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동북아역사재단은 독도아카이브를 통해서 항길고택일기(恒吉古宅日記)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항길고택일기는 강원도 동해시의 강릉김씨 감찰공파에서 대대로 작성해 온 일기 자료로서 울릉도 수토(搜討)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강릉김씨 감찰공파의 세거지, 항길고택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는 대대로 강릉‧삼척‧울진‧평해 일대에 세거해 왔다. 강릉김씨는 고려의 건국에 일조하여 현지 호족(豪族)으로서 강한 입지를 확보했고 다수의 문과 급제자와 관료를 배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타지로 이동하여 계파가 나뉘게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여러 명의 판서와 정승을 배출하여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강릉‧삼척 일대에도 강릉김씨의 여러 계파가 터전을 마련했다.
삼척에 자리 잡은 감찰공파는 김자현(金子鉉, 1404~1501)을 파조(波祖)로 한다. 김자현은 1447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전적과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했고 사헌부 감찰을 거쳐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냈다. 이후 고향인 강릉에서 유학교수(儒學敎授)를 지낸 것을 끝으로 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후학 양성에 주력했다. 김자현은 삼척으로 이주한 뒤 유언에 따라 사후 삼척의 취병산(翠屛山: 현 동해시 소재)에 묻혔고, 그의 후손들은 스스로 삼척파라고 하였다.
소장인이 날인된 김자현의 묘명(재단 소장)
항길고택은 삼척부 용정리(현 동해시 송정동)의 항길장(恒吉庄), 곧 항길댁(恒吉宅)을 이른다. 항길댁은 중종 연간에 건립되어 1937년 훼철되기까지 400년 이상 감찰공파의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해 온 집이다.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북삼화학공장과 삼척철도를 건설할 때 용정리 역시 그 부지로 편입되었고 주민들은 인근 지역으로 이주했다. 항길댁은 현재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데, 이에 따라 항길고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동 지방의 역사를 품고 있는 항길고택문고
2018년 10월, 강릉김씨 감찰공파는 그간 수집, 보관해 온 483책의 고서와 1,070여 건의 고문서를 동북아역사재단에 기증했다. 1961년 작성된 항길문고 도서목록은 총 201항목을 기록해 둔 것이지만, 문고의 실제 규모는 더욱 방대하다. 항길문고는 감찰공파에서 고서와 고문서 일체를 지칭한 용어로 보이는데, 현재 재단은 항길고택문고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483책에 이르는 고서는 김구혁의 『척주선생안』과 『척주절의록』(상‧하), 김종언의 『척주지』(상‧하)와 삼척향교에서 편찬한 『척주지』 및 『진주지』등 삼척 관련 사찬 읍지류, 연도별 족보 등 강릉김씨 관련 자료, 각종 경서‧사서‧시집‧문집, 예서와 의례서, 기타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문서는 호적‧고신‧교지‧입안‧소차‧상언‧명문‧소지‧분재기‧완의‧통문‧토지 및 노비 매매문서 등 총 1,072건에 달한다.
김구혁이 저술한 『척주절의록』(상‧하)(재단 소장)
이렇듯 재단이 기증받은 항길고택문고는 강릉‧삼척‧동해의 역사를 품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강릉김씨의 역사는 물론 강원도 영동 지역의 사회사에 관한 다양한 도서와 문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내용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무엇보다 감찰공파 후손들이 사용해 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울릉도 수토에 관한 현장기록
항길고택문고 고서‧고문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항길고택일기는 특정 책의 제목이 아니라 항길댁에서 120여 년간 작성해 온 12책의 일기류 자료를 총칭한다. 일기라고 하지만 책력(冊曆)의 상단이나 하단의 여백 부분에 일자별로 벌어진 일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결과 일자별로 정리된 기록물이 되었으므로 일기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항길고택일기 구봉광음에 보이는 1859년 4월 울릉도 수토 기사(재단 소장)
12책은 각각 연도별로 작성된 일기를 편철한 형태로 보전되었다. 그 가운데 5책을 제외한 7책은 표지에 면속재광음(免俗齋光陰), 속재거저(俗齋居諸), 구봉광음(九峯光陰), 동우광음(東愚光陰), 정중심반(靜中心伴) 등의 제목이 확인된다. 나머지 5책도 표지에 제목이 있었겠지만, 훼손되어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표지를 제외한 내용은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본문에 작은 글씨로 추가된 메모의 내용까지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항길고택일기에는 울릉도 수토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보인다. 재원으로 쓰일 수토료의 분정‧이속 기록이나, 수토에 나선 선박의 귀환을 확인하는 조치, 수토제를 관장한 삼척영장의 부임이나 울릉도 수토를 시행하는 기록, 수토선의 출발지가 삼척‧평해‧울진으로 다양했다는 점, 정기적 수토 외에도 필요에 따라 울릉도를 불시 점검한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여타의 관찬‧사찬 자료에는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토의 출발지인 동해‧삼척 지역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항길고택일기를 통해서 19세기까지 울릉도 수토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항길고택문고가 다양하게 활용되길 바라며
항길고택문고 자료를 활용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2010년대 초 몇몇 연구자가 울릉도 수토제와 관련하여 항길고택일기를 인용한 것 외에는 지금껏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장 자료 가운데 『척주지』와 『척주선생안』, 『척주절의록』 등이 영인본과 국역본으로 출간되고, 족보와 몇몇 책이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강원도 동해시 강릉김씨 소장 자료’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정도이다. 그밖에 2008년 동해문화원에서 항길고택문고의 고서와 고문서 가운데 371건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해제를 작성하여 책자로 발간하기도 했다.
독도연구소 학술회의, ‘항길고택문고 속 울릉도‧독도 수토의 역사’(2024.8.14. 필자 촬영)
동북아역사재단은 항길고택문고를 이용한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우선 기증 시 작성된 목록을 기반으로 고서와 고문서의 목록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은 2023년에 발간된 『항길고택문고 목록집: 도서 편』이다. 올해는 고문서 일체의 서지사항 및 개별 해제를 정리하여 목록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또한 2024년 8월, 독도연구소는 항길고택문고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학술회의는 항길고택문고를 활용한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재단은 독도아카이브에 항길고택문고의 고서와 고문서를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항길고택일기는 그 첫걸음이다. 2025년에는 주요 고서 및 고문서 전체의 원문 자료 및 해제가 업로드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국민 서비스로 제공된다. 항길고택일기를 비롯한 항길고택문고의 귀중한 자료가 독도아카이브를 통해서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항길고택일기 12책의 해제와 원문 내용은 동북아역사넷 사료라이브러리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주제아카이브를 통해 독도아카이브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우측 상단의 녹색 글씨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독도아카이브를 통해 공개된 항길고택일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