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을 푸는 날
설에서 정월대보름 사이의 기간은 근신(謹愼)하는 기간이다. 한 해의 시작에 맞추어 경거망동을 해 만약 다치기라도 한다면, 한 해 동안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12일 동안 삼가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열두 띠 날마다 금기를 부여하였다. 가령, 새해 첫 범날[寅日]에는 ‘남과 서로 왕래를 삼가며 특히 여자는 외출을 삼간다’, 뱀날(巳日)은 ‘남녀 모두 머리를 빗거나 깎지 않는다’, 양날(未日)에는 ‘양의 걸음걸이가 방정맞다 하여 어촌에서는 출항을 하지 않는다’, 원숭이날(申日)에는 ‘일손을 쉬고 놀며 특히 칼질을 하지 않는다’, 닭날(酉日)에는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한다’, 개날(戌日)은 ‘일손을 쉬고 논다’ 등의 속신(俗信)을 만들었다.
이런 관념은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편 사금갑(射琴匣)조에서 새해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기에 ‘달도(怛忉)’라고 한다는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근신을 하다가, 그것이 풀리는 정월 보름이 되면 드디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
정월대보름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과 함께 삼원(三元)의 하나다. 이때 ‘원(元)’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보름달은 일 년에 열두 번 떠오르지만, 모든 보름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1월 15일 정월대보름, 6월 15일 유두, 7월 15일 백중, 8월 15일 추석을 중요한 절기로 여겼다. 그런데 이들 보름날은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정월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고, 유두는 논의 물꼬에서 벼가 잘 성장하기를 기원하는 용신제를 지냈다. 백중은 논의 김매기를 끝내고 마을잔치를 벌이며 그간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였다. 추석은 첫 수확한 햇곡식을 가지고서 조상들께 송편 등을 올렸다.
보름 가운데 유독 정월 15일만 ‘대(大)’자를 첨가하여 대보름이라고 불렀다. 정월대보름은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이라서 그 의미를 높게 여긴 것이다. 여기에 대보름 전날인 14일도 ‘소보름’, ‘소망일(少望日)’이라고 해서 작은보름으로 여겼다.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대보름에 먹는 음식으로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이 대표적이다. 오곡은 보통 쌀·보리·조·콩·기장 등을 말하는데, 찰지게 오곡밥을 만들 때는 찹쌀·차수수·차좁쌀·붉은팥·검정콩 등을 넣기도 한다. 즉, 오곡은 특정한 곡식을 가리키는 것보다 모든 곡식을 아우르는 말이다. 오곡밥을 먹는 것은 모든 곡식이 풍년들기를, 아니 올해 이미 풍년이 들었다는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
예전에는 오곡밥을 쌈에 싸서 먹었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하였다. 오곡밥을 쌈으로 싼 모습은 예전에 곡식을 갈무리했던 ‘섬’이라고 부르는 가마니에 곡물을 채운 것과 같다. 복쌈을 먹는 것은 한 해 동안 많은 섬의 곡식을 먹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높이 쌓아서 성주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전한다. 경기도 이천 지역에서는 ‘볏섬만두’라고 큰 만두피에 작은 만두를 넣고 국수로 감아 실제 섬처럼 만들어 먹는다. 볏섬을 먹는 행위 또한 벼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농가의 벼 생산량을 물을 때 “몇섬 지기”냐고 물었고, 그 양에 따라 부유함을 평가하였다.
