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null
한국의 설날과 중국의 춘절
  • 장장식 길문화연구소 소장

1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나라이고, 역사적으로 정치문화사적 관계를 긴밀하게 맺어왔다. 구체적으로 유교문화, 한자문화라는 공통의 문화권을 형성해 왔고, 동일 역법을 쓰는 농경문화권이라는 기본 틀을 유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양국은 여러 면에서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민족의 생활방식과 공동체의 사유방식에 따라 문화적 개성 역시 강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명절이다. 양국의 명절은 동일 역법에 기반한 시간 단위의 의미 체계이므로 용어나 틀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명절을 구현하는 실제 양상은 매우 다르고, 의미 역시 같지 않은 것이 많다. 새해의 첫날을 우리나라는 이라 부르고 중국은 춘절(春節)’이라 한다. 두 나라의 새해 첫 명절은 어떤 같고 다름이 있을까?


곡절 많은 설날과 춘절


  한국과 중국의 설은 전통의 태음태양력에서 전통 명절로써 부동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한국에서 설날은 서양력의 도입과 근대화론의 정치적 목적으로 타파해야 하는 구습으로 낙인 찍혀 구정(舊正)’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났다. 설은 구정에서 1985민속의 날로 바뀌었고, 1989년 다시 본래 이름인 을 되찾기까지 105년의 세월이 걸렸다.

  춘절은 원래 원단(元旦), 원진(元辰), 세수(歲首) 등 전통적인 명절 용어가 있었다. 민국 시기 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1914년 민국정부가 음력 원단춘절로 정하기로 한다(拟请定阴历元旦为春节)”라고 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봄을 맞는 명절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7년 국무원은 올해 춘절은 공휴일에서 제외한다(今年春节不放假)”라고 통지했고, “혁명화된 춘절(革命化的春节)을 보낼 것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춘절은 명절에서 제외되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전통문화는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해, 1980년 춘절은 다시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중국 정부는 2006520일 춘절을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1

문화대혁명 시기 ‘혁명화된 춘절을 보내자’라는 구호 앞에서 구습속 파괴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


행위는 비슷하되 다른 뜻을 담은 풍습


  이렇듯 중요한 설 또는 춘절이지만 이에 대한 기본 관념은 서로가 다르다. 설은 기본적으로 새해 새달의 첫날을 뜻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어떤 이는 낯선 날이라는 의미를 읽어내려고 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새해를 맞고 한 살을 더한다는 나이 관념에서 볼 때, “살은 설이고 설은 살이다.” 그러므로 설은 를 뜻하는 말로 풀이해도 무방하다.

  이에 비해 요순(堯舜) 시대에 하늘에 지내던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중국의 춘절은 의미상으로 반은 용이고 반은 사자인 ()’을 쫓아내야 하는 시간 인식에서 수행되는 명절이다. 년은 365일 잠만 자다가 섣달 그믐날에 깨어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을 잡아먹으며, 붉은색과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한다는 신화적 캐릭터를 가진 괴수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여 이러한 년을 쫓아내고 안전한 새해를 맞기 위해 붉은색 글자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린다. 해를 넘기는 과년(過年) 풍습인데, 새해를 맞는 기본 생각이 이처럼 우리와는 다르다.

  설 또는 춘절과 연동된 섣달그믐은 설 만큼이나 중요한 시간 단위이다. 무엇보다도 설날에 세배를 하듯 그믐날에 묵은 세배를 하는 것도 중요한 민속 중 하나다. 그리고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새날을 맞는 수세(守歲)를 반드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를 맞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수세를 한다면 중국은 을 무사히 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자정이 지나면 새해맞이의 무사함을 축하하며 자오쯔를 먹는 것이다. 자오쯔는 한자로 교자(餃子)인데, 교자의 자()24시의 첫째 시를 뜻하는 자시(子時)의 발음이 같아 자오쯔를 먹으면서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교체(交替)의 의미가 있다.

