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Sovereignty over Dokdo 출판-
일본의 독도침탈 120년과 현재진행형인 일제식민주의의 왜곡
올해는 일본으로부터 침탈당한 한국의 주권을 되찾은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간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한국 영토주권의 상징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 도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발신해온 일본 ‘죽도문제연구회’는 한국의 독도주권을 인정했던 메이지 정부의 1877년 태정관지령을 폄훼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영토주권전시관은 현재 100억 원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의 동향에는 2025년이 일본의 독도침탈 120년이자, 앞서 100년이 되던 지난 2005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일본 시마네현의 ‘죽도(竹島)의 날’ 제정 20년이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더욱이 1905년 일본제국주의 침략노선에 입각한 일본의 독도주권 침탈 시도가 120년이 경과한 현시점까지도 공공연히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축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노정한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신간 『한국의 독도주권(Korea’s Sovereignty over Dokdo)』에서는 일본 정부가 국제법을 동원하여 제기하는 독도영유권 주장의 국제법 법리 왜곡의 본질적 문제점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 주장의 정책적 토대를 구축해온 일본국제법학회의 국제법 권원 연구에 내재된 일제식민주의와, 1943년 한국의 독립을 최초 선포한 카이로선언에서 천명한 ‘폭력과 탐욕(violence and greed)’이 본질적 실체로서 일치할 뿐만 아니라 국제법 법리 왜곡으로 귀결되는 문제점을 추적하여 규명하고 있다.
Korea’s Sovereignty over Dokdo 표지
일본국제법학회 독도 권원 연구의 국제법 법리 왜곡 규명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9월 8일 체결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 4월 28일에 앞서, 한국 정부가 독도주권 수호를 위해 1952년 1월 18일 선포한 평화선선언(Peace Line Declaration)이 그 기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1953년부터 4회에 걸쳐 한국 정부에 구상서를 제시한다. 주목할 것은 3회차까지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하던 일본 정부가 1962년 4회차에서 ‘고유영토론’을 제기한 점이다.
1962년에 제기된 ‘고유영토론’과 1905년 ‘무주지 선점론’의 상충
일본 정부는 1905년 독도침탈 당시 주장한 무주지 선점론의 국제법상 흠결로 인해 1962년 한국 정부에 제출한 구상서를 통해 17세기 고유영토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했으나, 양자 간의 상충으로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원용하는 시계열상의 오류와 시제법(intertemporal law)상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1962년에서야 일본 정부가 제기한 17세기 고유영토론은 1693년 안용복 피랍 이래 시작된 울릉도쟁계 이후 에도막부의 1696년 도해금지령과 메이지정부의 1877년 태정관지령에 의해 역사적 권원으로 정립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7세기 고유영토론과 1905년 무주지 선점론은 상충하는데, 독도가 17세기부터 일본의 고유영토라면 1905년에 무주지로 선점할 필요가 없고, 역으로 일본이 1905년 독도를 무주지로 선점하였다면 17세기부터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일본국제법학회는 17세기부터 일본의 역사적 권원인 고유영토에 대해 현대국제법의 요청에 따라 대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권원 대체는 국제법 법리상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이 역사적 권원에 기초하여 영유하는 도서를 선점과 같은 다른 권원으로 대체한 선례도 없는 점에서 국제법 법리상 타당성이 없다.
한편, 양자 간 상충으로 일본이 원용하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냉전의 대두로 징벌에서 반공으로 조약의 기조가 전환되는 지점을 활용하여 미국 정치고문 시볼드(W. J. Sebald)를 동원한 일본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제6차 미국 초안에서 유일하게 독도가 일본령으로 표기된 후 조약문에서 생략됨으로써 결국 실패로 종결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120년 전과 동일하게 일본 정부가 제기하는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책적 토대를 구축해온 일본국제법학회가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국제법 법리 왜곡에 대해 주목한다. 1905년 독도침탈 전후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국가실행은 1897년 세계 1호로 설립된 일본국제법학회를 동원하여 대외정책에서 국제법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국제법학회가 주도한 일제식민주의 침략정책의 토대 구축
일본국제법학회는 단순히 사후적으로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정당화하거나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정책을 사전적으로 개발하고 실현을 촉구하며 왜곡된 국제법 법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1902년 2월부터 발간된 일본국제법학회의 학술지인 ‘국제법잡지’에는 특히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 중립선언’의 사전 효력부정을 기점으로 1910년 8월 강제병합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을 주도하는 다수의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
더욱이 일본 정부가 일본국제법학회와 연계하여 은폐해 온 ‘외무성 임시취조위원회’는 1904년 3월에서 1906년 2월까지 일제식민주의에 입각한 침략정책을 법리적으로 구축한 기구로, 존속기간이 정확히 독도침탈과 을사늑약 강제 시기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동 소속 위원들은 후속 강제병합론까지 주도했다. 특히 소속 대표위원으로서 유일하게 책무완수를 비롯해 1943년 사망 시까지 외무성 고문으로 활동한 다치 사쿠타로(立作太郎)의 국제법 법리 왜곡을 규명하는 것은 긴요한 과제이다.
다치 사쿠타로는 유럽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취득 방식과 무주지 선점론을 접목하고 요건상의 통고의무 배제 및 실효적 지배의 강조를 통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왜곡된 법리 구축을 비롯하여,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일본형 법실증주의에 입각하여 가혹한 식민지화의 토대 구축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독도침탈을 시작으로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의 합법화에 내재된 일제식민주의의 전형적인 국제법 법리의 왜곡에 다름아닌 것이다.
한국의 독도 영토주권은 동북아평화공동체의 출발이자 미래
1905년 이래 120년간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침탈에 내재된 일제식민주의와, 다치 사쿠타로를 필두로 한 일본국제법학회의 역사적 진실과 국제법 법리에 대한 왜곡의 규명과 공유를 통해, 동북아평화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진정한 역사적·국제법적 책무의 수행을 다시 한번 촉구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이 21세기 동북아평화공동체의 토대 구축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한국의 독도주권과 일제식민주의의 국제법 법리 왜곡 규명'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