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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일본 출신으로 중국의 불교 성지를 여행하며, 신라인 장보고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승려 엔닌의 일기를 통해 당시 활발했던 동아시아의 인적 물적 교류의 실상을 되짚어 보는 연재물을 3회에 걸쳐 싣습니다._ 편집자주

9세기 동아시아 국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 승려 엔닌(円仁)이다. 그는 중국에 유학한 일본의 유학승이지만 9년간의 중국생활에서 신라인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가 만년 주지로 있던 일본 히에잔(比叡山) 연력사(延曆寺)에는 장보고를 칭송하는 기념비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엔닌은 일본 九州 하카타를 떠나 9년간 중국 체재 동안의 행적을 일기로 썼다.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기록이다. 이것을 서양학자로서 처음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라이샤워" 하버드대학 교수다. 그는 후에 주일대사를 지낸 분이다.
라이샤워교수는 1955년 "입당구법순례행기"를 "Ennin's Diary"라는 제목으로 영역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서 사람들은 엔닌의 일기를 통해 9세기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알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통일신라는 일본과 적대관계였다. 백촌강(白村江)전투 후 백제의 재건을 노리는 백제왕족의 후예들의 망명정부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 무렵 완도 인근의 작은 섬 출신의 장보고가 이러한 신라와 일본과의 공무역이 단절된 틈을 타서 사무역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본이 좋아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공급해 주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도자기의 수요가 높아지자 아예 전라남도 강진 등에 도자기 가마를 만들어 놓고 중국과 비슷한 도자기를 구워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의 무역선은 물건뿐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도 담당하였다.
장보고는 중국에서도 세력을 펼쳤다. 중국에서 인정받아 중국으로부터 산동성 신라방(신라인의 居留地)의 지배권을 갖게 되자 신라는 그에게 신라방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다. 완도 즉, 청해진대사가 그의 공식직함이었다. 엔닌의 일기에는 중국의 운하에서 장보고의 선단의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엔닌과 장보고

엔닌은 일본의 下野國(지금의 도치기현)의 즈카고리(都賀郡) 출신이다. 일본의 수도 평안경(平安京)에 멀지 않은 히에잔의 연력사 젊은 스님으로 당시 유행하던 인도의 밀교(密敎)의 본질 연구를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하카다(博多)에서 배를 타고 838년 7월 중국 양주(揚州)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당시 인구 80만의 국제도시 양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체재하면서 천태종(天台宗)의 본산 천태산(天台山)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중국 관청으로부터 여행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부득불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안(長安)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유학승 일행과 함께 귀국을 위해 산동성으로 갔다.
산동성 적산(赤山)에 도착한 엔닌은 그냥 배를 타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허탈하였다. 그의 사정을 들은 신라인이 적산(赤山)교외의 장보고가 운영하는 법화원에 남도록 하였다. 6개월 동안 그 절에서 수많은 신라인과 접촉한 엔닌은 천태산이 아니라면 산서성의 오대산으로 가는 것을 생각했다. 물론 여행허가서가 필수지만 신라인의 커넥션으로 가능하다고 믿게 됐다. 엔닌은 본국에서 장보고 선단을 통해 송금되어 온 노자(路資)로 여행에 나섰다. 오대산까지는 1100km의 거리였다.
엔닌의 도보여행 경로는 산동반도의 동쪽 끝 적산(赤山)에서 내륙으로 들어와 청주(靑州)로 간다. 산동성의 중심이기도 한 청주(靑州)는 당시 인구 90만의 대도시였다. 그리고 황하를 건너 하북성으로 들어간다.
그의 일기에 나오는 지명과 숙박했던 사찰의 이름은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에서 그대로 쓰고 있고 사찰은 전란으로 불타거나 유적일부만 남아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사찰에서 며칠씩 체재할 경우 대개 사찰 내 신라승려의 숙소였던 신라원에 머물렀다고 한다.
엔닌 일행은 오대산(五台山)의 죽림사(竹林寺)에 머물면서 일본에는 없는 불경을 전사(傳寫)하거나 고승들과 불교에 대한 담화를 통해 공부한다. 약 1개월간 체재 후 1800km 떨어진 수도 장안을 향하여 다시 출발한다. 오대산을 출발 남하하면 산서성의 수도인 태원(太原)에 도착한다. 지금도 산서성에는 석탄광이 많지만 1200년 전 엔닌의 일기에도 태원(太原)에 화력(火力)이 센 석탄이야기가 나온다. 황하가 남하하다가 동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꺾이는 용문(龍門)폭포를 거쳐 서쪽으로 계속 나가면 장안(長安)에 이르게 된다. 걷는 시간만 51일간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안은 당시 세계 제일의 국제도시로 규모도 지금 서안의 7배에 가까웠다. 모든 세계의 각종 종교는 모두 장안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에는 고유의 종교 도교(道敎)가 있었지만 외래종교로는 불교와 함께 기독교 계통의 경교(景敎), 페르시아의 마니교, 배화교, 이슬람교 등이 들어와 있었다. 엔닌은 5년간 자성사(資聖寺)라는 절에서 숙식을 하면서 밀교에 대한 공부를 하며 지냈다.

입당구법순례기와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당시 당 황제인 무종은 중국 고래의 종교 도교를 중시하고 외래종교인 불교를 배척하였다. 승려의 환속을 명령하고 사찰을 폐지하면서 불상도 파기하였다. 그리고 외국에서 온 유학승의 국외추방을 명령하였다.
이러한 불교탄압에 승려들은 지하로 들어가고 만다. 엔닌 등 일본유학승은 귀국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엔닌의 일기에는 845년 5월 사회적 배불운동에 승려 신분임에도 일반인의 복장으로 바꾸고 강소성 양주로 향하여 출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낙양에 도착한 엔닌은 수일간 체재하였다가 개봉에서 운하를 오르내리는 배를 타고 양주로 간다. 양주에서 다시 신라인의 배가 많은 산동성 적산(赤山)으로 간다. 그곳에서 신라인의 도움으로 장보고 선단을 이용, 한반도 서해안에 도착, 서해안을 따라 남하, 남해에서 구주(九州) 하카타에 도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배에는 신라인 등 44인이 승선하였다 하니 장보고의 무역거점 청해진을 경유하였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엔닌은 중국에서의 9년 3개월간을 일기로 기록하였다. 입당구법순례기라는 그의 일기에는 불교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 당의 사회상, 신라인의 활약상 등이 잘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일기는 마르크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학자도 있다.
그가 864년 죽을 때까지 히에잔 연력사에 최고 승려로 자각대사(慈覺大師)의 칭호를 받았다. 엔닌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인으로 동아시아의 교양을 갖고 선진국민인 중국 신라인과의 교류는 오늘날 동북아시아 중심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중국과 일본을 연결시키는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