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서동이전(왜국倭國은 절강성과 대만이었다)
  • 작성일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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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는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했다

※주) 후한서에 따르면 왜(倭)가 주애[군](朱崖郡) [주] 및 담이[군](儋耳郡) [주] 과 서로 가깝다고 했으니
주애군과 담이군이 해남성이니 왜(倭)가 일본이 아니라 오(吳)와 월(越)지방 또는 대만일 수 있다​

1) 왜의 여왕국(대만)의 동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면,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종(오키나와)

2) 소인국[侏儒國, 필리핀]이 그 남쪽에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키는 3~4척(尺) [주] 이고, 여왕국(女王國, ​대만)에서 4천여 리 떨어져 있다

3) 나국 , 흑치국(파푸아뉴기니)이 소인국[侏儒國, 필리핀]의 동남쪽에 있다.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주) 사마천 사기의 남월열전에는 남월(광동성) 서쪽에 나국이 있다고 했다
육고가 남월에 도착하자 남월왕은 매우 두려워해 천자에게 사죄의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만이의 대군장(大君長)인 늙은 신하 조타는 ~~
또한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한 땅으며 만이(蠻夷) 사이에 있어
동쪽 변경의 민월은 백성이 겨우 1천명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왕(王)이라 칭하고,
서쪽의 구락(甌駱)과 나국(裸國) 역시 왕이라 칭합니다. ~~'
[출처] 113-1/3[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3.南越列傳(남월열전) (1/3)

※ 주) 대만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문신 풍습이 있는데..
'남자는 어른과 아이 [구별이] 없이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文身)을 한다'고 했고,

「사기의 노 애공편」에 '고대에 오(吳)와 월(越)지방은 몸에 문신을 하고​ 단발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 왜국이 일본이 아니라 오(吳)와 월(越)지방 또는 대만일 수 있다

※ 아시아 문신 풍습 :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삼의 여러 부족, 특히 다프라 ·아보르 ·미키르와 나가의 여러 종족, 미얀마 남부의 친족(族)이나 카렌족(族), 그리고 타이완[臺灣]의 고산족(高山族), 필리핀의 북(北)루손이나 민다나오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 문신의 풍습이 퍼져 있다. 인도네시아의 각 지방에서는 검은색 이외에 여러 가지 빛깔이 쓰여지고 있다. 특히 샨족(族)과 미얀마인들은 기하학적 무늬나 와상선, 틀에 박힌 동물이나 인간의 상, 성신(星辰) 등이 주된 모티프이며, 서로 다른 무늬가 씨족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계층까지도 구별한다. 그 밖의 아시아 지역에는 문신이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출처] 동아시아 어렵민 문신[文身]


○ 三國志註 001 魏書 烏丸鮮卑東夷傳註 002

※주) 한자 원문 정사 삼국지에는 위서 '동이전'은 없고 위서 '오환 선비 동이전'이다

왜(倭)

