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용수비대 진위 논란, 국제법상 독도영유권 지위 ''빨간등''
정부 수호노력 전면부정... 국제법상 독도영유권 주장 근거 약화
[폴리뉴스 김인아 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09-11-27 14:47:38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회장 이병석 한나라당의원)가 지난 26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독도의용수비대의 역사적 의의와 국토수호 정신계승> 학술대회를 개최한 후,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에 대한 진위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독도특위 한나라당 간사이자 한나라당 독도 등 우리땅 우리역사 지키기 특위 위원장인 이병석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에서 주장하는 수비대 활동 내용으로 인해 ''국제법상''의 한국의 영유권 주장 근거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
문제의 핵심은 민간단체인 독도의용수비대는 실제 단 8개월만 수호해놓고도 정부가 수호노력을 하지 않아 53년 4월부터 56년 12월까지 3년8개월간 독도를 민간차원에서만 수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은 물론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독도수호노력은 줄곧 계속되어왔다.
정부차원(경북도청, 경북도 경찰청 등)에서는 ''독도경비대''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고, 독도의용수비대에도 무기, 식량 등을 적극 지원해오고 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가 정부의 이와같은 독도수호 노력을 전면 부정하며, 정부가 수호하지 않아 민간단체가 자율적으로 수호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문제. 국제법상 정부의 영유권 수호노력이 없이는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순칠씨는 독도 수호의 공로로 1996년 추서된 보국훈장 삼일장의 추서되었다.
의용수비대 활동 진위문제를 가장 강력히 제기하는 단체는 또다른 민간단체 <독도수호대>다.
최초의 독도상주 경비,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20일에 설립돼 1956년 12월까지 3년8개월간 33명이 참여해 활동한 민간 의용수비대로서, 독도의 경비,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격퇴, 독도 동도 암벽 ‘한국령’ 표시 조각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6․25 전쟁 혼란으로 일본인의 독도 침탈 행위가 잦자 일본의 독도 소유권을 차단하고 울릉도 주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됐다.
이후 1956년 12월 30일 무기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갈 때까지 1953년 6월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귀향조치, 같은 해 7월 일본 순시선 격퇴 등의 공적을 세웠다는 것이 기존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측의 주장이다.
특히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적용된 제6차 사회과탐구 교과서에는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내용이 실렸며, 활동 기간과 인원 관련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약 4년간 33명의 대원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명시돼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연구 결과, 수비대장 홍순칠의 진술을 위주로 정립된 독도의용수비대 관련 기록은 활동기간과 활동인원 등에 있어 사실과는 크게 다른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 의문, “활동기간이 3년 8개월인가, 8개월인가?”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는 지난 24일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언론보도 등으로 볼 때,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기간이 당시 제3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1954년 5월부터, 1954년 12월 31일 대원 중 9명이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된 후 해산된 기간으로 총 8개월"이라고 주장한다.
1954년 울릉도 주민 궐기 대회를 통해 민간자위대 결성을 결의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민간 자위대 결성에 있어서 무엇보다 백두진 당시 총리가 울릉군과 울릉경찰서 측에서 식량과 무기, 통신병 등을 지원을 지시해, 수비대 결성에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정부의 독도수호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지원 사실에 대해 홍순칠 의용수비대장은 부인하고 있다는 것.
홍순칠은 독도의용수비대 1진이 출발한 시기가 1953년 4월이라고 주장했으나 병무청 병적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기록된 대원 다수가 한국전쟁 참전 중이었다. 이와 함께 외무부 자료에 따르면 독도의용수비대의 공적으로 알려진 1953년 헤쿠라호 사건 역시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이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의문, “활동인원이 33명인가, 17명인가?”
또 의용수비대 대원들에 대해서도 ''허위명단''으로 의심가는 부분이 있다고 김점구 대표는 지적한다.
또한 실제 활동 인원 역시 33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홍순칠이 기록한 후방지원대나 교육대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으며, 33인 명단을 보면 ''미역 채취''에 동참했던 재향군인회 회원이 다수로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1978년 경상북도 경찰국 울릉도 현지 조사자료에서도 홍순칠씨의 부인 박영희, 유원식, 한상룡, 김병렬, 정재득 등 6인이 수비대로서 활약한 사실이 없다고 서술됐다.
1978년 조사에 언급된 6인은 현재 생존하는 수비대원들이 허위 보고로 추정되는 10여인 안에 전원 포함돼 있어, 생존 수비대원들의 진술에 무게를 실어준다.
또한 일부 대원들은 33인 명단 중 한 명인 홍순칠씨 부인 박영희씨가 의용대원 군복 빨래, 수선 등을 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홍순칠씨 개인적인 지인들이 33인 명단에 허위 포함됐을 수도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점구 대표는 국가보훈처 등 관련 정부 기관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훈처는 2007년 감사원의 공적 재조사 결정이 난 후,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국가보훈처의 이전 조사대로 33인 모두 대원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홍순칠에게 1996년 추서된 보국훈장 삼일장의 추서 과정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이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명명백백히 밝히기 쉽지 않은 입장이다.
독도의 국제법상 지위 하락을 자초할 수도...
이번 논란은 홍순칠 수기로 인해 한국 정부의 독도 영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홍순칠이 기록한 내용에는 독도 수호에 있어 한국정부의 역할과 의지에 대해 매우 미미하게 평가하거나 또는 전면 부정하고 있어 ‘주권국가의 영유의지와 이를 위한 조치’를 기준으로 보는 국제법상 한국정부가 영유의지가 없고 주권행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독도에 대한 한국의 국제법상 지위가 하락하게 되는 것.
2001년 발간된 경북경찰사 역시 기존 독도의용수비대 기록(홍순칠 수기)이 독도 지배권 문제에서 일본에게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1953년 5월부터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앞세워 영유권을 주장해온 데 반해, 한국 정부가 당시 독도 영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민간 의용대가 중심이 됐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편,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경북 포항 3선) 측은 27일 <폴리뉴스>와 통화에서“내용은 잘 알고 있지만 국회 관련법이 논의될 때 (그러한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부의 독도수호 노력을 전면 배제한 채 민간만의 의용수비대'' 활동을 정치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독도영유권 지위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한국의 독도 경비의 역사 발굴 필요
당시 한국정부가 독도 수호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독도에 대해 한국 경찰력이 미치고 있었다는 독도 경비의 역사 발굴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은 공교롭게도 이병석 의원과 같은당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다.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지난 2008년 경찰청 국정감사를 통해 “경찰의 독도경비 역사 발굴을 강화해야 한다”며, 1954년 12월 31일에 독도 의용수비대원 일부가 특채로 뽑힌 사실 등을 밝혔다.
또한 경찰 대학 역시 독도의용수비대가 경찰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독도를 경비했다는 기존 기록들과는 다르게 “1953년 7월 울릉경찰서 순라반을 독도에 보내 침범한 일본 선박을 격퇴하고 1954년 8월부터 상주시켰다는 사료가 있다”고 강변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는 27일 <폴리뉴스>와 통화에서“수비대 생존 당사자까지도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진실을 밝혀 한국 정부의 독도경비사를 재정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생존자들은 활동기간이 3년8개월에서 8개월로 줄어 공적이 줄어들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죽기 전에 꼭 해결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대표는 “진실을 밝히고 진정 독도를 한국 국토로 지키는 것이 바로 당시 활동했던 독도의용수비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