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독도체험관의 ‘독도의 자연’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해류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과거 거문도 사람들과 제주 해녀들은 울릉도, 독도로 가서 배를 만들고, 미역을 채취하는 등 출어 활동을 했다고 한다. 거문도 사람들은 항해에 능해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울릉도에 가서 미역을 채취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1962년『민국일보』의 김윤삼 노인 인터뷰 기사와 제주도 해녀들의 출어비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출어비는 울릉도와 독도에 가서 물질을 해 온 제주 해녀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를 말한다. 지난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독도체험관 직원들을 중심으로 여수 지역과 울릉도 및 독도와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초도와 거문도를 다녀왔다.
독도체험관(자연관)전시물, "과거 거문도 사람들과 제주도 해녀가 독도에 온 까닭은?"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이규원이 울릉도에서 만난 초도 사람들
육지 답사와는 달리, 섬 답사는 배편에 일정을 맞춰야 하니 의외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초도가 그런 곳이다. 여수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해 거문도로 가는 길에 초도에 들렸다. 초도는 여수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울릉도 검찰일기』에 의하면 “이규원이 만난 울릉도 거주민 140명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다. 그 중 절반에 가까운 56명이 초도 출신이다”라고 한다. 이로 보아 울릉도 거주민 중 무려 82%가 전라도 출신이었고 초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많이 드나들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답사팀은 초도에 울릉도(독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하루 일정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관련 기록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이번 일정에 아쉽게 가보지는 못했지만, 초도 의성리에 세워진 ‘울릉도·독도 개척 기념비’에 『울릉도 검찰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념비 내용에 의하면 울릉도로 이주한 초도 출신 56명은 ‘김근서와 격졸 19명, 김내연과 격졸 12명, 김계연과 격졸 22명’이라고 한다. 『울릉도 검찰일기』에 따르면 울릉도로 간 이들의 성씨는 모두 김씨다. 따라서 초도에 사는 김씨 일가의 족보나 자료 등을 조사하면 ‘더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거문도에서 발견한 울릉도와 독도
거문도는 ‘거문도 뱃노래’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400여 년 전부터 서도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전승된 ‘거문도 술비소리’라는 민요가 있다. 이 노래는 거문도 사람들이 어로작업에 필요한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동요다. 이 노래에는 “울릉도로 나는 간다”, “울고 간다 울릉도야”와 같은 가사가 나온다. ‘거문도 술비소리’ 가사의 내용으로 보아 오래전 거문도에 살던 주민들이 울릉도로 이주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김병순 옹의 기록물과 김윤삼, 박운학, 이귀순 등의 구술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밖에도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 있는 지명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독도체험관에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나오는 ‘석도’는 ‘돌섬’을 전라도 방언으로 ‘독섬’으로 불렀던 것에서 기원을 찾고 있다. 현재 고흥군 오천리 앞바다의 돌섬도 ‘독도’라고 부르고 있다. 독도에는 거북손의 거문도 방언인 ‘보찰’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갈밭의 거문도 방언인 ‘작지’라는 말이 울릉도에 전승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는 전라도 지명과 방언이 남아 있어 두 지역 간의 교류를 짐작케 한다.
이번 답사의 또 다른 성과라면 거문도 출신 울릉도 초대 도감으로 알려진 오성일(吳性鎰)의 무덤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실, 오성일이 실제 울릉도 도감을 역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가 울릉도에서 ‘도감’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부분은 다른 관찬 기록과 교차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거문도 서도리 출신으로 도감까지 지냈다면 유명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오성일의 무덤에 직접 가본 사람이 없어 지도를 보며 어렵게 찾을 수 있었다. 마을 분들에 의하면 오성일이란 인물은 학식이 높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물이 좋고 체격이 건장하였으며 당시거문진(巨文鎭)에서 발생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거문진 설치 후 2년간 머물던 조선 군인들이 철수할 때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초도 의성리 소재 울릉도·독도 개척 기념비
새로운 다짐과 향후 과제
안용복과 관련된 사료에 여수 흥국사 뇌헌 스님과 그 일행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번 일정에 여수 흥국사를 찾아 뇌헌 스님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교통편이 맞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여수는 거문도와 초도에 비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방문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우리 답사팀은 거문도와 초도 답사를 가기 전 많은 사전 학습을 했다. 현장 답사 기간에도 매일 밤 늦게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현장 답사를 통해 막연했던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있는 거문도와 초도의 흔적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답사는 우리 독도체험관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는 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해답을 얻지 못한 문제들은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성과를 만들어 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답사를 마쳤다.
오성일 도감 무덤에서 기념촬영을 한 답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