왜(倭)의 위치 및 풍속을 설명

왜인(倭人) [주] 은 대방군(帶方[郡]) [주] 동남쪽(복건성 남쪽)의 대해(大海) 중에 살고 있는데, [주]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나라와 마을[國邑]을 이루었다. [주] 이전에는 100여 나라였는데, 한대(漢代)에 [이들 중에서 한의] 조정에 알현(朝見) [주] 하는 나라가 있었고, 지금은 [주] 사역(使譯) [주] 이 통하는 곳이 30개 나라이다. [주][대방]군(帶方郡)에서 왜(倭)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韓 강소성) [주] 을 거쳐 때로는 남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나아가면 그 북쪽 대안[北岸 강소성 남부, 계동시啟東市] [주] 인 구야한국(狗邪韓國) [주] 에 도착하는데, [거리가] 7천여 리(里) [주] 이며, 처음으로 바다 하나 [주] 를 건너는데, 1천여 리를 가면 [주] 대마국(對馬國 절강성 단산시舟山市) [주] 에 도착한다. 그 대관(大官)은 비구(卑狗) [주] 라 부르고, 그 부[관](副官)은 비노모리(卑奴母離) [주] 라 부른다. 살아가는 곳은 절도(絶島) [주] 로서, 사방이 4백여 리 정도이고, [주] 토지는 산이 많아서 험하고 우거진 수풀이 많으며, [주] 도로는 새와 사슴과 같은 짐승들이 다니는 길과 같다. 1천여 호(戶)가 있으나, [주] 좋은 농경지가 없어서 [주] 해물을 먹으며 생활하면서, 배를 타고 남쪽과 북쪽으로 가서 곡물을 사온다. [주] 또 [대마국에서] 남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는데, [주] [이 바다의] 이름은 한해(瀚海) [주] 라고 한다. [1천여 리를 건너면] 일대국(一大國, 절강성 능파시寧波市 상산형象山縣) [주] 에 이른다. [그 대]관(大官) 역시 비구(卑狗)라 부르고, 부[관](副官)도 비노모리(卑奴母離)라 부른다. 사방은 3백 리 정도이고, 대나무와 울창한 숲이 많으며, 3천 정도의 가(家)가 있다. 약간의 전지(田地)가 있지만, 농사를 지어도 여전히 먹고 살기에 부족하므로, 역시 [그] 남쪽과 북쪽으로 다니면서 곡물을 사온다.

또 바다 하나를 건너서 1천여 리를 가면 말로국(末盧國 대만) [주] 에 이른다. [이 나라에는] 4천여 호(戶)가 있는데,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따라서 거주하고 있고, 초목이 무성하여, 길을 가면서 앞에 가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물고기와 전복을 잘 잡는데, 바닷물이 깊든 얕든 간에,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잡는다. [말로국에서] 동남쪽으로 육상으로 5백 리를 가면, 이도국(伊都國) [주] 에 도착한다. [이 나라에서 대]관(大官)은 이지(爾支) [주] 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설모고(泄謨觚) [주] 혹은 병거고(柄渠觚) [주] 라 부른다. 1천여 호(戶) [주] 가 있는데, 대대로 왕(王)이 있었지만 [주] 모두 여왕국(女王國)에 통속되어 있어서, 군사(郡使) [주] 가 왕래하면서 항상 주재(駐在)하는 곳이다. [이도국에서] 동남쪽의 노국(奴國) [주] 에 이르는 [거리는] 1백 리이다. [그 대]관(大官)은 시마고(兕馬觚) [주] 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비노모리라 부른다. [이 나라에는] 2만여 호가 있다. [노국에서] 동쪽으로 가면 불미국(不彌國) [주] 에 이르는데, [그 거리는] 1백 리이다. [그 대]관(大官)은 다모(多模) [주] 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비노모리(卑奴母離)라 부른다. [이 나라에는] 1천여 가(家)가 있다. [불미국에서] 남쪽으로 가면 투마국(投馬國) [주] 에 이르는데, 바닷길로 20일을 간다. [그 대]관(大官)은 미미(彌彌) [주] 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미미나리(彌彌那利) [주] 라 부른다. 5만여 호 정도이다.

