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비의 己亥年 記事
  • 작성일201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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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기사 원문과 일본학자 및 국내의 작은 학자들의 해석을 보자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內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于城池 以奴客爲民歸王 請命” 太王喜而稱其忠 卽時遣使還告以密計"

광개토태왕 즉위 9년 己亥年에 백제가 고구려와의 맹세를 어기고 왜와 내통했다. 태왕께서 평양으로 순행하시어 내려오셨다. 그런데 이때 신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태왕께 아뢰기를 “왜인들이 그들(백제)의 국경에 가득 차 있었는데 (우리 신라가)그들을 성지(城池)에서 潰滅시켰더니 왜인들이 노객 신분으로 우리 백성이 되어 대왕께 귀의하고자 하기에 이렇게 태왕의 분부를 청하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우리 태왕께서는 기뻐하시며 그(신라)의 충성을 칭찬하고 곧바로 사신을 돌려보내 태왕의 밀계를 고하게 했다.

이렇게 문장을 정리하여 해석하면 문리나 내용 모두 어색하지 않다. 나는 복원한 원문과 원문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바른 해석이라고 믿는다. 물론 碑가 磨耗(마모)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의 자리의 글자가 정말 그런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판독 가능한 ‘其忠’‘遣使還告以’등의 글자와 聯關(연관)지어 전체 문장을 類推(유추)해 보면 앞서 提示(제시)한 것이 原來(원래)의 碑文(비문)에 가장 近接(근접)한 原文(원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根據(근거)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가? 이제 문장을 한 부분씩 分析(분석)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광개토태왕 즉위 9년 기해년에 백제가 고구려와의 맹세를 어기고 왜와 내통했다. 광개토태왕이 남으로 순행하여 평양에 내려왔다(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內通 王巡下平穰)’까지는 解釋(해석)상의 異見(이견)이 별로 없을것이다. 다음 句節(구절)인 ‘而新羅遣使白王云’에 대한 解釋(해석)도 큰 問題(문제)가 없다.‘而’는 ‘그런데’ 라는 의미의 接續詞(접속사)고''遣‘은 보내다, 派遣(파견)하다’라는 뜻이며, ‘白’은 ‘아뢰다’라는 뜻이다. ‘云’은 ‘말하다’로 새긴다. 그러므로 이 句節(구절)은 ‘그런데 이때 新羅(신라)가 使臣(사신)을 派遣(파견)하여 太王(태왕)께 아뢰어 말하기를’이라고 解釋(해석)하면 된다.
문제는 다음 句節(구절)부터다. 앞 句節(구절)이 ‘태왕께 아뢰어 말하기를’이라고 끝냈으니 다음 句節(구절)은 반드시 따옴표 안에 들어가야 할 直接話法上(직접화법상)의 引用文(인용문), 즉 실제로 직접 한 말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直接話法上(직접화법상)의 話者(화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新羅(신라) 使臣(사신)이다. 그런데 이 己亥(기해)年(년) 記事(기사)의 첫 部分(부분)에 ‘百濟(백제)가 高句麗(고구려)와의 맹세를 어기고 倭(왜)와 內通(내통)했다’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이 말을 쓴 까닭은 接續詞(접두사) ‘而(그런데)’뒤의 文章(문장)에서 이 말의 意味(의미)를 받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라 사신이 ‘百濟(백제)가 倭(왜)와 內通(내통)한 일’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 사실을 앞에서 그래서 ‘왜인이 그들의 국경에 가득 찼다’는 뜻의 ‘倭人滿其國境(왜인만기국경)’이라는 문장이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其國境(기국경)’에서 ‘其(기)’는 누구를 指稱(지칭)하는가? 文法的(문법적)으로 ‘其’는 앞에 나온 사람이나 물건을 받는 3인칭 指示代名詞(지시대명사)다. 따라서 이 ‘其’는 앞에서 언급한 나라인 百濟(백제)를 받는다. 百濟(백제)가 倭(왜)와 內通(내통)한 결과 倭人(왜인)이 지금


百濟(백제)와 合同作戰(합동작전)을 하기 위해 百濟(백제)의 國境地帶(국경지대)에 가득 몰려와 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는 서로 接境(접경)하여 겨루고 있었으니 百濟의 國境은 新羅의 國境이기도 했다. 大部分의 硏究者들, 특히 日本의 學者들은 이 ‘其’를 신라라고 해석하여 倭가 直接 新羅를 치기 위해 신라의 邊境에 들이닥친 것으로 풀이하지만, ‘其’는 결코 신라일 수 없다. 일본측의 해석은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其’는 三人稱(삼인칭) 代名詞(대명사)인데 直接話法(직접화법)의 話者(화자)인 新羅(신라) 使臣(사신)이 자기 나라를 어떻게 ‘그’라는 三人稱 代名詞로 表現할 수 있겠는가?
倭人들이 그들 百濟의 國境에 가득 集結해 있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나라인 新羅를 치려 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新羅 使臣은 태왕에게 “倭가 그들 백제의 국경에 가득하다”라고 아뢴 것이다. 이어서 신라의 사신은 “그렇게 집결해 있는 왜인을 성지에서 궤멸시켰다”라고 말한다. ‘潰于城池’가 바로 그런 뜻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潰(궤)’와 ‘城池(성지)’라는 두 말은 너무도 궁합이 잘 맞는다.

‘潰(궤)’는 ‘堤防(제방) 따위가 무너져 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뒤에 오는 ‘池’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이다. 또 ‘敗戰(패전)하여 진이 무너짐으로써 군사들이 도망간다’는 뜻도 있다. 물론 이 두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는 글자이기도 하다.

