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통해 연장성燕長城과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위치를 확인하니...
중국은 문헌 해석에서 대국大國답게 대범함과 호쾌함을 보이기에 한편으로는 부럽고, 경의와 존경심이 생기게 되니, 우리도 문헌해석에서 중국의 대범함과 호쾌함을 배워야 한다
위만 조선은 연나라 사람 위만이 중국땅인 진秦 땅에 세운 "짝퉁 고조선", "가짜 고조선"이다
1) 위만조선 영토도 매우 작아서 군郡으로 불리기도 아깝고 현縣정도의 크기이다
한사군도 군郡이 아니라 현縣이라 불려야 하고,
한사군내 현縣들도 현縣이 아니라 향鄕으로 불러야 한다
2) 연장성燕長城도 하북성河北省 중간에 있는 것을..
명나라 만리장성인 진황도시 산하이관(山海關)까지가 연장성燕長城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북한 평양을 지나서 황해도까지 연장성燕長城이 있다고 주장하니...
역사에서 중국의 대범함과 호쾌함에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 ■ 1. 위만조선衛滿朝鮮(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패수浿水와 상하장上下鄣이 있는 형수시衡水市 무강현武强县이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있던 장소다
1) 사마천이 태사공 자서에서 조선열전을 지은 이유를
'위만衛滿이 멀리 떨어진 외진 변방을 안정시키고, 변방을 지키고 한漢의 신하가 된 것이다'고 했다
2) "조선열전"에 따르면
위만衛滿이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나라 땅인 상하장上下鄣에 나라를 세우고,
왕험王險을 도읍으로 정했는데..
(1) 상하장上下鄣은 상장上鄣과 하장下鄣이라는 의미이고, 장鄣은 보루, 둑, 병풍,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데..
"한서지리지 낙랑군"에 운장雲鄣이 있다고 했으니.. 상하장이 상하운장이고..
운장雲鄣이란..구름의 보루 둑 경계 또는 안개의 보루 둑 경계로 물과 관련 있는 강江으로 보이고..
상하장上下鄣이란 상운장上雲鄣과 하운장下雲鄣으로, 강으로 둘려싸인 2개의 구분된 땅이라는 뜻이다
(2) "한서지리지 요동군"에 왕험王險인 험독현은 위만의 도읍지인데 패수(浿水)의 동쪽에 있고
패수(浿水) 강물의 험한 것을 의지했기에 험독險瀆(왕험王險)이란 한 것이다
따라서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진秦나라 땅인 상운장上雲鄣 하운장下雲鄣의 강으로 둘려싸인 2개의 구분된 땅에 나라를 세웠고, 패수(浿水) 강물의 험한 것을 의지할 수 있는 장소인 왕험王險에 도읍을 정했다
>>> ■ 2. 한漢 사군四郡(기원전 100년경)
위만조선 멸망 후에, 후(侯)로 봉해진 사람이 5명이니 위만조선이 5군으로 나누어졌고, 현도군은 1년 뒤에 설치되었으니 위만조선이 6군이 나누어 졌다가 한사군(漢四郡)으로 바뀐 것이다
>>> ■ 3. 한서 지리지 기준(기원전 10년경)
>>> ■ 4. 위만조선과 한사군에 관한 사기 및 한서지리지 내용
연나라 태자 단(丹)이 요동 일대로 흩어지자 위만(衛滿)은 망명자들을 거두어
그들을 바다 동쪽에 집결시켜 진번(真藩) 등을 안정시키고 변방을 지키면서 외신(外臣)이 되었다.
이에 제55편 ‘조선열전(朝鮮列傳)’을 지었다.
[출처] 130-18/20[史記列傳(사기열전)] 권130 太史公 自序(태사공 자서) (18/20)
※주)위만조선이 망한 기원전 108년에는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 중이었다
진한조선과 번한조선이라면 정확하게 진한번한 조선이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진번真番을 진한조선과 번한 조선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면 곤란하다
☞ 진真은 '참으로', '정말로' 의미이고, 번番은 '울타리', '차례(당번 순서)' 의미가 있으니..
진번真番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멀리 떨어지 외진 변방인 상하장으로 보아야 한다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나라의 옛 비어 있는 땅 상하장(上下鄣)에 거주하면서
점차 진번真番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나라와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王險:왕검)을 도읍으로 정했다.
[출처] 115-1/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1/2)
※주) 진真은 '참으로', '정말로' 의미이고, 번番은 '울타리', '차례(당번 순서)' 의미가 있으니..
진번真番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멀리 떨어지 외진 변방인 상하장으로 보아야 한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재상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로 하여금 그 백성들을 설득하여 성기(成己)를 죽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조선이 평정되어 사군(四郡)을 설치했다.
삼(參)은 획청후(澅淸侯)에, 한음은 적저후(狄苴侯)에, 왕겹은 평주후(平州侯)에, 장항(長降)은 기후(幾侯)에 봉해졌다. 최(最)는 아버지가 죽은 공로가 많아 온양후(溫陽侯)에 봉해졌다.
[출처] 115-2/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2/2)
※주) 위만조선 멸망 후에, 후(侯)로 봉해진 사람이 5명이니 위만조선이 5군으로 나누어졌고, 현도군은 1년 뒤에 설치되었으니 위만조선이 6군이 나누어 졌다가 4군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한다
險瀆 험독현(險瀆縣)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險瀆 臣瓉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師古曰 瓚説是也 浿音普大反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조선(朝鮮)의 왕(王) 위만이 도읍인데 강물의 험한 것을 의지하였기에 험독(險瀆)이라 한 것이라고 했다 신찬(臣瓉)이 말하기를 왕험성(王險城)은 낙랑군 패수(浿水)의 동쪽에 있는데 험독현(此)은 자연적으로(自) 올바른(是) 험독이라고 했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신찬의 말이 옳다고 했다. 浿의 음은 배(普大反)이다
[출처] 요동군 遼東郡 (한서지리지-유주)
※주) 왕험王險의 험險은 패수(浿水) 강물의 험한 것을 의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낙랑군(樂浪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3년에 열었다. 왕망은 낙선(樂鮮)이라 했다. 유주(幽州)에 속한다.
應劭曰故朝鮮國也 응초(應劭)는 옛 조선국이라고 했다
[출처] 낙랑군 樂浪郡(한서지리지-유주)
※주) 옛 조선국은 위만조선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朝鮮 조선현(朝鮮縣) 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고 했다.
[출처] 낙랑군 樂浪郡(한서지리지-유주)
※주) 위만을 한漢나라 조정의 외신(外臣)으로 삼은 것과응초가 漢무제(武帝)를 周무왕(武王)으로 잘못 이해하여 일천 여년 전의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했다.
고구려현(髙句驪縣)은 왕망이 하구려(下句驪)로 고쳤으며 유주(幽州)에 속한다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옛 진번조선(真番朝鮮) 호(胡)의 나라이다..
[출처] 현도군 玄菟郡(한서지리지-유주)
※주) 왕망은 전한 말 사람이니 현도군(형수시)가 고구려가 점령한 사실이 있다는 말이고
응초의 진번 조선 주장은 진번은 글자 그대로 멀리 떨어지 외진 변방인데.. 응초가 진번조선으로 오해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