[투마국에서] 남쪽으로 가면 야마일국(邪馬壹國) [주] 에 이르는데, 여왕(女王)이 도읍(都邑)한 곳으로 바닷길로 20일 동안 가고 [다시] 육상으로 1개월 동안 간다. [주] [그 대]관(大官)으로 이지마(伊支馬) [주] 가 있고, 그 다음은 미마승(彌馬升) [주] 이라 부르며, 그 다음은 미마획지(彌馬獲支) [주] 라 부르고, 그 다음은 노가제(奴佳鞮) [주] 라 부른다. 7만여 호 정도가 있다. [주] 여왕국(女王國)의 이북 [주] (에 있는 나라)은 그 호구의 숫자[戶數]와 [여왕국에서의] 거리[道里]를 대략적이라도 기재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 주변국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세한 것을 얻을 수 없다. 다음으로 사마국(斯馬國)이 있고, 다음으로 이백지국(已百支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이사국(伊邪國)이 있고, 다음으로 도지국(都支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미노국(彌奴國)이 있고, 다음으로 호고도국(好古都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불호국(不呼國)이 있고, 다음으로 저노국(姐奴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대소국(對蘇國)이 있고, 다음으로 소노국(蘇奴國)있으며, 다음으로 호읍국(呼邑國)이 있고, 다음으로 화노소노국(華奴蘇奴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귀국(鬼國)이 있고, 다음으로 위오국(爲吾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귀노국(鬼奴國)이 있고, 다음으로 야마국(邪馬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궁신국(躬臣國)이 있고, 다음으로 파리국(巴利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지유국(支惟國)이 있고, 다음으로 오노국(烏奴國)이 있으며, 다음으로 노국(奴國) [주] 이 있는데, 이것이 여왕의 경계(境界) 안에 있는 것을 다 열거한 것이다. [주]

그 [여왕국] 남쪽에는 구노국(狗奴國) [주] 이 있는데, 그 관직으로는 구고지비구(狗古智卑狗) [주] 가 있고, 여왕에 소속되지 않았다. 군(郡) [주] 에서 여왕국에 이르는 [거리는] 1만 2천여 리이다. [주]

남자는 어른과 아이 [구별이] 없이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文身)을 한다. [주] 옛날부터 그 사신들이 중국으로 왔는데, [그들] 모두 스스로 대부(大夫) [주] 라고 칭하였다. 하나라의 왕[夏后] 소강(少康) [주] 의 아들이 회계(會稽) [주] 에 봉해지자,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여 교룡(蛟龍) [주] 의 해를 피하였다. 지금 왜(倭)의 수인(水人) [주] 은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와 조개를 잘 잡는데, 문신은 원래는 큰 물고기와 바다짐승을 피하려는 것이었으나, 후에 점차 [문신을 하는 것은] 장식이 되었다. 여러 나라들의 문신은 각각 달라 [문신하는 자리나 크기가] 왼쪽이나 오른쪽 혹은 크거나 작은데, 왼쪽 혹은 오른쪽, 크고 혹은 작은데,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다. [주] [왜국(倭國)까지의] 가는 길과 거리[道里]를 헤아려 보면, [그곳은] 마땅히 회계(會稽)동야(東冶 복건성) [주] 의 동쪽에 있어야 한다. [주]그 풍속은 음란(淫亂)하지 않고,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木緜) [주] 으로 머리를 묶는다. [주] 그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橫幅] [주] 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으며, 옷을 만드는 것이 홑이불[單被] [주] 과 같은데, 그 중앙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넣어 입는다. 벼 [주] 와 모시 [주] 를 재배하고 양잠을 하여 실을 만들며, 세모시, 좋은 비단 [주] 그리고 솜 [주] 을 산출한다.그 땅에는 소, [주] 말,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 [주] 가 없다. 무기로는 창, 방패 그리고 목궁(木弓)을 사용한다. 목궁은 아랫부분을 짧게 하고 윗부분을 길게 한다. 대나무 화살대는 어떤 것은 철로 된 화살촉이고 어떤 것은 뼈로 된 화살촉이다. 있거나 없는 것이 담이(儋耳) [주] 및 주애(朱崖) [주] 와 같다. [주] 왜의 땅은 온난하고, 겨울과 여름에도 생채(生菜)를 먹고, 모두 맨발로 다닌다. 집과 방이 있는데, 부모형제는 기거하는 곳을 달리하고, 붉은색 안료를 몸에 바르는데, [주] 중국에서 분(粉) [주] 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먹거나 마시거나 변두(籩豆) [주] 를 사용하고 손으로 먹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棺) [주] 은 쓰지만, 곽(槨) [주] 은 없다. 흙을 쌓아 봉분[冢]을 만든다. 사람이 죽으면, 10여 일 동안 매장하지 않는데, [주] 이때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주] 상주(喪主)는 곡읍(哭泣) [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와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술을 마신다. 장사(葬事)가 끝나면, 온 가족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목욕하는데, (중국의) 연목(練沐) [주] 과 같다.