대보름에는 미리 말려둔 다양한 묵은 나물인 ‘진채(陣菜)’를 먹는다. 시래기, 가지, 호박, 오이, 취나물, 박나물, 버섯, 무, 콩나물 등 나물 수가 아홉 가지에 이르렀는데,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아홉’이라는 숫자인데, 대보름에는 밥을 먹어도 나무를 해도 아홉 번 해야 한 해 동안 기운을 내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수 최고의 수인 ‘9’가 지닌 최고, 충만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풍년을 바라는 풍속
대보름에 행해지는 놀이, 의례, 행위 등 대부분은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저녁에 달구경이 끝나면 아무 이야기가 없어도 주민들은 줄다리기 줄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줄은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숫줄로 만든 후에 남녀 또는 윗·아랫마을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긴다. 이때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장가 가지 않은 총각들이 암줄을 당기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줄다리기의 줄은 ‘용줄’이라고 불러 줄다리기 행위가 마치 잠자는 용을 깨우는 행위로 보인다. 한마디로 용을 깨워 농사에 필요한 비를 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승리한 줄은 잘라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줄다리기(전통문화포털 웹사이트)
우물이나 마당, 외양간 옆에는 짚이나 헝겊 등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싸서 장대에 매달아 둔다. 그것을 ‘볏가릿대’라고 부르고, 한자어로는 화간(禾竿)·화적(禾積)·도간(稻竿)이라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경도잡지』에는 “시골 인가(人家)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속에 벼·기장·피·조 등의 이삭을 싸고, 또 목화의 터진 열매를 장대 끝에 매단다. 이를 집 곁에다 세우고 새끼줄을 펼쳐 고정시킨다. 이것을 ‘화적’이라 하는데, 이로써 풍년을 비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볏가릿대’는 볏단을 차곡차곡 가려서 쌓은 더미인 ‘볏가리(낟가리)’에서 나온 말로, 풍년이 들어 볏가리를 긴 나뭇대(竿) 높이만큼 쌓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볏가릿대는 2월 1일에 내리는데, 섬이나 가마니 같은 것을 가져다 곡물을 넣는 시늉을 하면서 큰소리로 “벼가 몇만 석이요”, “조가 몇천 석이요”, “콩이 몇백 석이요”, “팥이 몇십 석이요” 하고 소리쳐서 마치 많이 수확한 것처럼 한다. 그러면 그해에 풍년이 들어 수확을 많이 거둔다고 한다.
용알뜨기(한국일보)
보름날 새벽에 용이 내려와서 알을 낳고 가는데, 다른 사람보다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해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이것을 ‘용알뜨기(憦龍卵)’라 하였다. 그 밖에 경기, 충청에서는 정월 열나흗 날 지게에 갈퀴·가마니·삼태기·새끼줄·싸리비·도리깨 등 타작을 할 때 필요한 농기구를 얹어 대문 바깥에 놓았다가, 보름날 집안으로 들여온다.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해달라는 의미로, 가을걷이에 주로 쓰이는 농기구를 지게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경상북도 농가에서는 수수깡으로 지게 모형과 벼, 보리, 목화 따위의 농작물을 만들어 두었다가 저녁에 달맞이를 하고 나서 타작하는 시늉을 한다. 실물 대신 수수깡으로 만들었다는 차이뿐이지 상징적인 의미는 같다.
한 해를 점치다
대보름에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점복 행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망월대에 올라 보름달을 구경할 때 달빛이 노란 빛을 띠면 풍년, 붉으면 가물어서 흉년이 될 것으로 보았고, 보름달이 한쪽으로 기운 경우 그 마을이 올해 농사가 잘될 것으로 여겼다.
대보름 밤에는 재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씨를 담은 사발을 지붕 위에 올려놓았는데, 다음 날 아침 날아간 곡식은 흉작, 남은 곡식은 풍작이 된다고 점을 친다. 소보름 밤에는 열두 달을 표시한 콩을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에 넣었다가 대보름날 아침에 콩이 불어난 상태를 보고 그 달의 수해·한해·흉풍·길흉을 점친다. 이것을 ‘달불음(月滋)’, ‘콩점’이라고 한다. 또 동네의 호수대로 호주 표시를 한 콩을 위와 같이 각 가정의 점을 치는 것을 ‘집불이’ 혹은 ‘호불이’라 한다.
오늘날 대보름 풍속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한 해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다가오는 대보름에 가까운 사람들과 오곡밥과 귀밝이술, 부럼깨물기를 하며 올해 개인과 우리 사회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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