‘潰(궤)’에 이미 ‘패하다’‘깨부서지다 ’‘물벼락을 맞아 무너져 내리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얘기다. 굳이 뒤에 ‘부수다’는 의미의 ‘破(파)’자를 덧붙여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破(파)’자는 原來(원래) 碑文(비문)에 없었으며, 누군가에 의해 變造(변조)된 것으로 疑心(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뒤에 ‘城池(성지)’의 ‘池(지)’자가 있기 때문에 ‘물수 변(氵)이 붙은 ‘潰‘자만으로도 ‘성의 연못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듯 무너져 패했다’거나‘성의 연못에 빠져 무너졌다’는 식으로 연못에서 패했다는 뜻이 分明(분명)하게 傳達(전달)된다. 따라서 ‘破’자를 덧붙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문장의 뜻을 분명히 하려면 ‘...에서’라는 의미의 助詞인 ‘于’를 넣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뒤에 장소를 나타내는 ‘城池’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潰破城池(궤파성지)’라고 하는 것보다는 ‘潰于城池(궤우성지)’라고 해야 文理에 맞는 文章(문장)이 되는 것이다. ‘潰破城池(궤파성지)’라고 하면 ‘城池(성지)를 무너뜨렸다’는 뜻인데, 戰爭(전쟁) 結果(결과)를 記錄(기록)하면서 설령 성 안에 연못이 있거나 성을 둘러싼 垓子(水城)가 있었다 하더라도 연못이나 해자는 성의 附屬物(부속물)에 불과하므로 그냥‘성을 무너뜨렸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성지를 무너뜨렸다’라고 기록할 이유가 없다. ‘潰于城池(궤우성지)’라고 할 때만 ‘城’에 ‘池’를 덧붙인 이유가 분명해진다. ‘城池’에서라야 ‘潰’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앞 문장에 ‘滿’자를 써서 왜가 가득했다는 표현을 했으니 그 득실거리는 왜인을 유인 전법으로 성지에 몰아넣어 ‘潰滅(궤멸)’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倭人滿其國境(왜인만기국경’을 ‘倭人(왜인)이 新羅(신라)의 國境(국경) 안에 가득 할 정도로 들어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얼핏 그럴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사실 ‘滿‘자 자체는 攻擊的(공격적) 性向(성향)의 意味(의미)를 띤 글자가 아니다.그저 ’가득하다‘는 상태를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이 ’滿(만)‘자 뒤에 ’破(파)‘자가 이어지는 것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가득하다‘에서’깨부수다‘로 의미가 어어지는 것이 너무 갑작스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문장은 ‘以奴客爲民歸王 請命(이노객위민귀왕 청명’즉 “(倭人들이)노객 신분으로 우리 백성이 되어 태왕께 귀의하고자 하기에 이렇게 태왕의 분부를 청하옵니다”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奴客’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전쟁에 패하여 상대에게 완전히 굴복하는 자’,곧 ‘항복하는 당시의 정복자에 대해 사용하는 항복자의 지칭’이라 여겨진다.광개토태왕비 제2면에 있는 고구려의 백제 정벌 기사 중에 백제 왕이 태왕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왕이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기를 오늘 이후로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백제 왕은 고구려에 항복하면서 자신을 ‘奴客’이라고 낮춰 칭하고 있다. 이러한 용례로 보아 기해년 기사의 노객도 ‘항복자’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以奴客爲民’은 ‘항복자의 신분으로 우리 신라의 백성이 되다’라는 뜻이다. ‘ 歸王’은 ‘대왕께 귀의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즉 고구려의 속민인 신라인들이 확보한 노객이니 결국 그 노객은 고구려의 신민이되므로 이


노객들이 태왕의 신민으로 귀의하고자 한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請命’은 ‘명령을 청하다’. 즉 ‘처분을 기다린다’ 혹은 ‘처분을 바란다’로 새길 수 있다. 신라는 노객인 왜를 고구려의 신민으로 귀속시키면서 자신들의 그러한 戰功 에 대해 태왕께서 어찌 생각하시며, 또 어떤 조치를 취하실지 예를 갖춘 어투로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신라 사신이 직접화법으로 태왕께 아뢰어 말한(白云)내용이다. 신라 사신의 이러한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태왕이다. 그래서 그 다음 문장의 主語로 바로 태왕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왕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신라 사신의 말을 들은 태왕은 당연히 기뻐하며 신라의 戰勝과 고구려에 대한 忠誠을 칭찬했을 것이다.그래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結文은 뒤의 ‘其忠(신라의 충성)’ 연계지어 “태왕께서 기뻐하시며 신라의 충성을 칭찬하였다(太王喜而稱其忠)”로 복원했다.

희색을 띠고 치하한 후 태왕은 그 사신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아마도 ‘곧바로 돌아가서 그대의 왕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밀계를 전하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다음 문장은 ”곧바로 파견 온 신라 사신을 돌려보내 태왕의 밀계를 신라의 왕에게 고하게 하였다(卽時遣使還告以密計)“로 복원했다.
己亥年 기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변조를 확인하여 원문을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破’자 때문이다. 이 글자가 신묘년 기사와 똑같은 모양으로 변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변조된 ‘破’자를 ‘于’로
복원함으로써 이처럼 文理와 文法에 맞고 역사적 사실과도 附合하는 원문을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글은 김병기 교수의 사라진 비문에서 일부발췌함

물론 김병기 교수는 사학자가 아니신 관계로 고구려의 강역과 할동무대 까지는 파악하지 못하셨지만 광개토태왕의 활동무대는 결코 현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갈 청소년들이 역사에 의문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왜곡된 역사를 제자리로 돌여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