그 사행[行]이 바다를 건너서 중국에 올 때는 항상 한 사람에게 머리를 빗지 못하게 하고, 서캐와 이를 없애지 못하도록 하며, 의복은 때가 묻어서 더럽고,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며, 부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마치 초상을 치르는 사람[喪人]과 같았는데, 그를 지최(持衰) [주] 라고 불렀다. [주] 만약 [중국으로] 가는 자들이 [도중에] 길하고 좋으면, [일행] 모두는 그에게 생구(生口) [주] 와 재물을 주고, 만약 질병이나 폭풍 등의 재해를 만나면, 곧바로 그를 죽이려고 하면서, [그들은] 그 지최(持衰)가 삼가지 않았다고 한다. [주]진주(眞珠)와 청옥(靑玉)을 산출한다. [주] 그 산에서는 단(丹)이 나고, 그 나무로는 매화나무[枏], [주] 노송나무[杼], [주] 녹나무[豫樟], [주] 모과나무[楺], [주] 상수리나무[櫪], 감귤나무[投], [주] 떡갈나무[橿], [주] 박태기나무[烏號], [주] 그리고 단풍나무[楓香] [주] 가 있다. 그 대나무로는 조릿대(篠)와 해장죽[簳] [주] 과 도지[桃支] [주] 가 있다. 생강[薑], 귤[橘], 산초[椒] 그리고 양하[蘘荷] [주] 가 있지만, 이것들을 양념으로 쓸 줄은 모른다. 원숭이[獼猴] [주] 와 검은 꿩[黑雉] [주] 이 있다.

그 풍속은 일을 거행하거나 [어디를] 갈 때, 말하거나 행동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항상 뼈를 불에 태워서 점치는데, 그렇게 하여 길흉(吉凶)을 묻고, 맨 먼저 점친 내용을 알리는데, 그 말은 영귀(令龜) [주] 의 법(法)과 같은 것으로서, [뼈가] 불에 타서 갈라진 금을 보고 앞으로의 일을 점친다. [주] 그들은 모이거나 행동할 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고, 천성이 술을 즐긴다.[배송지주1] 대인(大人) [주] 처럼 존경해야 할 사람을 만나면, 단지 손뼉을 치는데, [주] 그렇게 하는 것이 [중국에서의]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 사람들은 장수[壽考]하여, 어떤 이는 100살까지 살고, 어떤 이는 80살 내지 90살까지 산다. [주] 그 풍속은 나라[國]의 대인(大人)은 모두 4~5명의 부인을 두고, 하호(下戶) [주] 라도 어떤 이는 2~3명의 부인을 두었다. 부인은 음란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물건을 훔치지 않고 소송으로 다투는 일[爭訟]도 적다.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죄가] 가벼운 자는 그 처와 자식을 몰수하고, 무거운 자는 그 문호(門戶) 및 종족(宗族)을 멸한다. [신분의] 존비(尊卑)에도 각각 등급이 있는데, 서로 잘 신복(臣服)한다. [주]

