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역사
  • 작성일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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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19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인접해양에 관한 주권선언 발표와 함께 독도를

우리나라 영역내 포함시키는데 이에 일본은 인정할 수 없는 외교문서를 통보해 옵니다.

이로써 처음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작이 되며, 그 시대 당시에는 정말 일본은 독도에 대해 뺏으려고 했지만 현재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일본이 독도를 빼았을수 있는 확률은 5% 정도)



1현재의 독도상황

일본의 후쿠다 총리가 일본 역사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표기하는것을 강행한다고 밝혀서

또다시 독도 영유권문제가 사회적으로 붉어지고 있다는걸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개최하는 정상회담 불참등 일본에 협력하는 여러 사업등에 대해 불참 및 고려를 하고 있으며,

강경한 대응을 보일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이지스함등 대형 군함등을 독도와 가까운

자국 영토에 배치하여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훈련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가절약등을 이유로

독도 관련한 훈련을 감축하는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2. 세계는 독도를 누구땅이라고 더많이 알고잇나?

일본은 예전부터 최후의 독도 분쟁을 준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인사들(영토 분쟁이 국제적 심판시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들)에게 끈임없이 로비를 펼치고 있었어인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임이 분명한대도

일본의 땅으로 인식하는 세계인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작은 나라의 조그마한 섬에 관심가지는 사람들이 많치 않은만큼 우리도 국제적으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인식시켜야할 때입니다.



3. 독도가 우리땅인근거와 우리땅이 있다는 옛날문헌

삼국사기(지증왕 본기)에 지증왕13년(512)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를 복속한 이래 우리나라의 고유영토가 되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와있는데 독도가 우산국 영역임을 밝혔고 고려 고종 때 최우가 우산국에 사민정책을 실시했으나 실패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3번째 줄에는 강원도 울진현 조에는 울릉도와 별도로 독도의 존재를 형제섬으로 처음 기록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외 성종실록에는 독도의 지형묘사,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은주시청합기(일본에서 기록한 사서) 증보문헌비고, 만기요람의(군정편), 통항일람등을 살펴볼때 기록으로는 우리나라땅임이 분명합니다. 지리적으로도 울릉도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져 있고 일본의 오끼섬에서는 북서쪽으로 157.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 땅임이 분명하구요,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은 허구성과 모순이 다분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이 다분합니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는 일본이 탈취하거나 점령한 모든 태평양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박탈한다고 하여 영유권의 원상회복이 분명히 이루어 졌으며, 2차대전 직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심판결정인 지령 제677호, 제1033호를 살펴보면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에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4.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우기는근거와 이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는 바로 무주지(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점령하지 않은 땅) 선점을 근거로 지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역사문헌이나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문헌, 또는 프랑스에 보존된 문헌등에 따르면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이 확실하게 기재되어 있으며, 일본이 어떠한 근거를 제시해도 진실을 가릴수는 없을 것입니다.



독도엔 풍부한 해양자원과 최근에는 독도 근해에서 연료를 대체할수 있는 광물이 나오는등, 지형적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문헌에 대해서 일본이 반박하는 이유는?

삼국사기 지증왕 본기의 내용인 삼국사기(지증왕 본기)에 지증왕13년(512)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를 복속한 이래 우리나라의 고유영토가 되었다고 했으며 - 이부분에서는 울릉도 주변에는 잔섬이 많고 또 울릉도라는 섬만 점령한 것이다라고 반박하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3번째 줄에는 강원도 울진현 조에는 울릉도와 별도로 독도의 존재를 형제섬으로 처음 기록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이부분은 독도와 울릉도에 대해 구분만 했지 조선땅이라고 확실한 기록이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 이 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거꾸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여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도와 관련된 중요한 사료들을 부인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일본은 일본 자체에서 쓴 역사서에 독도는 한국땅임을 전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내 독도관련한 증거물들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 논쟁을 펼쳐도 한국사람들의 공격에 대해 논리적이고 그럴싸하게 답변은 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확실한 주장을 펼칠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시네마현에 독도를 편입시킨것은 1905년이고 우리나라는 1900년 고종황제 칙령 41조에 의해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하여 세계에 공포했기 때문에 무주지 점령에 대한

근거는 일본측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광복직전 카이로선언(1943)에서는 "일본이 탈취한 모든 태평양섬들을 일본으로부터 박탈한다" 는

내용에 의거하여 독도의 영유권 회복이 이루어졌음에도 일본측에서 당시 독도는 반환사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생억지나 다름없는 것이고, 아직도 한반도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겪었던 고통과 희생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하는 행동들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도 일제 침략시기에 우리나라를 팔아먹었고 (가쓰라 테프트 밀약)

영국도 마찬가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국제 정세는 힘의 강 약에 따라 흐르기때문에 독도를

지키는 확실한 방법은 우리세대들이 과거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알고 미래에 대한 경쟁력과

힘을 길르서 대한민국이 더 강할때는 일본도, 외국도 아무소리도 안한다는것입니다.



삼국사기(지증왕 본기)에 지증왕13년(512)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를 복속한 이래 우리나라의 고유영토가 되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와있는데 독도가 우산국 영역임을 밝혔고 고려 고종 때 최우가 우산국에 사민정책을 실시했으나 실패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3번째 줄에는 강원도 울진현 조에는 울릉도와 별도로 독도의 존재를 형제섬으로 처음 기록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외 성종실록에는 독도의 지형묘사,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은주시청합기(일본에서 기록한 사서) 증보문헌비고, 만기요람의(군정편), 통항일람등을 살펴볼때 기록으로는 우리나라땅임이 분명합니다. 지리적으로도 울릉도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져 있고 일본의 오끼섬에서는 북서쪽으로 157.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 땅임이 분명하구요,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은 허구성과 모순이 다분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이 다분합니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는 일본이 탈취하거나 점령한 모든 태평양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박탈한다고 하여 영유권의 원상회복이 분명히 이루어 졌으며, 2차대전 직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심판결정인 지령 제677호, 제1033호를 살펴보면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에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추서; 현재 미국에서 미주권지역이라고 명칭했던 "리앙쿠르암"은 프랑스 사람 이름입니다.

고래 잡이 하다가독도보고 스케치해서 기록으로 남겼다고전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