회’, ‘인류의 이동과 교류’, ‘현대화 과정이라는 주제는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과연 어떠한 접점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주제가 학생들이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정부의 공식문건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둘째, 발전사는 여전히 편년사 체제에 속한다. 수업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특정 주제의 장기적인 변화를 추적하고 깊이 있는 탐구를 하기 어렵고 변화를 이끄는 복잡한 맥락, 특히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경향을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주제의 발전사는 피상적인 서술로 흘러 고립된 현상의 개별적인 연혁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단순화하는 것은 왜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고등학교 역사수업은 매 학기 18, 매 주 100분씩 2회뿐이다. 이 짧은 시간에 중국과 동아시아단원에서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등 많은 국가의 역사를 설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간소화의 함정은 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학생들이 한국사를 배우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현재 시중에는 다섯 종류의 역사교과서가 유통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중 세 종류의 교과서를 분석했다. A교과서는 역사학자들이 집필했는데, 특히 고등학교 교사들이 집필한 것이 많다. B교과서는 장절 구성이 교육과정요강의 목차와 가장 비슷하다. C교과서는 한국사에 대한 기술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좌), 한글을 창제한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파편화되고 간소화한 한국사


 「중국과 동아시아교과과정의 핵심은 중국사에 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역사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분량이 많지 않다. A교과서의 경우 한 페이지 반 정도의 지면에 기원전 1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한국사의 정치변화 양상을 서술했다. 짧은 지면에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조에 이르는 긴 과정을 담았기 때문에 당연히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사는 무미건조하고 자질구레하며 분산되고 파편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B교과서는 고려시대 중앙집권제 수립, 과거제도, 유림정치, 양반정치, 불교의 유입과 전파 등을 여덟 줄로 서술했다. 사실 위와 같은 내용은 복잡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한두 마디 설명으로 대충 넘어갔다. 조선시대는 이성계의 왕조 건립과 주자 성리학의 발전’, ‘신분계급제도’, ‘한글창제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각 단락의 내용은 독립적이어서 상호연결성을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균형감(perspective)을 가지고 객관적(overview) 관점에서 각 시기의 사건들 간 연관성을 찾아내고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라부터 통시적 관점에서 고려, 조선에 이르는 시기 중앙집권제체제의 시기별 차이점을 정리할 수 있다. 또는 C교과서처럼 두 왕조에 걸쳐 지속된 과거제도의 변화와 차이점을 소개한다면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고, 역사적 사실을 구성할 수 있는 큰 그림(big picture)을 제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과서는 이러한 면에서 노력이 부족하고 관련 지식도 깊지 못한 상황이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한국사는 사소하고 기억할 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 한국사는 시험에 잘 나오지 않으니 모르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이와같이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태도는 역사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교과서 편찬자는 새로운 교육 과정에 틀을 맞추기 위해 일부 한국사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각기 다른 장에 배치했다. 예를 들어 B교과서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서로 다른 세 개의 단원으로 분산해서 실었는데, 아래 표와 같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전체 역사시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다각도에서 상호관련성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구성은 이런 기대와는 역행하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모든 교과서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 시대에 대한 내용이 분산되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학습자가 이 분야에 대한 탄탄한 지식이 없다면 단편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며,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교과서를 통해서는 타이완 학생들이 한국사에 대한 의미 있는 역사적 이미지를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편향된 역사해석


 타이완에서 출판된 거의 모든 교과서는 현대화 과정이라는 주제에서 개화파와 보수파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19세기 중후반의 역사를 쇄국정책을 지지하는 보수파와 개혁을 지지하는 개화파의 대립과 충돌로 단순화하고 대원군과 고종이라는 두 통치자를 두 파벌의 우두머리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역사해석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서양세력의 무력 침략과 문화적 침투, 중국과 일본의 내정간섭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직면한 조선 각 집단 태도와 반응을 너무 간략하게 소개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 사람들은 국가적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복잡한 태도를 보였으며 나름의 선택을 했다. 예를 들어 개화파의 경우 모두가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집단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했고, 어떤 이는 온건하고 점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둘째, 획일적인 관점에서 쇄국파개화파로 단순화했다. 전자는 흔히 보수사상이나 수구세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후자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들의 대립을 모두 정치적 갈등과 대립의 결과로 돌렸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자주권과 전통문화의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격변을 맞이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문제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이 생기면서 다양한 주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쇄국정책을 주장하든 개방을 지지하든 모두 각자의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문호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의 대응책도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는 정치체제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혁을 하려면 방대한 재정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농민들의 납세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사회구조문제와 계층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서구화만이 절대진리인 것처럼 기술해서는 안 된다. 교과서는 이분법 혹은 후대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단순화해 보수, 진보라는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 당시의 복잡한 양상을 세세히 소개해 학생들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단일하고 경직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정국이 불안한 시기에 종종 언급되는 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는 보수파와 개화파의 대표로 소개된다. 예를들면 대원군은 문호개방을 반대하는 보수파의 수령으로 천주교를 탄압하고 전제왕권을 강화하는 인물로 이미지가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평가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대원군은 과거에 지방유림과 서원의 횡포를 제압하고, 양반에게도 조세를 납부하도록 했으며, 농촌경제 재건 및 변경지역에 둔전을 추진하는 등 개혁조치를 취한 바 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흑백논리에 빠져 경직된 사고로 사회를 바라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교육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타이완의 역사교육은 교육과정요강 제정, 역사 교재 집필, 교육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타이완에서 출판된 역사 교과서

 


타이완에서 출판된 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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