세금[租賦]을 거둔다. 저각(邸閣) [주] 도 있으며, [주] 나라마다 시장이 있어서 있고 없는 것을 서로 교역하는데, [왕은] 대왜(大倭) [주] 를 시켜서 그것[교역]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여왕국의 이북에 특별히 일대솔(一大率) [주] 을 설치하여 여러 나라를 단속하고 살피도록 하였으므로 여러 나라는 그를 두려워하면서 꺼려하였다. [일대솔은] 항상 이도국(伊都國)에서 다스렸는데, 나라 안에 자사(刺史) [주] 가 있는 것과 같다. [왜국]왕(倭國王)이 사신을 시켜서 경도(京都), [주] [대방]군 그리고 여러 한국(韓 산동성 강소성) [주] 에 보내거나 [대방]군이( 왜국倭國)에 사신을 파견하면, [그때마다] 항상 나루터로 와서 [사신을] 찾아서, 전달해서 보낸 문서와 [황제가] 하사하여 보내준 물건을 여왕에게 도착하도록 하는 데 실수나 착오가 없었다. [주] 하호(下戶)가 대인(大人)과 도로에서 서로 마주칠 때에는 뒷걸음을 쳐서 돌아서 풀숲으로 들어간다. 말을 전달하거나 일을 설명할 때는 어떤 자는 몸을 웅크리고, 어떤 자는 무릎을 꿇고, 양손은 땅에 대는데 [주] , 그것은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상대에게] 답할 때는 ‘희(噫)’ [주] 라고 하는데, [이것을] 비교하자면, ‘예[然諾]’라고 하는 것과 같다. [주]

그 나라도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으나, [주] 70년~80년이 지나자 [주] 왜국에서 난리가 일어나서 [주] 서로 공벌(攻伐)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주] 마침내 모두 함께 한 여자를 추대하여 [주] 왕으로 삼았는데, 이름은 비미호(卑彌呼) [주] 라고 한다. [그녀는] 귀도(鬼道) [주] 를 섬겨서, 능히 무리를 미혹하며, 나이가 이미 많았음에도 지아비가 없고, 남동생[男弟] [주] 이 있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미호가] 왕이 된 이래, [그녀를] 본 자가 적었다. [그녀는] 여자 종[婢] 1천 명으로써 자신을 모시도록 하였으며, 오직 남자 1명이 있어서, [그는] 음식을 올리거나 말을 전달하러 출입하였다. [주] 궁실(宮室)과 누관(樓觀)에 거처하였고, [주변에는] 성책(城柵) [주] 이 엄중하게 설치되어 있고, 항상 병기(兵器)를 지닌 사람이 있어서 [그녀를] 지켰다.

​여왕국의 동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면,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종(倭種)이다. 또 소인국[侏儒國] [주] 이 그 남쪽에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키는 3~4척(尺) [주] 이고, 여왕[국](女王國)에서 4천여 리 떨어져 있다. 또 나국(裸國) [주] 과 흑치국(黑齒國) [주] 이 그 동남쪽에 있다.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왜의 땅을 헤아려 보면, [육지와] 멀리 떨어진 바다에 있는 섬에 있는데, [그] 어떤 곳은 서로 끊어져 있지만, 어떤 곳은 서로 이어져 있으며, 주위는 5천여 리 정도이다.

