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이어 두 번째 실시한 중국 발해유적의 현황조사는 연길에서 시작하여 훈춘, 임강, 집안에 이어 심양을 거쳐 진행되었다. 9월의 마지막 날 연길 공항에 도착한 직후, 근교 발해유적지를 살펴봄으로서 일정의 시작을 알렸다. 평지성인 하룡고성과 태암고성과 연하돈대를 보면서, 발해인들의 자연 순응적인 삶을 확인하였다. 그 첫 조사에서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모습이 민가와 경작지 속에서 힘겨운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었다. 그나마 연변 옛 장성의 일부인 연하돈대가 비교적 높은 대지에 위치한 관계로 보존 상태가 좋음은 당연한 것이다.
훈춘 지역의 경우, 팔련성을 다시 찾았다. 내성 안에 아직 불도저가 잔존하면서 발굴과 감시가 4월과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보다 먼저 마적달탑을 조사하였다.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산비탈 위에 자리한 곳으로 50미터 높이 산 언덕에 약간의 평평한 대지에 위치하였던 이 탑은 지금은 허물어져, 그 재료인 전돌 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곳 역시 안내판조차 없어 앞으로의 위치파악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팔련성을 뒤로하고 조사단은 용정으로 들어와 영성고성을 조사하였다. 동성 용진 영성촌 마을 내에 위치한 영성고성은 평지성으로 앞에 산과 어우러진 곡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벽 중간 지역에 10여 개의 주춧돌이 있어 건물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발해시기 노주의 처소로도 보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이곳의 토지는 비옥하다.
서고성의 경우, 성터 안에 있는 가옥을 건너편 새 마을로 이주시키고 있다. 잔류한 집 벽에는 철거 대상 표시가 선명하다. 내년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막바지 발굴과 정비작업을 진행중이다.
민가·경작지에 둘러싸여 관리에 어려움
보마성은 발해 명마의 보급기지이기도 한 이곳은 하나의 망루처럼 주변을 아우른 지형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나뭇가지로 둘러져 있고, 주변의 마을사람들에겐 공동묘지와 길을 사이에 둔 숲과 같은 존재였다. 겨우 비집고 들어가 표지석을 보니, 그나마 누워 뒹구는 한글 표지석과 그래도 서 있는 한자 표지석만 이곳이 유적지임을 말해주었다.
중국측이 압록강변에 닦아놓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임강, 집안으로 내려가면서, 과거와 현재의 남북을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백두산의 소나무를 압록상 수로로 운반하는 뗏목의 장관은 자연 속에 순응하는 발해인의 생활의 복원이었다. 장백에서 본 혜산, 그리고 중국 쪽에 있는 발해 영광탑은 발해사의 또 하나의 스펙트럼이었다.
발해 유적의 상당수는 현재 중국의 영역 내에 있다. 재단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연해주 발해유적 발굴과는 달리, 발해를 중국에서 접하는 것만도 아직 제한적인 요소가 많다.
이번 조사를 통해 중국 내 유적 보존 현황 사례를 알아보고 그에 대한 대응모색을 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4월 조사 때와 공통된 사항은 역시 보존 관리 문제일 것이다. 워낙 지역이 광범위한데다가 발해 유적이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입지조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 위에 성, 현 단위의 중점문물보호로 지정된 유적이라도 경작지와, 주거지가 혼재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한계가 많다. 중국은 지금 새로운 문물 조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들 유적에 대한 자체조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그래서 중국 측과의 공동 조사를 더욱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