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河日記의 再解釋을 통한 遼寧省 探求
(1780. 6/24~8/20)
내가 중국 동북지역에 체류한지도 어언 1년여가 되었고 이를 통해 얻은 지식을 내 기억이 다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도 남겨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즈음 내 친구인 성균관대 김용준교수가 향토사학자(?) 형태로 지역답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요즈음 가장 Hot한 주제 중 하나인 연암 박지원선생이 熱河日記 장정을 다시 따라가 보기로 하였다.
조선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는 조선조에서도 몇 안되는 왕권을 자기 스스로 확립하여 조선 후기의 개혁시대를 이끈 현명한 군주로 손꼽힌다. 이 당시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과 더불어 개혁을 이끈 분이 연암 박지원선생(1737~1805)이다. 연암은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 공부에 뜻을 품고 공부한지 3년 만에 주위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가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학문을 중국의 고수들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러던 중 자신의 먼 친척형 (8촌 박명원)이 청나라 북경에 사신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형인 박명원에게 억지로 부탁하여 지금으로 보면 사신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1780년 여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신축하 사절로 북경으로 향한다. 본인으로서는 당시 뜨는 학문인 북학을 접할 기회로 소위 공짜 해외 출장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는 열하일기는 6월24일 압록강 남쪽인 의주를 건너 지금의 丹東인 九連城에 도착한다. 이미 성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그저 외로운 표지석만이 과거 九連城터 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한지역에서 지금은 경제개발의 영향으로 의주에서 약 20km정도 서쪽인 신의주가 중심이나 당시는 의주가 경제중심으로 넘으면 바로 고구려의 천리장성의 일부인 虎山長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