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말살정책(韓民族抹殺政策)의 전주곡(前奏曲)
  • 작성일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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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두글은 연관성이 있는 글로서 두양반이 너무나도 유명한분의 글입니다. 무엇으로 유명한지는 적기하지 않겠습니다.



사이토 마코토(齌藤實) 3대 朝鮮總督 1919년8월12일 부임 一聲

1.먼저 朝鮮(조선) 사람들이 自身(자신)의 일, 歷史(역사), 傳統(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民族魂(민족혼), 民族文化(민족문화)를 喪失(상실)하게 하고,

2.그들의 祖上(조상)과 先人(선인)들의 無位(무위), 無能(무능), 惡行(악행)을 들춰내어 그것을 誇張(과장)하여 朝鮮人(조선인) 後孫(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朝鮮人(조선인) 靑少年(청소년)들이 그 父祖(부조)들을 輕視(경시)하고 蔑視(멸시)하는 感情(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3.그 결과 朝鮮(조선)의 靑少年(청소년)들이 自國(자국)의 모든 人物(인물)과 史蹟(사적)에 관하여 否定的(부정적)인 知識(직식)을 얻어, 반드시 失望(실망)과 虛無感(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4.그 때에 日本史蹟(일본사적), 日本人物(일본인물), 日本文化(일본문화)를 紹介(소개)하면 그 同化(동화)의 效果(효과)가 至大(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帝國日本(제국일본)이 朝鮮人(조선인)을 半日本人(반일본인)으로 만드는 了結(요결)인 것이다.





元老 歷史學者의 眞實한 告白

1989년에 작고한 그는 韓國歷史學의 태두(泰斗)待遇(대우)를 받았으며 그는 살아 生前 한국의 歷史學界(역사학계)에 미친 영향은 너무도 컷기 때문에 그의 말이 시사(示唆) 하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지난날의 자신(自身)의 역사서술(歷史敍述)에 대하여 진실(眞實)을 고백(告白)한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말년(末年)에 남긴 유언(遺言)비슷한 회고록(回顧錄)의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歷史)는 전쟁(戰爭)과 외부세력(外部勢力)의 강요(强要) 그리고 내부(內部)의 잘못된 사고(思考)를 가진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의 편견(偏見),폭력(暴力)과 독재(獨裁)로 권력(權力)을 탈취(奪取)한 자들이 자신(自身)들의 잘못을 미화(美化)하고 합리화(合理化)시키기 위한 속임수 등으로 잘못 꾸며지고 본질(本質)에서 벗어난 바가 적지 않다.
게다가 근․현대(近․現代)의 제국주의(帝國主義) 열도인(列島人)이 한반도를 식민지화(植民地化)한 이후 한민족말살정책(韓民族抹殺政策)의 일환(一環)으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歷史)를 거짓으로 꾸며 강제(强制)로 교육(敎育)시켜서 유구(遺構)한 한민족(韓民族)의 상고사(上古史)를 절반을 잘라내고 방대(尨大)한 한민족(韓民族) 역사 무대의 강역(疆域)을 왜소(矮小)하게 축소(縮小)하는 등 「이 지구상(地球上)에 한번도 있지 않았던 행위(行爲)」를 하여 지금에 와 있는 것이다.
이제 잘라지고, 빼앗기고, 잃어버린 수천 년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시대(歷史時代)를 찾고, 반도(半島)에 축소(縮小)된 한민족(韓民族) 역사무대(歷史舞臺) 지역인 原來(원래)의 자리를 회복(回復)하여 왜곡(歪曲)된 한민족(韓民族)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원래부터 미개(未開)하고 무능(無能)한 종족(種族)이라고 대외적(對外的)으로 선전(宣傳)되어지고 있는 모멸(侮蔑)과 오욕(汚辱)을 면해야 할 책임(責任)이 한민족(韓民族)에게 남겨져 있다.」


위의 두글에의 결과는 현재진행형으로 보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한번도 있지 않았던 행위가 무엇일까요. 이 답에는 너무나도 많은 답이 있기에 생략합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왜곡 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잘려나가고 첨삭된 우리의 삼국사만 제대로 재해석하면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