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왜 막아야 하는가
  • 작성일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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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도 광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사도 광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사도 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 섬에 위치한 광산으로 에도 막부 시대 때 금맥이 발견 된 후 금광으로 유명해 졌고, 메이지 시대에 미쯔비시 그룹이 이 광산을 인수해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조선인들이 징용되었던 곳이다. 그럼 과연 어느 부분이 유네스코 등재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의 내용은 제외시킨 상태로 등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현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와 과거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는 상당 부분 유사성을 보이는데 군함도 역시 사도광산과 같이 강제 징용의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유네스코는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고자 하였을 때 군함도의 올바른 역사를 알린다는 조건하에 유네스코에 등재 시켰고 이에 일본 역시 동의하였고 군함도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에 대한 역사를 포함한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킬 후 군함도에 대해 설명하는 홍보 자료에 강제 징용에 대한 역사를 제외시킨 상태로 메이지 유신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현재 군함도 내에서 한국인의 강제 징용 피해 문제를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 추모 역시 미흡했다고 유네스코 위원회가 말하며 경고를 받은 상황이기도 하다. 일본은 사도 광산 역시 에도 막부 때부터 내려온 일본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보고 있으며 강제 징용에 대한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고자 한 때와 유사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최근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임나일본부설의 경우 과거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의 남부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주장하였고,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미지로 만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조선은 일본의 보호 아래 근대화를 이륙했다고 적혀있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화는 경제적 측면에서 공업화를 이루고 국민의 소득이 증가하면서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인권이 보장되고 정치 참여가 확대되어야 하지만 일본이 내세운 근대화라는 이름은 다소 이와는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 일본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시설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조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원과 토지를 약탈하였으며 침략이 아닌 진출이라고 표기하여 자국의 침략을 정당화 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개화라는 단어는 살아가면서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개화는 꽃이 핀다는 긍정적 단어로 외국의 문문을 받아 들여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 실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명분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들의 보기 좋은 눈가림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은 침략 전쟁에 뛰어들면서 한반도와 중국 일부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많은 양의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실시하게 된 것이 바로 강제 징용과 강제 징병이다. 강제 징병은 강제로 군에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가미카제’이다. 가미카제라는 일본어는 우리 말로 신풍이라는 뜻으로 과거 고려와 원이 연맹해 일본을 공격하고자 했던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당시 불어온 바람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가미카제는 비행기 자폭 테러로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고 그대로 미국의 군함에 들이받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 가미카제에 투입된 이들 대부분이 일제의 압력에 의하며 강제로 끌려나온 이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제로 만주, 동남아 등지로 끌려가 철도와 비행장을 만들고, 군수 물품을 생산하고 광산에서 일해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앞서 말했던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강제 징용뿐만 아니라 나가사키 조선소에서의 군수물품 생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의 할아버지 역시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강제 징용을 하였던 피해자셨다. 그리나 일본은 여전히 이러한 강제 징용의 사실을 자발적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역사 문제가 바로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성노예로 이용된 피해자분들을 이야기 하는데 당시 일본은 사기와 협박, 폭력, 인신매매, 유괴 등의 방법을 이용해 여성들을 아시아 곳곳의 위안소로 끌고 갔고, 당시 정부가 위안부라는 제도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시행하고 관리했다는 부분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이에 대한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없었던 사실이라 부정하며 숨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작게는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막기 위함이고 크게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관심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함이다. 과거 존재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임나일본부설 개정 후 큰 성과나 활동 등이 보이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면 프랑스, 폴란드 등의 국가와 함께 공동 교과서를 편찬하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그러나 역사적 부분에 있어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제 정세는 서로에 대한 반감만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가 기관과 단체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외교적ㆍ역사적 해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