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를 둘러싼 역사논쟁이 분분하다. 2017년 5월 30일 도종환 시인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학계(강단사학)는 ‘유사사학’의 추종자라는 이유로 심각한 우려를 표출하였다. 반면 ‘유사사학’자들은 강단사학자들을 ‘식민사학’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고대사 이슈는 두 가지. 하나는 고조선·고구려의 강역과 관련한 한사군의 위치이며, 또 하나는 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南鮮經營)하였다는 이른 바 ‘임나일본부설’이다.
‘낙랑평양설 vs 낙랑요동설’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는 얼마나 되었을까?
국경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한사군의 위치는 고대사지도를 비정比定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 ‘식민사학’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전제하에 옹색한 고조선·고구려지도를 제시한다. 반면 ‘유사사학’은 낙랑군이 한반도 밖(요동 등)에 있었다는 전제하에 중국 황하 이북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지도를 제시한다. 왜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벌어지는가?
문장1: 평양성은 옛날[古] 한漢의 낙랑군이다.[平壤城古漢之樂浪郡也]
문장2: 낙랑군은 옛날[故]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었다.[樂浪郡故朝鮮國也 在遼東]
「신당서」에 실린 ‘문장1’은 이른 바 ‘낙랑평양설’의 근거이며, 「후한서」에 실린 ‘문장2’는 유사사학이 주장하는 ‘낙랑요동설’의 근거다. 그러나 ‘고古’와 ‘고故’를 응시하라. 학자들은 그 두 글자를 무조건 ‘옛날’이라고 하지만, 그 차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일연의 「삼국유사」다. 삼국유사 ‘낙랑국’편은 두 개의 문장을 나란히 인용하였으니, 일연이 묵시한 뜻은 무엇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