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국(임나가야)의 왕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라’ 명령[令]하였다는데, 일본학자들은 조공하러 보내었다고 뒤집었으니, 그들을 맹신하는 대한민국 역사학자들이 어찌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겠는가. 행여나 위와 같은 정반대의 해석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숭신천왕 다음의 ‘수인천황기’를 읽어보시라.
아아, 유화문명
일찍이 복희씨 신농씨 황제 요임금이 건설한 중화문명이 동방으로 뻗어올 때,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찬란한 문명을 받아들였을까? 유교儒敎를 국시로 내걸었던 이성계의 조선朝鮮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단군조선과 고구려는 결코 그렇지 않았으니, 역사학자들이 묻어버린 영혼의 소리를 청취하라. 「삼국유사」는 제1성으로 “나[余]는 공자왈맹자왈[曰]을 매질[又≒攴]하노라.”선언한다.(학자들은 “서문에 말한다[敍曰]”로 왜곡하였다.) 는 “공자왈맹자왈[曰]이 백성을 포획[維]하여 도착[昔]시킴을 폭로[詞]하라.”명령한다.(물론 학자들은 “그 말씀은 아래와 같다[其詞曰維昔]”로 왜곡하였다.)
공자왈맹자왈[曰]을 폭로하고 매질하며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단군신화 주몽신화 등에 담긴 삼족오三足烏의 정신, 유화柳花의 영혼이다. 중국이 봉황으로 상징되는 공작새낙원이라면, 우리는 다양[三]한 욕망[足]의 까마귀[烏]를 포용하는 상생의 낙원이다. 공자왈맹자왈로 ‘중中’을 우상화하는 게 중화中華문명이라면, 우리는 버드나무의 자유를 사랑하는 유화柳花문명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어떻게 부활renaissance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주몽이 어떻게 유화부인의 자유를 각성renaissance하는지를 이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