  새해를 맞고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 상하를 막론하고 세배를 나누며 어른이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데, 우리는 복을 나눠준다는 의미로 세뱃돈을 주는 반면 중국은 귀신을 쫓아낸다는 뜻으로 세뱃돈을 건넸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세뱃돈은 벽사의 의미로 달아주었던 화폐 모양의 장식품과 관련이 있는 한나라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붉은 실로 엮은 엽전(葉錢)을 주었고 이를 압세전(壓歲錢)이라 불렀다. ‘()’라는 글자가 재앙이나 빌미를 뜻하는 수()자와 발음이 똑같아서 압세전은 재앙을 누르는 돈이라는 의미로 읽혔다. 결국 세배의 대가로 압세전을 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닥칠지 모를 재앙을 누르려는 뜻이다현대 중국인들은 세뱃돈을 빨간 봉투에 담아서 주는데, 빨간색 역시 축귀의 뜻을 담은 상징이다. 압세전은 세뱃돈을 담은 봉투를 강조해 홍바오(紅包)’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역시 축귀 관념이 담긴 설 풍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 한국에서는 흔치 않지만 전통적으로 문배(門排) 풍습이 재앙을 물리치려는 의도에서 행한 세시풍속이다. 문배는 문에 붙이는 그림을 말하는데, 외부와의 통로인 대문에 특정의 그림이나 글자를 붙여 잡귀를 막으려는 풍습이다. 달리 세화라 부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용호(龍虎) 그림이나 용호 글자를 붙였다. 대문의 좌우에 용과 호랑이를 한 쌍으로 하는 방식으로 붙였는데, 흔히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라 불렀다.

  중국은 이에 비해 더욱 다양한 방식을 취한다. 붉은색 종이에 검은색이나 황금색으로 좋은 의미의 말을 적어서 대문에 붙이는 춘련(春聯)’에서부터 ()’ 자를 붙이고 즐거움과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여러 사물의 현상을 오려 붙이는 전지(剪紙)까지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복() 자는 붉은색의 마름모꼴 종이에 복 자를 써서 대문, , 문미 등에 붙이는 글자 장식이다. 때로는 거꾸로 붙이기도 하는데, 거꾸로 된 복자는 복도(福倒)’를 가리키고 결국 의미상으로 복이 도착하는 복도(福到)가 된다. 일종의 언어유희 형식을 띈 해음(諧音)이다.


1

1933년 1월 17일 『진강쫜(金刚钻)』 잡지의 년수(年獸)


1

중국의 홍바오


1

웃어른께 세배를 한국의 설풍속(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

그릇을 엎으면 그 안의 물이 쏟아지듯, ‘복’이 쏟아지라는 의미로 ‘福’자를 거꾸로 붙인다.


떡국과 자오쯔


  명절마다 특정의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떡국과 중국의 자오쯔는 대표적인 설 명절식이고 세찬(歲饌)이다. 특별한 때에 먹는 음식이니 여타의 음식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음식이다. 한국의 떡국은 쌀로 만든 가래떡을 잘게 썰어 끓인 국인데, 정조 차례는 물론 세찬으로 반드시 쓰이고 있다. 하얗고 긴 모양에서 무병장수를 읽거나 길쭉한 엽전 모양에서 재복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떡국을 먹고 한 살 먹었다는 관행적인 말에서 암시하듯 [태양]’을 뜻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매우 소박한 생각을 담은 명절식이 아닐 수 없다.

  떡국과 대응되는 중국의 세찬은 자오쯔이다. 자오쯔는 교자 또는 중국식 만두로 알려져 있어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다. 현대 중국인들은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가면 반드시 먹는 명절식이지만 명대 이전에는 춘절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자오쯔는 주로 동북, 화북, 서북 등 북부지방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남방은 주로 한해를 풍요롭고 여유 있게 보내라는 의미로 생선을 먹었다, 자오쯔는 이처럼 북방문화에 기반을 둔 음식이라 해도 무방한데, 명대 중기 이후 점차 춘절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춘절 음식이 된 이유는 자오쯔의 형태가 중국 역대의 화폐인 원보(元寶)와 닮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원보와 비슷한 자오쯔를 먹으면 재운(財運)이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춘절이 되면 가족이 모여 함께 자오쯔를 빚으면서 부자가 되기를 빌었다. 결국 풍요와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

한국의 떡국


1

중국의 자오쯔


사람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 또한 사람을 만든다


  일찍이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산은 스스로 물을 나누는 고개(山自分水嶺)”라고 했다. 이 말을 의역하면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화에 빗대어 본다면 경계가 있게 마련이고, 분수계(分水界)에 따라 문화가 다를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역시 이 말을 적용한다면 물을 건너지 못한 산이 많았고 산을 넘지 않은 물도 있었을 것이다. 동일한 역법과 성리학을 적용했던 문화였지만 문화의 분수령을 지닌 채 비슷하면서도 문화적 지향점을 달리해 왔던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삶의 태도가 다른 것이 인간의 특성이고, 문화 역시 인간과 연동되며 상호 지시하고 수정하는 탓이다. 사람이 문화를 만들지만 문화 또한 사람을 만든다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