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재방문2
  • 작성일20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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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최근 들어 만리장성의 시작점을 虎山長城이라 주장하기 시작하는데(중국 학계에서도 정설은 아니나 일부에서 강력히 주장 중) 여기서 보면 북한의 의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최근에 丹東 유일의 골프장이 소재한 五龍背와 汤山城鎭을 거쳐 청나라의 실질국경인 柵門(중국 이름은 邊門)을 지난다. 연암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이 여기를 기점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있으나, 국경확정은 이미 100년 이상 지난 일로 돌이킬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柵門에 들어서자마자 박지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벽돌주택이었다. 박지원은 조선은 초가집으로 매년 다시 집을 수리하여야 하는데 중국은 벽돌구조로 보온과 유지가 간편하다는 점에 깊이 감동받고 벽돌 공장을 견학하는 등 다양한 민생기술 습득을 위한 노력을 한다.

다음으로 연암은 일부 일행들이 安市城이라고 주장하는 鳳凰城을 방문하고 논쟁을 하였으나 연암은 고증도 안되고 규모가 너무 작아 鳳凰城은 安市城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현재 주요 연구는 봉황성은 안시성이 아니며 고구려 五骨城으로 밝혀지고 있음) 鳳城에 가보니 수나라 대군을 무찌른 천혜의 요새답게 밖에서 보기엔 험준한 산이나 산속으로는 매복이 가능하여 부대 주둔지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지금은 고구려 五骨城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만 鳳凰山城터라는 표지석만 외롭게 서있다.

通遠堡를 거쳐 草河口를 지날 즈음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던 봉림대군의 胡風陰雨歌를 생각한다. (비오는 날 오랑캐땅을 지나는 봉림대군의 비통함을 시로 남김). 그러나 여기는 명소는 많이 남아 있지 않고 그저 옛날 驛站이 번성하였던 곳에 지금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과거 당나라 薛仁貴장군(고구려를 멸망시킨 장군) 주둔지인 薛禮站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