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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ISSUE
일본, 중국, 미국 교과서는 3‧1운동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나
  • 우성민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위원

3·1운동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

  을사늑약 120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세계 각국 교과서에 3·1운동이 어떻게 서술되고 있는지를 재조명하는 일은 매우 뜻깊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을 기점으로 국내외에서 관련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최근에는 다른 나라 교과서에서 3·1운동이 어떤 방식과 시각으로 기술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일본·중국 연구자들은 3·1운동을 반식민 저항운동이나 민족자결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하며 국제적 시각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성과가 각국 교과서에 반영되는 문제는 별개의 과제다. 역사교육은 각국의 역사적 경험, 현재의 정치·사회적 환경, 민족·종교적 배경 등에 따라 서술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역사 교과서에서는 3·1운동 관련 서술이 사라졌으며, 미국 교과서에서는 한국 관련 내용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현저히 적다. 미국 교과서는 3·1운동을 세계사 또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일부로 짧게 다루거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연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일본 교과서는 과거 3·1운동을 축소 서술하거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비교적 객관적인 기술이 증가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는 ‘3·1독립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3·1운동의 성격을 보다 엄중하게 받아들이려는 일본 학계의 노력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여전히 3·1운동의 원인으로 억압적인 식민통치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일부 교과서에서는 ‘폭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다행히 국내 학계에서는 3·1운동을 1919년 전후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조명하며,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등 유럽 각국에서 전개된 민족운동과 비교하는 국제적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민족운동이라는 점, 폭력 없는 저항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 그리고 약소국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가 충분히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3·1운동의 역사적·세계적 의미가 보다 온전히 평가되기 위해서는, 각국 교과서에서 3·1운동이 어떻게 서술되고 있는지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교과서의 3·1운동 서술

  일본은 2018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우리 교육과정에 해당)에 따라 『역사총합』을 신설하였으며, 2021년에 검정을 통과한 7개 출판사의 12종 교과서가 2022년 4월부터 사용되고 있다. 이 과목은 일본사와 세계사의 구분을 없앤 최초의 사례로 일본 학계에서는 획기적인 변화로 평가하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서도 근대사 중심의 필수과목으로 신설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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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적 『역사총합』

 

  특히, 한일 간 역사 인식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주제 중 하나로 3·1운동 관련 서술이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과서 점유율이 높은 야마카와출판사(山川出版社)와 도쿄서적(東京書籍) 『역사총합』의 3‧1운동 관련 서술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야마카와출판사, 『역사총합1』, 동아시아의 민족운동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조선에서는 러시아혁명과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독립 요구가 거세졌다. 1919년 3월 1일, 서울(당시 경성)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3·1독립운동). 조선총독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운동을 진압하였으나, 이 사건의 충격을 받은 하라 다카시 내각은 기존의 강압적 무단통치를 완화하고 헌병제도를 폐지하며 조선인을 지방 관리로 등용하는 등 ‘문화정치’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도쿄서적, 『역사총합1』, 민족운동과 식민지 통치의 변용
일본 통치하의 조선에서는 민족자결주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던 중, 1919년 3월 1일 지식인들이 독립선언을 발표하자, 독립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일본은 이를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였으나, 이후 집회·출판·언론의 제한이 있는 자유를 일부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선 통치방침을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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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출판사, 『역사총합1』, 117쪽

도쿄서적, 『역사총합1』, 106쪽

교과서 이미지

 

 

  국내 학계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역사총합』에서 한국 관련 서술은 오히려 양적으로 축소되었다(서종진, 「일본 고등학교 검정교과서 ‘역사총합’의 식민지기 한국 관련 기술 내용 검토-3・1운동과 관동대지진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76, 2022). 비교적 상세한 기술을 해왔던 도쿄서적 교과서에서도 이러한 감소가 두드러진다. 또한, 야마카와출판사의 경우 3·1운동의 배경이 되는 억압적인 식민통치에 대한 언급 없이, 러시아혁명과 민족자결주의 등 국제적인 요인만을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3·1운동의 결과를 단지 ‘식민지 통치방식의 전환’으로만 서술함으로써 일본의 통치방식이 ‘개선’된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한편, 메이세이샤(明成社) 교과서는 3·1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야마카와출판사는 ‘시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나비샤(学び舎)를 비롯한 일부 역사 교과서에서 3·1운동의 희생자 수를 밝히는 등 긍정적인 개선 사례가 있지만, 3·1운동을 바라보는 일본 학계의 고유한 논점이 일본 교과서에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홍종욱, 「일본 역사 교과서의 3·1운동 서술 분석」, 『역사교육』151, 2019).