[위(魏)명제(明帝)] 경초(景初) 2년(238) [주] 6월에, 왜(倭)의 여왕이 대부(大夫) 난승미(難升米) [주] 등으로 하여금 [대방]군에 이르게 하여, 천자(天子)에게 나아가서 조헌(朝獻)하기를 요청하므로, [대방군] 태수(太守) [주] 인 유하(劉夏) [주] 가 [관]리(官吏)를 시켜서 [왜의 사절을] 전송(傳送)하게 하여 경도(京都)에 이르게 하였다. 그해(239) 12월에 [명제는] 조서(詔書)를 내려서 왜의 여왕에게 답하여 말하였다. “친위왜왕(親魏倭王) [주] 비미호(卑彌呼)에 제조(制詔) [주] 하노라. 대방군 태수인 유하(劉夏)가 사인(使人)을 보내어 너의 대부(大夫) 난승미(難升米)와 차사(次使) [주] 도시우리(都市牛利) [주] 를 호송해 왔는데, 네가 바친 남자 생구(生口) 4인, 여자 생구 6인 그리고 반포(斑布) [주] 2필(匹)2장(丈) [주] 을 받들고 왔다. 네가 있는 곳은 대단히 먼데도, 사신을 파견하여 공헌(貢獻)하였다. 이는 너의 충성(忠誠)과 효심(孝心)이니, 나는 너를 심히 어여쁘게 여기노라. 이제 너를 친위왜왕(親魏倭王)으로 삼고, 금인자수(金印紫綬) [주] 를 수여하노라. [그것들을] 장봉(裝封)하여 대방태수(帶方太守)에게 보내어 수여토록 하겠다. 너는 너의 나라 사람[種人]들을 편안하게 하고 어루만져주며, [주] [짐에게] 효순(孝順)하는 데 힘쓰도록 하라. 네가 보낸 사신 난승미(難升米)와 [도시]우리(都市牛利)는 먼 곳을 건너오느라 길에서 부지런히 힘썼으니, 이제 [짐은] 난승미를 솔선중랑장(率善中郞將) [주] 으로, [도시]우리를 솔선교위(率善校尉) [주] 로 삼고, [그들에게] 은인청수(銀印靑綬) [주] 를 수여하노라. 그들을 [궁궐에서] 만나서 위로하고, [물품을] 하사하여 돌려보내노라. 이제 강지교룡금(絳地交龍錦) [주] 5필(匹)[배송지주], 강지추속계(絳地縐粟罽) [주] 10장(張), 천강(蒨絳) [주] 50필, 감청(紺靑) [주] 50필로써, 네가 공물로 헌납한 [물품의] 값에 보답하겠다. 또 특별히 너에게 감지구문금(紺地句文錦) [주] 3필, 세반화계(細班華罽) [주] 5장, 금(金) 8량(兩), [주] 오척도(五尺刀) [주] 2구(口), 동경(銅鏡) 100매(枚), [주] 진주(眞珠)와 연단(鉛丹) [주] 각각 50근(斤) [주] 을 하사할 것이고, [이것들] 모두를 포장해서 봉하여 난승미와 [도시]우리에게 부친다. [그들이] 귀환하면 [여기에] 기재된 그대로 받을 것이다. [이것들] 모두는 너의 국중(國中) 사람들에게 보여라. [그리하여 그들에게] 국가(國家) [주] 가 너를 어여쁘게 여기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정중하게 너에게 좋은 물품들을 사여(賜與)하노라.”

​[위(魏)소제(少帝) [주] ] 정시(正始) 원년(240)에 [대방군] 태수 궁준(弓遵) [주] 이 건충교위(建忠校尉) [주] 제준(梯儁) 등으로 하여금 조서(詔書)와 인수(印綬) [주] 를 받들고 왜국(倭國)에 도착하여 왜왕(倭王)에게 수여하였고, 아울러 조서(詔書)를 가져와서 금(金), 비단(帛), 비단으로 짠 융단(錦罽), 칼(刀), 거울(鏡) 그리고 채물(采物) [주] 을 하사하였다. 왜왕은 이에 사신을 파견하여 은조(恩詔) [주] 에 감사하는 답서(答書)의 표문(表文) [주] 을 올렸다. [적시] 4년(243) [주] 에도 왜왕은 다시 사신으로 대부(大夫) 이성기(伊聲耆)와 액사구(掖邪狗) [주] 등 8인을 파견하여, 생구(生口), 왜금(倭錦), [주] 강청겸(絳靑縑), [주] 면의(緜衣), [주] 백포(帛布), [주] 단목(丹木), [주] 부(𤝔), [주] 단궁시(短弓矢) [주] 를 바쳤다. 액사구(掖邪狗) 등은 솔선중랑장(率先中郞長)의 인수(印綬)를 똑같이 하사받았다. 그 6년(245)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서 왜의 난승미(難升米)에게 황당(黃幢) [주] 을 하사하고, [그것을 대방]군을 통해서 [그것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