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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른(성인)을 향한 역사교육:근대 동아시아 지역사의 시도
  • 토쿄대 교수 미타니 히로시(三谷 博)

한국과 중국인들이 공적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정신적 상처와 기억들을 회상하고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다. 거의 그 때 이후로 4반세기가 흘렀다. 그러나 그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일본인들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 자신이 침략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같은 당혹스런 상황에 대해 화가 나 있다. 20세기 초반 50년 동안에 일본인들은 한국인들, 중국인들, 다른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고 학대했지만, 오늘날 이웃국가의 국민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지속적으로 일본의 후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고, 그리고 결국 특히 2005년 봄 이후 일본의 후손들은 이웃국가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악순환이 정착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처럼 현재 동아시아에서 "역사=국민적 기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대립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20세기 전반 일본의 이웃나라 침략의 기억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경우에도 고구려 발해와 같은 고대국가를 근대의 주권개념에 의거하여 어느 한 쪽의 국가에 귀속시키려고 하는 싸움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미래, 그것도 멀지 않은 장래에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모되어 가는 자원을 함께 나누고 고통도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 상호 협력, 그것도 양보를 습관화하지 않는 한, 인류는 20세기 이상의 극심한 쟁란에 빠져들 것이다.
그 때 과거의 기억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 타자에게 가난의 부분을 강요하는 구실로만 이용된다면 그 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기억을 미래의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건설적인 협력의 기초로 삼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과거의 좋은 기억을 불러내 환기시키고 만들어 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 보다 급선무는 지금 어떤 나쁜 기억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생겨나 남겨진 상흔(trauma)은 가해자와 그 자손은 곧 잊어버리지만, 피해자와 그 자손은 잊을 수 없다. 이 비대칭성이 한쪽의 책임 추궁과 다른 쪽의 도피, 그로 인한 반감의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완화시키고 끊기 위해서는 과거의 가해 국민의 적절한 행동을 전제로 하여 양쪽이 과거를 과거로서 객관화해 가는 것 외에는 달리 없다.

역사적 상처, 비대칭성의 악순환

대일본제국의 붕괴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현재 세대가 해야 할 과제는, 스스로는 침략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딛고서 선조가 범한 침략과 잔학 행위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그 위에 피해국의 자손들과 마주 대하는 것이다. 상호 간에 대화를 성립시키기에는 이 연결고리(一環)가 불가결하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인(日本人)의 다수는 이 기억을 무의식중에 잊고 있다. 그 요인은 많이 있지만, 한 가지는 중학교 교실에서 근대사가 가르쳐지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다. 교과서에는 쓰여 있었지만, 1950년 출생인 필자의 세대에서는 교실에서는 대개 명치유신 언저리에서 수업이 끝나는 게 보통(通例)이었다. 현재의 40대 이상은 수험 공부를 제외하고 근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의 어른은 근대 일본(近代 日本)에 관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잘 알지 못한다.
이 지식의 공백이 초래한 것은 크다. 일본(日本)의 과거 침략 사실은 막연하나마 알고 있지만, 그런 만큼 이웃나라로부터 비판받으면 불안하게 되고, 도망(회피)치든가 자기 입장을 주장하기에 좋은 사실, 예컨대 일본인이 피해자가 된 구소련의 시베리아 억류와 대동아전쟁의 결과로서 발생한 동남아시아의 백인들로부터의 민족해방만을 내세워 자기정당화를 꾀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굴절된 기억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른들을 향한 신뢰할 수 있는 역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문제라고 하면 이에나가(家永) 재판 이래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만이 주목을 받아왔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답이다. 어느 나라든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제멋대로 된 기억을 휘둘러대는 어른들이다.
이렇게 생각하여 필자는 지금 일본의 성인교육을 위하여 『어른을 위한 근현대사(大人のための近現代史)』라는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19세기 이후의 일본과 이웃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책으로, 우선은 19세기 한 권과 20세기 전반 두 권을 낼 예정이다. 상세한 것은 19세기의 목차 안을 보면 알겠지만, 본문(本文)은 4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지워진 일본 근대의 기억

첫 번째 장은 동아시아 전체의 구조적 조감으로, 최초와 중간 그리고 최후로 나뉜다. 두 번째 장은 조선과 중국의 사회적 특징에 대한 소묘(素描)이다. 각각의 사회, 그리고 그것들의 시대적 특징을 거의 대부분 알지 못하는 일본의 성인들에게 이것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 번째 장은 이들 동아시아 삼국을 둘러싸고 국제환경의 기조를 정하고 있던 러시아·미국·영국의 동향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지만, 일본인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장은 일본과 근린제국의 외교관계를 다룬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본 학계의 첨단적 해석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19세기의 권에서는 10명의 일본·한국·중국·러시아사 연구자가 집필을 담당하고 있는데 각 전문가 간의 지식과 해석의 차이가 상당 부분 있어 통일하는데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 다만 역사해석은 항상 다양할 수 있는 것임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본문 말미에는 여러 개의 코멘트를 붙이기로 하였다. 집필자뿐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적절한 전문가·비전문가에게 코멘트를 의뢰할 예정이다. 그 속에는 물론 외국인도 있어, 그로 인하여 동일한 사상을 남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를 보여주어 일본인의 상상력이 넓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어른을 위한 근현대사』는 원래 일본을 대상으로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고 읽은 보람이 있는 책을 제공하고자 기획한 것이지만, 완성되어 가는 모습은 근대 동아시아의 지역사(regional history)로 되고 있다. 일본인을 독자로 상정하기 때문에 주제 선택과 해석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시선에서 결정되어 있지만, 일본중심주의적인 해석을 하여 그것을 세계에 강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대만에서도 이와 같은 지역사가 만들어져, 그것을 서로 번역·교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같은 것이 타자(他者)들 간에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왜 주목하는 곳, 해석의 차이가 생기는 것인가", 이러한 것을 깨닫고 생각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주민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기억의 공유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발걸음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