 

중국 교과서의 3·1운동 서술

  중국 교육부는 2017년 가을 학기부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여, 2021년 가을부터 초중고 전 학년에 국정 교과서를 적용하였다. 현재 사용 중인 『세계역사』, 『중국역사』, 『중외역사강요』 등에서는 3·1운동에 대한 서술이 확인되지 않으며, 대신 5·4운동의 전개와 의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5·4운동이 마르크스주의의 중국 전파를 촉진하고 중국공산당 창립을 위한 사상적 준비 과정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3·1운동에 대한 서술이 삭제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과거 사용되었던 역사 교과서 중에서는 3·1운동을 다룬 사례가 존재한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 서술이 향후 보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2006년 고등학교 역사 선택과목인 『세계근대현대사』 교과서에서 3·1운동을 어떻게 서술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인민교육출판사, 『세계근대현대사』 하책
제1장: 러시아 10월 사회주의혁명과 민족해방운동의 고조
제2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해방운동
조선(한반도)의 3‧1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합병한 후, 조선에서 잔혹한 식민통치를 실행하였다. 조선 인민들의 반일운동이 끊임없이 고조되었다. 1919년 초 일본에 의해 폐위되고 장기간 감금되었던 전 조선 국왕이 돌연 사망했는데 일본 사람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들은 격분하였다. 3월 1일 몇천 명의 청년 학생들과 수많은 군중들이 각지에서 와서 서울에서 집회를 가졌다. 회의에서 조선 자산계급 민족주의자들 등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잇달아 드높은 기세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며칠 후 시위행진은 무장봉기로 변하였고, 다시 전국적인 반일민족대봉기로 발전하였으며 투쟁에 참가한 사람은 200만 명을 초과하였다. 일본 식민지 당국은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하였다. 그해 하반기에 이르러 봉기는 기본적으로 중지되었다. 이번 민족운동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조선 인민들의 투쟁정신을 구현하였으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힘 있게 타격하였다.

조선 인민들의 투쟁은 중국 인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3‧1운동이 폭발한 후 리다자오(李大釗)가 주관한 『신청년』 등 간행물에서 몇십 편에 달하는 보도와 글을 발표하여 조선에서의 일본 식민통치를 규탄하고, 조선 인민의 반일투쟁을 지지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파리평화회의에 출석한 중국 대표에게 전보를 보내어, 그들이 조선 독립 승인에 대한 요구를 제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1919년 4월 조선의 애국자들은 중국의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조선 인민들의 반일민족대봉기를 전후하여 조선의 많은 애국지사들은 중국의 동북에 와서 근거지를 창설하고 장기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은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 가운데 더욱 긴밀하게 단결하였다.

  중국 교과서는 3·1운동을 항일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서술하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을 강조한다. 특히 이를 ‘반제국주의운동’의 맥락에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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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교육출판사, 『세계근대현대사』(상, 하)

 

 

  또한, 3·1운동 이후 시위행진이 무장봉기로 변했으며, 투쟁에 참가한 인원이 200만 명을 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일본 교과서에서 ‘민중’, ‘많은 사람’ 또는 ‘110만 명’으로 서술한 사례와 대비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교과서는 3·1운동을 중국과 조선의 반일공동전선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해 왔는데, 왜 최근 국정 교과서에서는 3.1운동 서술이 삭제되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 교과서의 3·1운동 서술

  미국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교과서 제도가 없으며, 민간 출판사가 발행한 도서를 주 교육부에서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교과서로 승인한 후, 승인된 목록을 제시하면 각 학교가 그 범위 내에서 교과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와 같은 이른바 ‘Big-Four States’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교과서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을 대비해 수강하는 AP(Advanced Placement) 과목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교과서 중 World History: Modern(1200-Present)를 대상으로, Perfection Learning의 2022년판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World History: Modern(1200-Present), Perfection Learning, 2022
한국, 중국, 일본은 유럽에 의해 공식적으로 식민지화되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지배에 시달렸다. 동아시아 삼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결권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는 1890년대부터 증가하는 일본의 영향 아래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중동에서 유럽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이 확대하기를 기대했다. 더 강한 일본에 대한 유럽의 지지와 한국 황제의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919년 3월 1일 1,7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2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일련의 시위를 시작했다. 일본 점령군은 이들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수천 명의 한국인이 사살되었으나 3‧1운동은 한국 민족주의의 힘을 보여주었다(조영헌, 「미국 AP 역사 교과서의 동아시아사 서술과 인식」, 『내부자료-동북아역사재단 기획연구 최종보고서-해외 주요국 세계사 교과서의 동아시아사 서술 비교 분석』, 2023).

  미국 교과서는 3‧1운동을 민족자결권과 국제정세 속에서 해석하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강하게 비판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등 한국 독립운동의 연속성에 대한 언급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한편 1,700만 인구 중 200만 명이 참여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거나 일본군의 가혹한 진압과 수천 명의 희생을 강조하는 등 3‧1운동이 한국 민족주의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 서술은 일본 교과서와 중국 교과서에 비해 고무적이다.

  또한, 3.1운동을 동아시아 및 세계사적 맥락에서 다루고 있으며, 3‧1운동의 원인으로 ‘일본의 강압적 통치’뿐만 아니라 ‘유럽 열강의 지원을 받은 일본의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 등을 강조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3‧1운동의 평화적 저항과 비폭력적인 성격보다는 독립운동의 시작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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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 Modern(1200-Present), Perfection Learning, 2022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3·1운동과 국제적 인식 확산을 위한 제언

  앞에서 각국 교과서 서술 비교를 통해 3·1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방식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은 당시 세계질서 속에서 피압박 민족들이 독립을 외친 운동으로서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3.1운동을 반제국주의 및 민족자결운동의 중요한 사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국제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공동의 역사 인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류’의 확산과 함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각국 교과서에서 한국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3·1운동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번역·소개하고, 국제 학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각국 교육 당국과 협력하여 해당 국가의 역사 교과서 서술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보다 정확하고 균형 있게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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