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연암 일행이 北京에서 별일 없이 소일하는 그때에 乾隆帝는 이미 熱河로(현재의 承德) 이동하여 집무 중으로 연암 일행은 다시 호위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乾隆帝의 여름별장이 위치한 承德으로 향하게 된다. 그 과정에 北京에 있는 청나라 관리들이 조선 사신단을 북경에 5일간 체류하여 시간을 지체한 일로 乾隆帝로부터 직무태만이라는 호된 질책을 받게 되고 그래서 호위무사들은 밤을 새워가며 조선사신단을 承德으로 재촉하였다. 여기서 밤에 작은 하천인 熱河를 건너며 느끼는 공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承德에 도착한 다음 지동설 등 조선에서는 듣지도 못한 이론들을 접하게 되고, 수많은 선진 문물제도를 중국의 명망있는 학자와 토론 하는 형태로 이해하는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처음 乾隆帝를 접견할 때 사신단 일행은 乾隆帝로 부터 크게 환대를 받는데 이 자리에서 乾隆帝는 한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다름 아닌 承德의 避暑山莊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포탈라궁에 모신 라마교의 고승 판첸라마를 자신의 스승의 예로 알현하라는 명을 한다.. 이에 사신단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듣고 일부는 조선은 유학의 나라인데 근본도 모르는 기이한 종교에게 알현하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았나 보다…
다음날 판첸라마를 접견하는 과정에서 접견을 대충하였는데 이 사실을 乾隆帝가 알고 어제의 극진한 대접에서 매우 진노하게 된다. (아울러 판첸라마로부터 예품으로 받은 불상 등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사신단의 논란이 이어진다.)
연암은 당시 판첸라마를 접견한 사실을 단순한 종교적 이슈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청나라의 통치방법으로 이해하고 조선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